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영은 피선거권 박탈, 이재명은 유력 대권 후보?
● 허경영 피선거권 박탈 과정으로 보는 대한민국 현주소
● 허경영 옳다? 그래서 틀렸다!
● 현실 감각 ‘따위’ 외면한 공약
● 새롭지 않은, 오히려 낡은… 1990년대적 ‘큰 뻥’
● “허위사실 공표 가능성 농후한 자, 정치 배제해야”
지난해 10월 법원(1심)이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내린 판결문의 일부다. 법원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올해 4월 25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현재 그의 나이는 74세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그는 84세까지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허 대표가 유죄를 받은 건 2022년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 TV 방송 연설에서 "난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양자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선 정책보좌역이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병철의 양자도 박정희의 비밀보좌관도 아니기에, 그 발언은 공직선거법 제250조 허위사실공표죄 위반이 분명했다.
선거법이 아닌 다른 범죄를 저질러도 일정 기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법 체계는 선거법을 어긴 자의 피선거권을 10년간 박탈하도록, 한층 더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한 입법 취지는 오해의 여지가 없다. 정치는 사회 구성원의 의사를 표현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공동체 형성의 장이다.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 상습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 범죄자는 정치의 장에서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필귀정이지만 어딘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유죄 판결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허경영이라는 인물이 계속 선거에 출마하다 결국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기까지의 과정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우리 사회, 정치,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의 현주소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주는, 가장 확실한 '거울치료'법이기 때문이다.
정치, 허경영 등장 후 작동 멈추다
허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된 원인인 제20대 대선 방송연설(2022년 2월 28일)을 되짚어 보자. 그는 인사 후 본인의 슬로건이라 할 수 있는 문장으로 연설을 시작했다."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습니다."
허 대표는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두 달 전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로 3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모든 언론사가 자신을 여론조사에 포함하지 않는데다가 대선후보 등록조차 보도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여론조사와 TV에 나왔을 때 허경영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1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허 대표는 "언론과 선관위가 합심해 1위 할 수 있는 허경영을 몰아내고 있다"며 "주요 후보라는 사람들은 허경영의 공약을 모두 베끼는 중"이라고도 했다.
"현 정치권에서는 공약마저도 허경영의 국민배당금제, 출산 수당, 모병제, 여가부 폐지, 군인들 봉급 200만 원 주는 거, 이런 걸 전부 모방하면서 제 지지자들이 그쪽으로 상당히 몰려가고 있습니다."
이 말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그의 이름으로 나왔던 '황당 공약' 가운데 일부가 현재 시행되고 있거나 논의 단계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출산 수당과 결혼 수당이다. 허 대표는 2007년 출산 수당 3000만 원, 결혼 수당 1억 원을 제시했다. 가파르게 추락한 출산율, 그 바탕이 되는 혼인율 앞에서 많은 지자체와 정부, 심지어 기업까지도 '허경영 공약'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금 복지를 거론하거나 고민하고 있다.
필자는 "허경영이 옳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허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며 정치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 이후, 대한민국 정치는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 사회적 갈등을 드러내고 논의해 국가적 의제를 설정하는, 정치의 가장 핵심이며 중요한 기능이 작동하지 않게 됐다. '허경영 공약'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그건 허 대표가 옳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우리가 계속해서 틀려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인의 억울함을 토로한 허 대표가 가장 먼저 제시한 공약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긴급 재정명령권을 즉시 발급해 두 달 안에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1억 원을 주고, 국민배당금을 매월 150만 원씩 평생 지급하겠습니다."
허 대표의 호쾌한 돈 뿌리기 공약은 이게 끝이 아니다.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결혼축하금과 출산 수당이 빠질 수 없다.
"그리고 결혼하면 3억 원, 출산하면 5000만 원을 지급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국민을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허경영은 '오리지널'의 자신감을 뽐냈다.
"제 공약을 가져간다 해서 여야 정치인들이 제대로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비행기에서 타이어만 가져간다고 해서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습니까?"
