'14조' 독소조항?…장애아 '합법적 유기' 부작용 우려도['보호출산' 한달 앞②]

박영주 기자 2024. 6. 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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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출산, 장애아 '합법적 유기' 통로 우려
출산 후 한 달 내 보호출산 선택할 수 있어
장애아 출산 후 양육포기에 악용될 우려도
"보호출산제, 어른들의 복지 권리로 작용"
"취약 임산부에 대한 지원 체계 구축 필요"


[세종=뉴시스] 박영주 기자 = #. 저는 선천성 심장 기형이며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태어날 무렵에는 돈이 많이 드는 질병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병원에 갈 때마다 '내가 심장병이 없었으면 부모님이랑 살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보호출산제는 장애아동들 그리고 미숙아를 합법적으로 유기하는 통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할 것입니다. 병원검진을 통해 확인된 장애아동의 경우에는 출산 전 보호출산으로 갈 것입니다.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보호출산제,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개최된 토론회에서 자립 청소년 홍진수 씨는 이같이 말했다. 홍씨는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미등록 신생아 상태로 유기됐다고 한다.

이처럼 유령 아동을 방지하고 위기 임산부를 지원하기 위한 취지로 제정된 보호출산제를 둘러싼 부정적인 여론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보호출산이 '어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장애아를 합법적으로 유기할 수 있는 통로를 정부가 만들어줬다는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23일 정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발생 9일 만인 지난해 6월30일 출생통보제가 국회 문턱을 넘은 것과 달리, 보호출산제는 진통 끝에 지난해 10월6일 가까스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간이 흘러 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찬반 여론이 갈리는 상황이다.

이 중 '제14조'가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해당 규정은 "위기 임산부가 아동을 출산한 후 출생신고를 마치지 아니하고 비식별화 및 아동의 보호조치를 희망하는 경우 출산일로부터 1개월 내 지역상담 기관에 신청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보호출산을 신청하지 않고 출산했더라도 1개월 내 지역상담 기관에 아동 보호 신청을 하면 보호출산과 동일한 절차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보호출산법 14조에 따라 장애아 양육의 어려움을 이유로 합법적으로 유기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즉 장애아를 출산한 경우 손쉽게 양육 포기를 결정하는 데 있어 보호출산제가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지난해 '그림자 아이'의 실태를 감사원에 제보한 프로젝트팀 '사회적 부모'의 이다정 간호사는 "(법 제정의 계기가 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의 엄마는 결혼하고 출산해 키우는 자녀가 있기 때문에 익명 출산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정부가 앞서 출생통보제를 시행했다면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익명 출산을 통해서라도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보호출산제를 만들었겠지만, 문제는 미숙아나 장애아동의 경우 14조에 의해 한 달 이내 포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아 등을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를 만드는 게 중요한 데 이와 별개로 보호출산제는 어른들이 양육할지, 안 할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이 법은 어른들의 복지 권리로 작동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미숙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산전 검사를 하면 장애 여부를 알 수 있다. 이전 상담했던 분의 아이가 청각 신경이 없이 태어났는데 본인이 키우지 않고 시설에 맡겼다"면서 "장애아라도 부모가 키울 환경이 조성돼 있다면 시설로 보낼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병원 밖 출산 상담만 25건 정도 진행했지만, 대부분 조산 등 위급 상황이었고 나 홀로 출산한 사람은 정말 극소수"라며 "그들 또한 '익명' 출산을 의도해 병원 밖 출산을 한 게 아니다"고도 했다.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 알려지는 게 두려워 병원 밖 출산을 택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라는 의미다. 출생통보제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익명 출산을 전제로 한 보호출산제는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본 것이다.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한 켠에 '보호출산에 관한 븍별법안' 등 법안들이 놓여 있다. 2023.06.27. amin2@newsis.com


외국인 아동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미혼 임산부는 보호출산을 신청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부모 중 한 명이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 임산부가 혼자 아이를 낳을 경우 '출생통보제'도 쉽지 않다.

보호출산제를 우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취약한 임산부를 충분히 지원하고 보호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토론회에서 "우리나라는 미혼모 등 취약 임산부에 대한 지원이 미약하다"며 "위기 임산부가 상담 기관에 쉽게, 빨리 찾아올 수 있도록 하되 상담의 궁극적 목적을 원가적 양육 지원에 두고 충분한 양육 상담을 해줄 수 있도록 관련 지원체계를 충실히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다정 간호사는 "보호출산제는 아동이 배제됐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이자 권리의 주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아이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곧 어른이 될 사람인데 (보호출산제로) 어른들끼리 아이 인생을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gogogir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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