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포 시장의 새 도전자, 차륜형자주포가 세계 대세로 주목받는다 [박수찬의 軍]
포병은 전쟁에서 싸우는 보병에게 가장 든든한 존재 중 하나다. 눈앞에서 저항하는 적군은 물론 내륙 지역에 있는 주요 표적까지 제압할 수 있는 화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을 비롯해 전쟁사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명장들도 포병을 중시하고 잘 활용한 덕분에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포병이 숨을 공간이 없다
‘포병도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현대전의 대표적 개념이다. 나치 독일군 ‘전격전’의 영향으로 기갑·기계화부대 위주의 기동전이 중시되면서 전차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자주포가 주목받았다.
냉전 시절에는 대포병레이더를 비롯한 감시·추적장비가 발달하면서 적 포병의 위치를 파악해 타격하는 대포병사격도 문제였다.
적군의 대포병사격을 피하면서 이를 피하려면 포격 후 신속히 이탈해 다른 장소로 이동한 뒤 포격을 재개하는 능력이 필수였다. 또한 포탄이나 로켓탄의 파편으로부터 포와 병력을 지켜줄 장갑도 필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같은 추세를 바꿨다. 전쟁 초기 서방측은 155㎜ M777 견인포나 105㎜ L119 곡사포 등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이들 야포는 옛소련 122㎜ D-30야포보다 정밀도와 화력이 높았지만, 스스로 움직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드론 전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은 막대한 양의 드론을 운용한다. 전선 후방 사령부서부터 최전선부대까지 각종 정찰 드론을 띄워 적군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다. 값싼 자폭드론과 배회폭탄은 물론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활공폭탄도 수시로 전선에 날아들고 있다.
이동과 전개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견인포는 자폭드론이나 활공폭탄 공격을 회피할 충분한 시간이 부족하다.
미국산 M109나 폴란드산 크랍(KRAB)을 비롯한 궤도형자주포는 러시아군 대포병사격으로부터 일정 수준의 방호력과 기동력을 지니고 있지만, 자폭드론이나 배회폭탄, 활공폭탄 공격까지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병대에 대드론체계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대드론장비와 전자전 장비 수요가 폭증하는 전장 상황에서 전선의 수많은 포대에 대드론장비를 충분한 수량만큼 배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매우 짧은 시간 내 이동·전개·사격·철수가 가능한 트럭 탑재 차륜형 자주포가 주목받은 이유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유럽 각국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차륜형자주포들을 우크라이나로 보냈다.
러시아군의 막강한 포병전력을 상대하기 위해선 155㎜ 포가 필요했는데, 이를 채우고자 서방 측은 기존에 갖고 있던 다양한 야포를 한데 모아 보냈다. 이 과정에서 유럽산 차륜형자주포들도 대량 인도됐다.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유럽산 차륜형자주포는 155㎜ 52구경 포신을 장착하고 있으며 표준 사거리는 약 40㎞다. M109 자주포나 M777 견인포는 물론 러시아산 야포보다 사거리가 길다. 최신 트럭을 차체로 삼고 있어서 기동력도 우수하다.
초기에는 러시아군 공격으로부터 방호능력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격렬한 대포병사격이 잦은 상황에서도 40㎞ 거리에 있는 러시아군 표적을 타격하고 빠르게 이동하는 등 위력을 발휘했다.
신속하면서 유연하고 기동성이 우수한 장거리 포격 능력을 과시한 셈이다.
◆주목받는 차륜형자주포는
최근에 쓰이는 차륜형 자주포는 고기동성을 토대로 자폭드론과 활공폭탄 공격을 피할 수 있다. K9 같은 궤도형 자주포가 내장된 장갑으로 적의 공격을 막는다면, 차륜형 자주포는 신속하게 움직이는 방식으로 적의 공격을 피하는 셈이다.
여기에 정밀 유도기술을 통해 명중률을 높였다. 자동차 기술 발달로 트럭의 야지기동성과 탑재능력이 높아졌고, 트럭을 활용한 덕분에 궤도형 자주포보다 구매·유지비가 저렴하고 생산성도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대구경 야포를 신속하게 늘려야하는 유럽 각국과 비용 등의 문제로 궤도형 자주포 구매가 우려운 개발도상국의 입장이 더해지면서 차륜형자주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장비는 시저(CAESAR)와 아트모스(ATMOS)다.
우크라이나에서 위력을 발휘하면서 시저 차륜형자주포를 새로 도입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K9 자주포를 운용하는 북유럽의 에스토니아는 시저 자주포 12대 도입을 최근 결정했다.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스가 제안하는 아트모스는 6륜 트럭에 155㎜ 곡사포를 탑재한 형태다. 사거리 연장탄을 사용하면 최대 41㎞ 떨어진 표적을 타격한다.
RCH155는 이동간 사격이 가능한 차륜형장갑차로 유명하다. 다만 성능이 우수한 만큼 차륜형장갑차 중에선 가격이 비싼 편에 속한다는 평가다.
스웨덴(아처), 체코(다나)의 차륜형자주포도 우크라이나에 지원되어 실전에 투입됐다.
아처 차륜형자주포는 RCH155가 개발되기 전까진 최신형으로 분류됐던 장비다. 승무원은 탄 보급을 제외하면 나머지 업무를 차체 안에서 해결할 수 있고, 자동화 수준이 매우 높아 정차·방열과 진지 변환이 30초 이내에 가능하다. 미국산 액스칼리버 포탄을 사용하면 사거리가 50㎞를 넘어설 정도다.
다만 차륜형장갑차 중에서는 고가의 장비다.
한국 육군은 105㎜ 견인포를 약 2000여 문, 포탄은 300만 발을 갖고 있다. 이를 모두 폐기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재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되살리고 개량해서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 K105A1도 이같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K105A1구동 조종기를 사용해 포구지향 속도가 기존 105㎜ 견인포보다 3배 빨라졌다. K9 자동사격통제장치를 적용해 지형에 관계없이 신속한 화포 정렬이 가능하다. 운용인원은 기존 견인포 8~9명에서 5명으로 감소했다.
이동 간 1분 이내 초탄 사격이 가능하다. 분당 최대 10발을 발사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군비 증강을 서두르는 세계 각국 입장에서 차륜형자주포는 대안이 된다. 저렴한 가격에 다수의 자주곡사포를 배치할 수 있어 ‘규모의 경제’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 예산이 부족한 제3세계 국가에도 제안이 가능하다.
한국도 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대구경 차륜형자주포를 수출형으로 제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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