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심을 향한 엇갈린 속내…늘리는 야당, 줄이는 여당
[주간경향] #지난 6월 17일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렸다. 대선 출마 당대표의 사퇴시한에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한 당헌 개정뿐만 아니라 국회의장 후보와 원내대표 경선 규칙 변경도 의제에 포함됐다. 오로지 현역 의원 100%의 투표로 선출하던 경선에 권리당원 투표를 20% 반영하는 ‘당원권 강화안’이 통과됐다. 이재명 대표는 “당원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지난 6월 19일 국민의힘 전국위원회는 오는 7월 23일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당원투표 80%와 여론조사 20%를 합산해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선출하는 규정을 확정했다. 지난해 3월 전당대회에서 적용된 당원투표 100% 규정을 바꿔 민심 20%를 새롭게 반영하기로 했다. 이른바 ‘당심’은 100%에서 80%로 줄어든다. 이헌승 전국위원회 의장은 “민심을 반영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지도부를 선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민심 20% 반영
지난 4월 10일 총선에서 크게 승리한 민주당과 참패한 국민의힘이 이른바 ‘당심’을 놓고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야당인 민주당은 당심의 반영을 늘리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당심을 줄였다. 야당의 바뀐 규칙은 내년 5월 원내대표 선거부터, 여당의 변경된 규칙은 오는 7월 23일 전당대회에서 적용된다. ‘당심 축소’가 당장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20% 여론조사 반영을 앞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논란이 크게 벌어졌다. 애초 일부 친윤(친윤석열)계는 지난해 전당대회 규칙대로 100% 당심 반영을 주장했고, 영남권에서는 20% 민심 반영 여론이 높았다. 수도권에서는 대부분 민심 반영 30%를 주장했다. 당 지지자들보다는 일반 국민이 선호하는 대표를 뽑자는 취지였다. 결국 황우여 비대위는 20% 민심 반영을 결정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20% 민심 반영이라고 하지만, 역선택 방지 조항을 고려하면 국민의힘 지지층 30%와 무당층 25% 정도를 더한 전체 국민 55%의 민심이 20% 반영된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당심(국민의힘 지지층)과 민심(일반여론 지지층)에서 월등한 우위를 보인다. 갤럽이 뉴스1의 의뢰로 지난 6월 14일부터 15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당대표 선호도는 유승민 전 의원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각각 29%와 27%를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나경원 의원은 9%,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6%의 선호도를 보였다. 이른바 ‘민심’으로 볼 수 있는 수치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 응답자의 59%가 한 전 위원장을 대표감으로 선택했고, 나머지 후보들은 10% 안팎의 수치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런 한 전 위원장의 압도적 우위 양상이 전당대회까지 지속할지는 알 수 없다. 친윤의 견제가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철규 의원 등 친윤이 잇따라 한 전 위원장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원 전 장관이 지난 6월 20일 출마를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친윤이 원 전 장관이나 나경원 의원을 밀면서, 한 전 위원장의 세력 확장을 막다가 결선 투표에서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나 의원에게서 캠프 좌장을 제의받았다는 조경태 의원은 “나 의원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며 “한 전 위원장에 쏠린 당심이 나중에는 나 의원에게로 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 선거 판세가 박빙으로 흐르면 20% 민심 반영은 결과적으로 뜻밖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엄경영 소장은 “당심이 100% 반영됐을 경우 친윤의 전략이 제대로 먹힐 가능성이 있었는데, 민심 20% 때문에 한 전 위원장의 승산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고 보았다. 이른바 당심 20% 축소 결정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당심 강화 역시 국민의힘 당심 축소처럼 결정 이전에 많은 논란을 낳았다. 국회의장 후보나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특히 중진 의원들은 당원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많이 표했다. 5선 의원들이 지난 6월 6일 이 대표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 중진의원 측 관계자는 “원내대표 선출은 그렇더라도 여야의 협치를 이끌어야 할 국회의장 후보자 선출에 특정 당의 당심이 반영돼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당심 강화 추진은 강성 당원의 지지를 받던 추미애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가 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됐다. 이 관계자는 “추 의원을 누르고 의장 후보가 됐던 우원식 국회의장이 강성 당원을 의식해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안을 상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바로 여당이 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면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고 말했다. 개원하자마자 의장보고 물러나라고 한 사례가 과거 국회에는 없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당심 20% 반영안 통과
‘당심은 곧 민심’이라는 말처럼 당심은 정당 내부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정치의 역사는 당의 주요 의사 결정이나 공직 후보 선출에서 1인 대표의 권력보다 당무위원회, 공천심사위원회 등 위원회 권력을 거쳐 대의원과 전 당원 등 다수의 구성원 권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지난해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보듯 당심 100% 선거는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마음)대로 이뤄졌고, 민주당의 당심 강화는 사실 명심(이재명 대표의 마음)대로 이뤄질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말이 당심이지, 진정한 상향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당심 반영치를 높였고, 패배한 정당은 민심 반영치를 높였다. 여야의 당심 ‘축소’와 ‘강화’라는 정반대 조치는 이번 22대 총선 결과가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민주당이 대승한 것은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윤 대통령의 실정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민주당이 이를 당심 강화의 요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역시 민심 20% 반영이 선거 패배 책임을 피해가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엄경영 소장은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정당사를 보면 선거에 지면 민심을 더 많이 반영하고 당의 지지율이 높을 때는 당심을 더 많이 반영하는 식의 대처를 해왔다”고 말했다. 선거에 졌을 때 ‘면피용’으로 민심 반영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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