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아내 말 듣고 184년 가업 일궈낸 ‘이 사람’ [푸디人]
전 세계에서 위스키를 제조하는 가문 중 가장 오래됐다고 자부하는 가문이 있습니다. 1840년 가문 최초로 상업 증류소를 설립했다고 하니 올해로 184년이나 된 셈이네요. 게다가 브랜드를 만들 때 ‘장인의 표식’이라고 대놓고 쓸 만큼 제품에 대한 자부심도 둘째가라면 서럽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위스키를 만들었으니 왜 우여곡절이 없었을까요. 그리고 최대 위기의 순간 아내의 말을 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대표 버번위스키인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의 이야기입니다
메이커스 마크 커스텀 에디션 ‘프라이빗 셀렉션’을 국내에 공개하기 위해 방한한 롭 새뮤얼즈 대표를 만나 메이커스 마크의 여성 숭상(?)과 장인정신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새뮤얼즈 대표는 메이커스 마크 창립자 새뮤얼즈 가문의 8대손이며 가업을 일으켜 세운 아내는 새뮤얼즈 대표의 할머니 마지 새뮤얼즈(Margie Samuels) 입니다.
미국 금주법이 폐지되고 1933년 빌 새뮤얼즈가 다시 가업을 시작하고 난 지 얼마 안 된 때였는지라 가족의 충격은 컸을 것입니다.
앞서 새뮤얼즈 가문은 1680년 무렵 종교적 박해와 가난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 온 스코틀랜드인 중 하나였습니다. 1784년에는 로버트 새뮤얼즈가 켄터키주로 옮겨왔고 1840년에는 T.W. 새뮤얼즈가 가문 최초로 상업 증류소를 설립했습니다. 1919년에는 금주법으로 증류소 운영이 중단되는 아픔도 겪었죠.
새뮤얼즈 대표는 “할아버지는 금주법 폐지 이후 증류소 운영을 재개하기 위해 꺼내 본 가문의 레시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빌 새뮤얼즈 시니어는 위스키 제조에 무엇보다 물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증류소 인근 자연환경이 천연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증류소 부지면적이 축구장 570개 규모에 이르지만 증류소 시설은 고작 전체 부지의 5%만 차지하고 있죠. 특히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물은 증류소 안 호수에서 끌어들이는데 호수가 뽑힌 이빨 같이 생겼다고 해서 ‘Tooth Lake’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새뮤얼즈 대표는 “할아버지는 자연경관과 수원지를 고려해 증류소 부지를 택했다”면서 “전체 버번위스키의 95%가 켄터키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메이커스 마크가 유일하게 수원지를 소유하고 관리까지 하는 증류소이다”고 자랑했습니다.
메이커스 마크의 증류소는 호수, 숲 등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1974년에는 운영 중인 증류소 중 최초로 ‘미국 국립사적지’로, 1980년에는 ‘미국 국립역사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죠.
이전에 선대들이 내놓은 위스키가 쓰고 거칠었다면, 빌 새뮤얼즈 시니어는 풍미가 풍부하면서도 크리미하고 밸런스가 좋은 새 위스키를 만들고 싶었죠.
그러나 좀처럼 본인이 기대한 풍미와 맛을 내는 곡물 배합 비율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인 마지 여사에게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곡물 배합을 만들어보라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해서 옥수수 70%, 붉은 겨울밀(Soft Red Winter Wheat) 16%, 발아 보리 14%라는 황금 비율을 찾아냅니다. 특히 버번위스키에서 주로 쓰이는 호밀 대신 들어간 겨울밀은 메이커스 마크만의 풍부하고 부드러운 맛을 만들어내는데 일등공신이 됐죠.
새뮤얼즈 대표는 “곡물을 갈고 제분을 위해 롤러밀을 사용하는데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라면서 “그렇게 해야 곡물을 뭉개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 “굉장히 증류 과정이 천천히 진행되고 200년간 가족 사이에서 내려온 효모종을 사용한다”고 귀띔했습니다.
‘장인의 표식’이라는 뜻을 가진 메이커스 마크 브랜드와 로고에 들어간 손글씨, 아랫부분이 네모난 각진 병 모양, 메이커스 마크의 상징이 된 빨간 왁스 봉인도 전부 아내가 직접 고안했습니다.
새뮤얼즈 대표는 “원래 저희 할아버지는 새뮤얼즈 가문의 이름을 따서 브랜드명을 지으려고 하셨대요. 그러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말리셨죠. 새뮤얼즈 이름을 붙이게 되면 소비자들이 새 위스키와 지난 160년간 만들어온 쓴맛의 형편없는 위스키 사이에서 혼동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의견을 곧이곧대로 잘 따랐습니다. 1950년대 한국 남자였다면 “남자가 하는 일에 어디 여자가 훼방을 놓냐?”며 핀잔을 줬을 텐데 말이죠.
