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랑 싸울까봐 입 꾹 닫아요”…최태원 이혼 소송에 속타는 SK맨들 [방영덕의 디테일]
상식적으로 부부 사이에 남편이 적을 둔 기업이 사력을 다해 임하는 소송건과 이로 인해 회사 앞날을 걱정하는 얘기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소송이 기업 회장님의 이혼 건이며, 회장님을 두둔하는 얘기라면 조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람을 펴도 된다는거야?” 쏘아붙이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죠.
회사 안팎에선 연일 시끌시끌합니다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내 앞에선 입을 꾹 닫게 된다는 SK맨들이 많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타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과 관련해서는 집에서 ‘입꾹’하는 게 상책이란 말을 들었는데, 최근 이들 사이 할 말이 생겼습니다.
‘1조38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이혼 재산 분할 소송에서 판결문 수정(경정)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섭니다.
담당 재판부는 경정부분에 관해 ‘사소한 오류’에 불과할 뿐 재산분할 비율 등 결론은 변함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은 재판부 결론을 재반박하며 법원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후에 경정해 번거롭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하다”면서도 재산 분할의 비율과 대상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게 A4 4페이지 분량의 입장문 골자입니다.
특히 이 오류가 최 회장이 20년 이상 ‘자수성가형 사업가’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전제를 흔들 순 없다고 강조했는데요.
앞서 재판부는 1994년 11월 최 회장 취득 당시 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 가치를 주당 8원,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에는 주당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에는 주당 3만5650원으로 각각 계산했습니다.
최 회장 측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대한텔레콤 주식 가치 평가에 있어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번의 액면분할 등을 고려해 1998년 5월 가치를 주당 1000원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이에 재판부는 최 회장 측 주장대로 1000원으로 경정한 것이죠.
원 판결문에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재임 기간인 1994∼1998년 주식 주당 가치가 8원에서 100원으로 12.5배 올랐고, 최 회장이 경영자가 된 1998∼2009년에는 3만5650원으로 355배 올랐다고 적시돼 있었는데 이를 각 125배와 35.6배로 바로잡은 겁니다.
여기서 잠깐, 이번 소송에서 대한텔레콤의 주식 가치가 왜 중요하냐면요. 대한텔레콤은 현재 SK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의 모태가 되는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1991년 당시 유공과 선경건설이 통신사업 진출을 위해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만든 회사였는데 SK C&C로 사명을 바꿔 2015년 SK㈜와 합병, SK그룹의 실질적인 지주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최 회장은 현재 SK㈜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혼소송 2심 판결에서 3조원의 가치로 평가된 SK㈜ 주식은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됐고요.
그러면서 SK측이 제기한 재판부의 치명적 계산 오류(대한텔레콤 주식 가치 상승 관련)는 결국 “회사 성장에 미친 영향을 봤을 때 최태원 회장보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근거로 작용합니다.
최 회장이 직접 나와 “개인적 일로 심려 끼쳐드린 점 죄송하다며”며 90도로 고개를 숙인 날, 기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재계 2위의 대기업 총수가 자기 성과를 축소하고 대신 아버지의 성과를 부각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습니다.
최 회장 측은 최 회장을 두고 “자수성가형 사업가가 아니라 승계상속형 사업가”라고도 했는데요.
법조계에서는 최 회장 측의 이같은 주장을 두고 “최종현 선대회장이 회사 성장에 기여한 바가 더 크기 때문에 최 회장이 직접 불린 재산 액수는 적다. 따라서 노 관장의 재산 기여분 역시 많지 않다”는 논리를 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최 회장과 노 관장 이혼 항소심 재판부는 앞서 SK측 주장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판결문의 결론이 뒤바뀔 정도의 오류가 아니라는 입장을 설명자료에서 자세히 밝혔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 수정은 중간 단계의 계산오류 수정일 뿐, 재산 분할 비율에는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최 회장 측의 ‘치명적 오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SK 주식 가치 증가에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호 등 노 관장 측의 계속적인 기여가 있었기 때문에, 선대회장 때 회사가 더 성장했는지 여부가 핵심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은 “이번 항소심 결과로 SK그룹이 6공 비자금과 비호 아래 성장한 것이라는 정의가 내려져 버렸다”며 “SK에는 15만명에 가까운 구성원과 많은 고객, 투자자가 있는데 진실을 소명하는 것이 SK 회사 차원의 숙제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회사 차원에서 규명이 필요한 사안으로 ▲300억원의 정확한 전달 방식과 사용처 ▲ 기존에 밝혀지지 않은 비자금의 별도 존재 여부 ▲SK에 제시했다는 100억원 약속 어음의 구체적 처리 결과 ▲ 현직 대통령 시기에 특혜로 거론됐던 내용과 사실 유무 등을 꼽았습니다.
최 회장 측과 재판부의 논쟁은 대법원으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최 회장은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돼야 하지만, 저는 이번에 상고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최 회장 개인의 이혼 소송이 SK회사 차원의 숙제가 되어버린 지금, SK맨들은 할 말이 더 많아졌을까요? 여전히 골치 아픈 회사 얘기는, 특히 아내 앞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얘기일까요.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아버지 빚 갚아준 박세리, ‘증여세’ 최소 50억 폭탄 맞을 수 있다? - 매일경제
-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대한항공 기체결함으로 긴급 회항 - 매일경제
- “분양가 미쳤는데요”…청약통장 한 달 새 2만명 해지, 무슨일이? - 매일경제
- “커피 재촉하지 마”…고객에 커피 가루 뿌린 中바리스타, 결국 해고 - 매일경제
- “뉴진스도 신었잖아”…무더위 오자 난리난 이 녀석의 정체 - 매일경제
- “깨끗한 연예인도 많은데 왜 하필”…中서 비난 쏟아진 여배우의 정체 - 매일경제
- “1년씩 번갈아 하자”…개원 3주째인데 ‘극한 대립’, 법사위원장 뭐길래 - 매일경제
- “뭘 원해, 다 해줄게”…돈 없는 1020세대에 목숨 건 카드업계, 왜? - 매일경제
- “우리집 꽃병 다시 봐야겠네”…5500원 주고 산 ‘이것’ 정체 뭐였길래 - 매일경제
- 양민혁 프로축구 3달 만에 K리그 시장가치 6위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