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 (87)왜군에 맞서 군마 대고 물길 안내…제주의 숨은 영웅들
풍전등화 위기 제주와 조선 구한 이순신 '명량해전'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 유일의 승전사 을묘왜변(1555년) 이후 40년이 채 안 돼 발발한 임진왜란(1592∼1598년).
조선을 거쳐 중국을 집어삼키려는 일본의 침략 야욕으로 인해 7년간 한반도 전체가 전쟁터가 됐고, 온 국토는 황폐해졌다.
조선의 백성 절반 가까이가 목숨을 잃었던 참혹한 전쟁이었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제주도는 무사할 수 있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임진왜란 당시 제주가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와 당시 제주의 숨은 영웅들을 알아본다.
임진왜란 속 제주의 숨은 영웅들
1592년 임진년 봄 임진왜란이 발생했다.
일본은 부산에서 한양까지 최단 거리로 진격해 조선의 왕을 사로잡고 전쟁을 단숨에 끝내려 했다.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조선군을 격파하며 파죽지세로 북상, 20일 만인 5월 3일 한양에 무혈 입성했다.
사흘 전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간 뒤였다.
일본의 당초 계획대로 되지 않은 전쟁은 결국 장기전에 돌입했다.
임진왜란 초기 제주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침공 우선순위에 제외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왜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주 백성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당시 제주 섬 전체를 책임지고 다스렸던 목사(牧使)는 이경록이었다.
이경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부터 전쟁이 끝난 이후인 1599년까지 제주목사로 근무했다.
임진왜란이 장기화하자 이경록 목사는 군사 200명을 뽑아 바다를 건너 전투에 참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탄환 같은 조그만 섬이 현재까지 다행히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적이 아직 침범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라며 제주목사를 비롯한 주요 군사가 섬을 비웠을 때 제주마저 왜적에 넘어갈 수 있다며 만류했다.
이경록 목사는 직접 참전하는 대신 제주의 성곽과 방어시설을 정비하며 전쟁에 대비했다.
또 함경도 지방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던 이순신 장군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후방에서 조선 수군을 지원했다.
'난중일기'를 보면 제주에서 소 다섯 마리를 이순신 장군 부대에 보내 병사들에게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제주는 군마 공급기지로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전쟁으로 인해 다른 지역의 국영 말 목장은 대부분 제 기능을 상실했으나 제주는 피해가 없어 상당수의 군마를 계속해서 보급했다.
문제는 수요가 공급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제주에서 차출하는 말만으로 그 부족분을 모두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당시 구원투수로 나섰던 인물이 바로 김만일이었다.
김만일은 1594년 4월 말 500여필을 바치는 등 일생 1천300여마리의 말을 조달하며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난극복에 공헌해 헌마공신(獻馬功臣)의 칭호를 받았다.
또 다른 제주의 숨은 영웅도 있었다.
가혹한 수탈을 견디다 못해 제주를 떠나 남해안 일대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포작인(鮑作人)이었다.
'제주역사기행' '새로쓰는 제주사'의 저자 이영권은 '15∼17세기 제주유민의 사회사적 연구' 논문에서 이순신이 남해안 일대의 물길을 잘 아는 안내자로서 포작인에 주목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포작인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며 "이순신이 물길 안내인으로 (포작인을) 충원한 결과 첫 출전에서 포작선 46척이 등장했다. 그리고 3일 뒤 첫 해전 즉 옥포해전은 이순신 수군의 승리로 끝났다"고 말한다.
또 이순신이 1593년 8월 10일자 왜군의 정세를 조정에 아뢰는 장계에 '건강하고 활 잘 쏘며 배도 잘 부리던 토병과 포작'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선조실록에도 '전선(戰船)은 포작간(鮑作干, 포작인을 낮잡아 이르던 말)이 없으면 운행할 수가 없습니다', '육지에 있는 수군은 배 다루는 것을 전혀 몰라 번(番)이 되면 목포(木布)를 마련하여 해변에서 포작인(鮑作人)을 고용해 대립(代立)시키는데'라는 기록이 나온다.
연구자들은 "선박 조종 능력이 모자랐던 조선 수군에게 포작인의 존재는 수군의 중요한 바탕이 됐을 것"이라며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포작인과 함께 해전 승리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쟁 막바지 제주를, 조선을 구한 이순신
제주는 전쟁의 후반기로 갈수록 전략적 주요 거점으로 중요하게 떠오른다.
"다른 곳은 다 거론할 수 없거니와 제주(濟州)가 특별히 염려됩니다. 이곳은 서남쪽으로 바다를 정면하고 있고 또 중국과 서로 가깝습니다. 왜적이 만약 이곳을 점거하게 되면 비록 천하의 힘으로 탈취하려 하여도 탈취하지 못할 것입니다."(조선왕조실록 선조 29년 1월 3일)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에 오른 문신이자 '징비록'의 저자로 잘 알려진 서애 류성룡(1542∼1607)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596년 '탄환 같은 조그만 섬' 제주에 대한 왜적의 침입을 이같이 경계했다.
선조는 "적이 만일 제주를 빼앗아 점거한다면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 (중략) … 적이 전함(戰艦) 1천 척으로 곧장 항구에 침입 상륙하여 영책(營柵)을 설치하고 지구전을 획책한다면 우리나라 병력이 어떻게 당해내겠는가"라고 말하며 일본의 제주 공략 가능성을 우려했다.
조정의 우려대로 제주는 곧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왜군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전라도와 제주를 침략할 것이라는 비밀 첩보가 조정으로 전해지고 이내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전쟁을 종결하기 위한 오랜 강화회담이 결렬되자 1597년에 왜군이 14만 병력으로 다시 조선을 침략했다.
모함받은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는 사이 일본은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절영도와 가덕도, 칠천량해전에서 격파하고 곧이어 전라도를 공격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구상대로 해상과 육상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를 손에 넣은 일본의 다음 공격 차례는 제주와 수도 한양이었을 것이다.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에 제주를, 조선을 구한 것은 이순신이었다.
백의종군 후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부임한 이순신은 칠천량에서 생환한 12척의 배와 수군 패잔병 120명을 수습해 어란포해전(1597년 10월 7일), 벽파진 해전(〃 10월 17일)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1597년 10월 25일 명량해전에서 적은 수의 전선으로 133척의 왜선을 수장시켜 세계 해전사의 유례없는 대첩을 남겼다.
이규배 제주국제대 교수는 '조선시대 동아시아 삼국의 제주도 인식' 논문에서 "결과적으로 제주는 전쟁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제주도는 누가 점거하는가에 따라서 상대방을 견제하고 공략할 수 있는 선점효과로 인해 (임진왜란 기간)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주목받는 지역이었다"고 말한다.
이어 "명량해전 등 일련의 해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작전 하달로 인해 가시화됐던 일본의 제주공략이 근원적으로 좌절되는 분기점이 됐다"고 설명한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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