새뮤얼즈 대표는 “메이커스 마크는 전 세계서 유일하게 여성이 이름을 붙이고 디자인한 위스키입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마지 여사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으로는 최초로 버번위스키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일단 위스키 업계에서는 유일하게 숙성 과정에서 수작업으로 ‘배럴 로테이션’이라는 것을 합니다. 균일한 맛과 품질 유지를 위해 무게가 270kg에 달하는 배럴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바꿔주는 것인데요.
새뮤얼즈 대표는 “한 그룹당 19개의 배럴을 항상 창고의 최상단에서 먼저 숙성합니다. 최상단에서는 숙성이 밀도있게 시작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2번의 여름이 지나면 배럴들을 상단에서 중간 정도로 위치를 바꿔줍니다. 그 위치에서 두 번의 여름을 더 보낸 다음에야 아래층으로 내려오게 됩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작년에는 무려 40만개의 배럴을 수작업으로 로테이션을 했다는데 정말 위스키 제조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정도입니다. 다른 버번위스키들은 한 번 저장고에 들어가면 숙성이 완료될 때까지 웬만하면 배럴의 위치를 바꾸지 않는데 메이커스 마크가 유독 별난 느낌이네요.
메이커스 마크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왁스 디핑도 당연히 수작업으로 합니다. 직원이 모든 병을 일일이 빨간 왁스에 직접 담그는데 “하늘 아래 똑같은 메이커스 마크는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듯합니다.
참고로 메이커스 마크에는 35명의 테이스팅 패널이 있는데 이 중 22명이 여자이고 13명은 남자라고 하네요. 남성 중심적인 위스키 업계에서 드문 사례로 꼽히죠. 메이커스 마크는 여성 파워가 센 듯합니다.
새뮤얼즈 대표는 “메이커스 마크가 나온 지 약 60년 동안은 한 가지 제품만 만들었죠. 위스키 업체로서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빌 새뮤얼즈 주니어는 장인정신을 강조한 아버지와는 달리 마케팅에 능통했습니다. 그리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쳐 메이커스 마크를 지금의 프리미엄 버번위스키의 대명사로 만들었죠.
그러나 한가지 아쉬움은 해소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본인만의 위스키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죠.
새뮤얼즈 대표는 “아버지는 메이커스 마크의 고유한 스파이시함에 카라멜과 바닐라 풍미를 더하고 피니시가 오래가는 위스키를 원하셨던 거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빌 새뮤얼즈 주니어는 2년간의 연구 끝에 ‘메이커스 마크 46(Maker’s Mark 46)’을 2010년 출시했습니다. 새뮤얼즈 가문에서 출시한 두 번째 제품으로 메이커스 마크만의 독특한 숙성방법인 ‘우드 스테이브(stave, 막대) 피니싱’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드 스테이브 피니싱’은 숙성이 끝난 오크통에 10개의 프렌치 오크나무 막대를 넣고 10도의 저온으로 유지되는 석회암 저장고에서 9주간 추가 숙성 과정을 거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부드럽고 섬세한 카라멜과 바닐라의 풍미가 살아나게 되죠. 메이커스 마크 뒤에 붙은 ‘46’이라는 숫자는 끊임없는 시도 끝에 발견한 최고의 조합인 ‘10개의 프렌치 오크나무 막대’의 프로필 번호였던 ‘No. 46’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런 노력을 곁에서 본 새뮤얼즈 대표는 새로운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위스키도 개인의 기호에 맞춰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지 않을까?’
메이커스 마크 프라이빗 셀렉션은 오크통 최종 병입 단계에서 물을 첨가하지 않는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에 5종의 우드 스테이브 중 10개를 조합하여 넣고 9주간 추가 숙성하여 완성되는 제품이죠. 빌 새뮤얼즈 주니어가 ‘메이커스 마크 46’을 만들 때처럼 10개의 막대를 넣지만 막대 종류는 더 다양해졌습니다.
5종의 우드 스테이브는 아메리칸 오크를 사용하고 바닐라, 꿀, 과일 향을 입힌 베이크드 아메리칸 퓨어 2(Baked American Pure 2), 프렌치 오크에 구운 캐러멜과 아몬드 향을 입힌 시어드 프렌치 뀌베(Seared French Cuvee), 프렌치 오크에 건과일과 스파이시한 크리스마스 빵의 향을 입힌 메이커스46(Maker’s 46), 프렌치 오크에 건과일과 커피 향을 더한 멘디언트(Mendiant), 프렌치 오크에 숙성된 과일과 파이프 담배 향을 입힌 토스티드 프렌치 스파이스(Toasted French Spice)입니다. 5종의 오크 막대로 총 1001개의 조합이 가능해 나만의 메이커스 마크를 만들 수 있죠.
새뮤얼즈 대표는 “전 세계 유능한 바텐더들이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커스터마이징 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고 출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2022년 4개 바와 함께 첫 시리즈를 진행했고 2년 만인 올해는 5개 바로 확대했습니다. 5개 바는 ‘노츠’, ‘더부즈 한남’, ‘바밤바’, ‘바 잇트’ 그리고 ‘베스퍼’입니다. 5개 바가 커스터 마이징한 위스키는 각 바에서만 마실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맛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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