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 돌리고 깜빡이 켜는 ‘로봇 운전사’ 등장…구식 차도 자율주행차로 변신
인간 닮은 ‘휴머노이드’…팔·다리 갖춰
구형차 운전하며 실질적 자율주행 구현
교차로 통과에 약 2분…성능 개선 계획
청각으로 ‘기계 이상’ 파악 기능 탑재 예정
# 2035년 지구. 거리와 집 곳곳에는 인간처럼 머리와 팔다리, 몸통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즐비하다. 로봇은 화물을 배달하고 쓰레기를 수거한다. 요리를 하고 반려견 산책도 시킨다. 움직임과 지적 능력이 인간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자동차 운전은 로봇의 몫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자동차 내에 자율주행 장치가 내장돼 있어서다. 스스로 알아서 달리는 자율주행차 안에서는 로봇도 승객일 뿐이다. 미국 영화 <아이, 로봇> 얘기다.
현재 과학계와 기업이 지향하는 자율주행차 개발 방향도 <아이, 로봇> 속 자동차와 유사하다. 자동차가 자신의 차체에 장착한 기기를 이용해 전방 장애물과 교통 신호를 인식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자율주행과 관련해 새로운 발상이 나왔다. 자율주행하기 위한 첨단 기술을 차체에 가득 품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동차 운전석에 똑똑한 머리와 사람 같은 신체를 갖춘 로봇을 앉히는 개념이다. 자율주행 기능이 전혀 없는 구식 자동차를 ‘로봇 운전사’가 대리 운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면 사실상 모든 자동차를 자율주행차로 변신시킬 수 있게 된다.
교통 신호등 인식해 출발
이달 초 일본 도쿄대 연구진은 사람 대신 운전석에 앉아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게재됐다.
‘무사시’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사람을 빼닮았다. 바로 ‘휴머노이드’다. 동그란 머리 전면에는 사람 눈 역할을 하는 고해상도 카메라 2대가 달렸다. 몸통에는 두 팔이 장착됐고, 팔 끝에는 손가락이 5개 붙어 있다. 쭉 뻗은 다리도 2개 갖췄다.
연구진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무사시는 1인승 전기차 운전석에 앉아 두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차량 전방을 세심히 살핀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차 후방에 장애물이 없는지도 파악한다. 차량 앞 신호등이 무슨 색깔인지도 확인한다.
무사시는 자신의 손가락과 팔을 움직여 운전대를 돌리고, 다리와 발을 위아래로 들었다가 놓으면서 가속 페달이나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한다. 방향 지시등을 켜거나 끄기도 한다. 인간이 운전하는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연구진은 이러한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공기 압력으로 각종 부품을 작동시키는 구동장치, 그리고 전기로 돌아가는 모터를 무사시 몸 곳곳에 수십개 넣었다.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 센서도 내부에 장착했다.
무사시 있으면 어떤 차도 ‘자율주행’
무사시의 등장은 기존과 다른 자율주행차 개발 전략이 출현했다는 뜻이다. 현재 학계와 기업들이 연구 중인 자율주행차는 레이저를 쏴 전방 물체를 식별하는 ‘라이다(LiDAR)’나 인식 성능이 매우 좋은 카메라 같은 첨단 기기를 차량에 내장하고 있다.
무사시는 자율주행을 지향하면서도 철학이 다르다. 무사시는 자율주행 기능이 없는 차량 운전석에 사람 대신 올라타 운전한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자율주행을 구현한다.
무사시만 있으면 모든 구닥다리 자동차, 그리고 자율주행 기능이 없는 저가 자동차를 자율주행차로 변신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자율주행을 이용하기 위해 최신 고가 자동차를 안 사도 된다. 무사시를 앉히기 위해 기존 자동차를 개조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무사시가 연구·개발(R&D) 단계여서 1인승 자동차를 운전하지만, 향후 기술이 더 발전하면 5인승 이상 자동차를 몰 수 있다. 무사시가 사람 대신 운전을 맡아 조수석과 뒷좌석에 올라탄 사람들을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는 뜻이다. 무사시가 앉을 운전석에는 승객이 앉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율주행 보급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민첩성·유연성은 개선 과제
하지만 무사시가 아직 사람 운전자를 대체할 단계는 아니다. 능수능란하게 자동차를 조작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서다. 몸 동작이 느린 데다 부드럽지도 못하다.
연구진이 실시한 야외 주행 시험에서 무사시는 왕복 2차선 도로가 직각으로 겹친 작은 교차로에서 주행 방향을 90도 꺾어 다른 도로로 진입하는 데 무려 2분을 썼다. 인간이 걷는 속도보다 크게 느리다. 사람이 운전했다면 단 몇 초 만에 교차로에서 회전을 끝냈을 것이다.
또 무사시는 평지가 아닌 언덕에서는 어느 정도 가속 페달을 밟아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부드럽게 치고 올라갈 수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 현재 개발된 소프트웨어는 평지 주행과 관련한 정보만 담고 있는 한계 때문이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향후에는 이미 탑재된 청각 능력을 활용해 자동차 소음에서 기계적인 이상 징후를 파악하는 기능 등을 추가할 것”이라며 “사람 피부와 유사한 물질도 몸통에 입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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