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증액 갈등, 표준계약서만으로 안돼…"특약 넣어야"
건설사-발주처 사이에 공사비 증액 둘러싼 갈등 지속 증가
표준계약서 강제성 없어…사정변경 등 예외 상황 법리다툼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원자재 가격,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한 공사비 급등으로 인해 ‘공사비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조합과 건설사뿐만 아니라 기업 간에도 공사비 증액을 놓고 법정 소송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올 초 도입된 표준공사비 계약서의 역할은 미미하단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권고 사항에 그치는 표준공사계약서만으로는 갈등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특약’ 등을 통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건수는 검증 의뢰 중 검증을 완료한 건수만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공사비 갈등을 겪고 있는 곳은 더 많은 상황이다. 특히 공사를 요청한 발주처가 계약서상 특약으로 요청한 ‘물가변동 배제특약’ 등의 조항으로 인해 공사비 갈등 사례는 더 많아졌다. 물가변동 배제특약이란 시공사가 착공 후 물가변동으로 추가 공사비가 들어도 발주처에 요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 변호사는 “국토부에서 민간 공사 현장에 대해서도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어 혼란스러워지면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소송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쌍용건설이 판교 신사옥 건설을 발주한 KT와 공사비 갈등을 빚게 된 것도 물가변동 배제특약 때문이다. 쌍용건설은 2020년 KT 신사옥 건립 공사를 약 900억원대에 수주했지만, 이후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171억원의 손실을 보게 됐고 이를 공사비 증액으로 보존해달라고 KT에 요구했다. 그러나 KT는 특약을 이유로 공사비를 추가로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채무부존재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자 정부도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란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을 최소화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다. 그 동안 공사비 조정에 건설공사 물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을 적용해 왔는데, 국가계약법에 따른 지수조정률 방식을 활용하도록 해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을 현실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문제는 이 같은 표준계약서 사용이 권장 사항에 그친다는 점이다. 정비 계약 자체가 발주처가 유리한 지위에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표준계약서 도입의 효과가 미미 할 수 밖에 없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표준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발주처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별로 없지 않느냐”면서 “그것 만으로는 공사비 분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사비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적극 활용하도록 노력하되, 이를 쓸 수 없을 때는 또 다른 특약을 함께 넣거나 사정변경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전재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정비사업 분야 최신 동향 및 실무상 쟁점’ 세미나에서 “코로나19 또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 급격한 물가변동이 발생한 것은 통상적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현저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사정변경은 법률 행위의 전제가 된 어떤 상황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변경, 소멸한 경우에 효력을 그대로 적용하면 상대에게 부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계약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김예림 변호사 역시 “민간 주체간의 계약에 있어 정부나 지자체에서 표준계약서 사용을 강제하기는 어렵다”면서 “전쟁 등의 예외적인 상황의 경우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무효화 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약을 동시에 추가하는 것은 가능하다. 공사비 갈등을 최대한 방지하려면 사전에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이윤화 (akfdl34@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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