허경영에게 현실 '따위'는…
듣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여당과 야당을 이루는 기성 정치권은 왜 이런 '좋은' 정책을 시행하지 않을까.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경제적 이유. 국민 1인당 1억 원을 갑자기 지급하면 그로 인한 화폐 가치 폭락, 물가 폭등, 환율 교란 등 경제적 충격을 피할 수 없다.둘째, 재정적 이유. 설령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무릅쓰고 현금 살포를 감행하려 해도, 그 재원을 마련할 방법이 요원하다. 허 대표는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너무 많다"며 낭비되는 국가 예산을 줄이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무보수직으로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국가 예산의 70%를 절약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셋째, 법적 이유. 헌법 제76조에는 허 대표가 말한 '긴급 재정명령권'이 언급돼 있지만 본 조 1항에 따르면 발동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며,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만 긴급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다.
끝이 아니다. 대통령은 긴급처분 혹은 긴급명령권을 행사한 후 반드시 국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긴급처분‧긴급명령권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정상적 국가라면 국민 1인당 1억 원을 나눠주고 매달 150만 원을 또 나눠주는 긴급 재정명령이 국회를 통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속단하기엔 이를지 모른다. 어쩌면 세상이 허 대표의 통찰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경제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한 허 대표의 견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북한이라는 영원한 숙제를 앞에 둔 그는 어떤 '천재적' 발상을 내놓았을까. 답은 이렇다.
"북한의 강원 원산시를 50년간 빌려서 홍콩처럼 만들어 북한 경제를 도와주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부딪치지 않게 하면 됩니다."
허 대표 스스로와 그의 지지자들이 말하는 대로 허 대표가 천재라면, 너무도 게으르고 기억력이 나쁜 천재일 것이다. 20대 대선으로부터 불과 2년 전인 2020년,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를 폭탄으로 폭파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었거나 도외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한이 원산시를 대체, 왜 한국에 홍콩처럼 빌려준단 말인가. 백번 양보해서 개성공단 같은 어떤 구역을 만든다 한들 북한이 또 폭파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허경영의 정책은 현실 '따위'에 굴하지 않는다. 그의 눈은 북한을 넘어 만주로 향한다.
"연해주에서 하바로프스키까지, 연해주의 100배 정도 되는 땅을 러시아로부터 빌려 한국 자치주를 만들고, 그곳을 개발해 100만 명의 새로운 공무원을 임명하면 청년 일자리도 만들고 아시아 통일도 주도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통일. 그렇다. 북한과의 통일은 그에게 너무 작고 시시한 과제다. 그는 아시아 통일, 더 나아가 세계 통일을 꿈꾼다. 기아, 환경 문제도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허경영 옳았다"는 말, 가당치 않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허경영 공약'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도출된 해답이 전혀 아니다. 이것은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면서 내놓는 허언에 불과하다. "결국 허경영이 옳았다"와 같은 말을 해선 안 된다. 사석에서 농담처럼, 푸념처럼 주고받을 수야 있겠지만 공론장에 내놓을 이야기는 전혀 되지 못한다.‘허경영 공약'을 살피면 대체로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허 대표는 본인의 이력을 주장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적극 부추긴다. 그의 피선거권을 앗아간 '이병철 양자, 박정희 보좌관' 발언은 그 맥락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외환위기 직후 갑자기 닥쳐온 경제 위기 앞에서 사회엔 고도 성장기에 대한 향수가 커졌다. 시종일관 온갖 명분을 들이대며 돈을 뿌리겠다는 그의 대표 공약도 이 흐름에서 이해할 일이다. 90년대는 호황기가 갑자기 경제 충격으로 돌변한 시대였다. 근면성실이라는 노동의 가치 따위는 옛 일이 돼버렸고,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대사가 국민적 유행어로 자리매김했다. "나를 찍으면 돈을 주겠다"는 허 대표는 이러한 분위기의 산물이나 마찬가지다.
