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정말 만인에게 평등한가”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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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라는 직업상 20년 넘게 법으로 먹고살면서 법이 밥상 위에 올라오는 밥처럼 따뜻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법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차고 냉정하다.
부실 치료와 부실 심사가 곧바로 위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납부 기한 7일을 지키지 못해 항소 기회를 얻지 못한 발달장애인, 이렇게 가차 없이 냉정한 법이 법을 집행하는 법원에도 적용되고 있을까? 최근 법원의 형사보상 절차가 속절없이 지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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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라는 직업상 20년 넘게 법으로 먹고살면서 법이 밥상 위에 올라오는 밥처럼 따뜻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법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차고 냉정하다. ‘만 명’이 아니라 ‘만인’에게 평등해야 할 법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법이 힘없는 시민들에게 냉정하고 오히려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에는 관대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은 발달장애인은 형기의 8배가 넘는 11년 4개월 동안 치료감호소에 수용되었다. 주치의가 ‘더 이상 치료 필요성이 없다’고 의견을 냈지만 6개월마다 진행된 법무부 산하 치료감호심의위원회는 치료감호를 종료하지 않았다. 2020년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뒤에야 치료감호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발달 수준에 맞는 세밀한 치료가 아닌 관성적인 약물 처방을 하고, 치료 필요성 등 치료감호 요건에 관한 실질적 판단보다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치료감호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쳤음이 확인되었다. 발달장애인은 1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치료’가 아닌 ‘불필요한 구금’이었다고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기각했다. 부실 치료와 부실 심사가 곧바로 위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발달장애인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장을 제출했다. 200만원이 넘는 인지대·송달료 등 소송비용이 걸림돌이었다. 1심 재판부는 보정명령을 통해 7일 안에 소송비용 납부를 명령했고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았지만, 이 기한을 맞추지 못했다. 법원은 납부 기한으로 정한 7일이 경과되자, 2023년 1월5일 가차 없이 항소장 각하 명령을 내렸다. 뒤늦게 소송비용을 납부하고 보정서를 제출했지만, 법원은 단호했다. 결국 당사자는 항소 기회를 상실했다.
납부 기한 7일을 지키지 못해 항소 기회를 얻지 못한 발달장애인, 이렇게 가차 없이 냉정한 법이 법을 집행하는 법원에도 적용되고 있을까? 최근 법원의 형사보상 절차가 속절없이 지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의문이 든다. 형사보상 절차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피고인이 구금과 비용을 국가로부터 보상받는 절차다. 오래전부터 이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장식품으로 전락한 헌법 제27조
국회는 2018년 형사보상법 개정을 통해 ‘보상 청구를 받은 법원은 6개월 이내에 보상 결정을 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마련해 처리 기한을 못 박았다. 그러나 납북귀환 어부 형사보상 절차에서 이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시사IN〉 제853호 ‘납북귀환 어부 유가족 두 번 울리는 법원’ 기사 참조).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형사보상을 청구한 납북귀환 어부들은 형사보상 재판부에 신속한 진행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법원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들은 답답한 마음에 대법원 홈페이지 ‘법원에 바란다’ 게시판을 통해 민원도 제기했지만 이마저도 반려당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대법원이 민원 반려의 근거로 언급한 헌법 조항이다.
법에 정한 기한을 지키지 못한 시민에게는 가차 없이 적용하는 법을 법관들이 지키지 않은 현실, 법관도 법을 지키라고 민원을 제기해도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 조항으로 ‘입틀막’ 당하는 현실, 법관의 독립 앞에서는 장식품으로 전락한 헌법 제27조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조항을 곱씹으며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말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가?”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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