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만큼 소중한 경험한 화순중 야구부와 에피소드
팀이 이길 때마다 집에 가고 싶어 우는 아이들
조용한 시골, 전남 화순의 아이들이 19일 경주 베이스볼파크에서 막을 내린 제71회 전국중학야구선수권 최종전에 진출하는 이변을 만들었다.
남들에게는 준우승이지만 이 소년들에게는 “우승”이나 진배없는 준우승이었다.
6월 3일 막을 올린 이 대회는 전국의 중학야구 134개 팀이 17일간 133경기라는 대장정을 이어가며 관중, 야구관계자, 학부모들에게 빛나는 가능성을 선물했다. 대망의 우승은 대구 경운중이 차지했다.
이번 대회는 수많은 이슈와 에피소드를 남겼다.
“경주에 KIA 김선빈이 나타났다.” 일부 경주시민들이 김선현 화순중 코치를 KIA 김선빈 선수로 오인해 “같이 사진을 찍게 해 달라”고 요구해 대회 관계자들이 곤욕을 치렀다.
김선현 코치는 김선빈 선수의 친동생으로 얼굴, 체격은 물론 헤어스타일까지 닮아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다.
홈팀 경주중을 응원하러 하루가 멀다 하고 현장을 찾아오는 지역 야구팬들의 아름다운 극성도 화제가 됐다. ‘경주중 경기는 언제 있냐?’ ‘선수들 컨디션은 좋냐?’ 등등 매일 쇄도하는 질문에 경주야구협회 관계자들이 애를 먹었다.
경주중은 3년 연속 이 대회 첫 경기에서 일찌감치 짐을 쌌지만 주민들의 홈팀에 대한 애정 세례에 협회 관계자들의 속도 타 들어갔다.
이 대회 4강 진출팀 건대부중 저학년 선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출전해 부모님 등 가족들과 처음으로 장기간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이 웃픈 상황으로 이어졌다.
“집에 가서 엄마는 보고 싶은데 팀은 자꾸 이기지, 팀이 이기면 경주에 더 있어야 하니 팀이 이길 때마다 아이들이 서러워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박찬민 건대부중 감독은 “팀이 이겨서 미안하게 됐다”며 저학년 선수를 달래야만 하는 행복한 역설이 벌어졌다. “덩치만 컸지 아직은 어린아이들이라 세심한 배려와 관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이런 합숙 기간은 아이들에게 경기력뿐만 아니라 남들에 대한 배려,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배우는 시간이 됐다고 관계자들은 평가했다.
최대의 이슈를 몰고 온 팀은 단연 전남 화순중 야구부다.
화순중의 연전연승 덕분에 천년고도 경주에서 이기주 화순중 감독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오랫동안 들을 수 있었다.
“아그야! 그렇게 당겨치지 말라니까. 타석에서 무슨 생각을 그럭코롬 한다냐? 그냥 자신 있게 돌려버리랑께.”
“화순이 어디에 있어요?” 대회 초반 경주로 모여든 야구 관계자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들었던 이야기다. 화순이 어디 있는지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화순중의 첫 상대는 개교 103주년의 야구 명문 대구중이었다.
경주는 대구팀에게는 홈구장과 다름없는 익숙한 구장이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응원단이 많이 찾아왔다.
다들 대구중의 우세를 점쳤고 멀리서 온 화순중의 대진을 아쉽게들 생각했었다. 사실 화순중은 이번 대회 우승은 고사하고 결선 토너먼트 진출마저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스포츠는 드라마 아니던가! 꼴찌가 1등을 잡을 수 있는 것. 접전 끝에 4-2로 화순중이 승리했고, 화순이 어디에 있는지 대구·경북 야구팬들은 금세 알아버렸다.
이후 충북 청주중, 충남 메티스(U-15), 부산중마저 물리치며 12강 결선 토너먼트 진출하면서 화순을 완전히 각인시켰다. 그 뒤로도 경기 중앙중, 서울 성남중 등 수도권 팀들에게 7전 전승하면서 전국에 화려한 승전보를 알렸다.
이기주 화순중 감독은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했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서로 단합해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울컥했다. 참으로 기특하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나는 얼렁뚱땅 시간만 때우는 훈련, 건성으로 하는 플레이는 보지 못한다. 가끔 나오는 안이한 플레이를 볼 때면 선수들을 호되게 꾸짖는다. 악역은 내 역할이다”면서도 이내 “아이들이 착하고 순수하다. 나를 믿고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 저도 아이들을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고된 훈련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모습으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코치들 덕분이다. 열정남 김선현 타격코치, 2년 전 팀에 합류해 투수들의 성장과 안정된 내야 수비의 틀을 구축한 정태훈 투수코치, 전세민 수비·주루 코치에게 더없이 고마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결승전 경기는 전교생이 교실 TV 앞에 모여 응원했다고 한다. 비록 우승 트로피는 가지고 돌아가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이 크게 성장했다.”며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야구로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또한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응원 온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보고 듣는 것만큼 성장하고, 체험하는 만큼 깨닫고, 노력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감독님 코치님들께 감사드린다.”며 즐거워했다.
박상은 기자 subutai117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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