‘허경영 공약'이 1990년대적이라는 점은 특히 그의 대북정책 및 북방정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의 '원산 조차론'은 이미 처절하게 실패로 귀결된 햇볕정책의 '판타지 버전' 수준이다. 러시아의 땅을 빌려 거대한 농장을 짓겠다는 주장 역시 현재 관점에서 보면 너무도 의아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의 세상을 사는 사람이 할 이야기인가 싶지만 사실 이는 소련 해체 후 한국에 진 빚을 러시아가 원자재, 헬기, 방산물자 등으로 상환했던 이른바 '불곰사업'의 맥락을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 시대에 사고방식이 멈춰 있는 사람이,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멈춰 있는 사람을 상대로 내놓을 법한 '천재적 발상'인 것이다.
2000년 출간된 그의 책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를 보면 전라도와 경상도를 합치고 가로로 나눠서 새로운 행정구역으로 개편하자는 주장이 등장한다. 이 또한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당적으로 부산에서 연거푸 떨어진 변호사 노무현이 일약 정치적 스타가 되고 돌풍을 일으킨 그 무렵, 즉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는 '지역감정 극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여겨졌음을 반영하고 있다.
‘허경영 공약'은 시대를 앞서가지 않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의 대중적 분위기에서 내놓을 수 있을법한 '큰 뻥'들이 모여 있을 따름이다. 뒤집어 놓고 보자면 바로 그 점이 심각한 문제다. 대한민국은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정치적 상상력, 방향성, 정치인의 도덕성과 준법 의식 등을 모두 상실한 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완벽하게 같은 '의적 판타지'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지에 대한 이 대표의 해법은 단순명쾌했다. "윤석열 정권이 그동안 퍼준 부자감세, 민생 없는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기만적 선심 공약 이행에 드는 900조~1000조 원에 비하면 (지원금 지급에 필요한 13조 원)은 정말 새 발의 피, 손톱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이 대표 지지자들에겐 허 대표와 그를 비교하는 것이 부당하게 보일 수 있지만 허 대표의 '국민배당금 150만 원' 공약과 이 대표의 '민생회복지원금 25만 원' 공약은 완벽하게 같은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나라의 도둑놈'들을 잡아서 낭비되는 돈을 아끼고, 이를 국민에게 되돌려준다는, 일종의 '의적 판타지'다. 현대 경제학과 재정학, 심지어 헌법적 상식마저 무시하는 방식이지만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흡사하다.
북한 및 러시아를 향한 1990년대적 관점에 여전히 묶여 있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유사성을 보인다. 앞서 살펴본 허경영의 '원산공단' 및 '러시아 농장'은 몹시 허황된 이야기다. 이 대표 역시 2021년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등을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현실성 부족을 잣대로 삼는다면 전자와 후자가 크게 다르지 않다.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허 대표는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향후 10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반면, 이 대표는 그렇지 않다. 2018년 5월 30일 KBS가 주최한 '2018 지방선거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이 대표는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셨죠?"라는 김영환 바른미래당 경기지사 후보의 질문에 "그런 일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답변이었지만 대법원은 2020년 10월 16일 "피고인이 방송토론회에서 친형 강제입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의혹을 제기하는 상대 후보자 질문에 대한 답변일 뿐, 적극적·일방적으로 널리 알리려는 공표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단행했다.
허 대표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대표는 어떻게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엄연히 TV로 온 국민 앞에 방송되는 토론회임에도, '연설'하는 것은 아니니, 적당히 뭉개가며 사실과 다른 말을 해도 된다는 논리일까. 판결문을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대법원의 논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허 대표는 향후 10년간 선거에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마치 그처럼 선심성 돈 뿌리기를 대표 공약으로 삼으며, 시대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외교‧안보‧대북 정책을 고수하는 또 다른 정치인은 오히려 원내 제1당의 대표이자 유력 대선후보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허위 사실을 사회공동체에 유포하거나 장차 이뤄지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공표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을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의 단호한 태도는 허경영이라는 한 사람에게만 적용돼선 안 된다. 그것은 '약강강약'의 이중잣대다. 사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허경영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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