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녹내장의 80%는 ‘정상 안압’ 40세부터 매년 안과 가야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2024. 6.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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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110만 명 환자 발생…시신경 손상되면 실명 위험 높아져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녹내장 환자 110만 명 시대다. 녹내장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2018년 약 90만 명에서 2022년 약 112만 명으로 최근 5년 사이 20% 넘게 증가했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가 있다. 노령 인구 증가와 정기적인 건강검진으로 녹내장을 과거보다 많이 발견한다. 앞으로는 고령화까지 가속돼 녹내장 환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녹내장은 세계 실명 원인 2위의 안과 질환이다. 시신경은 한번 손상되면 회복되지 않는데, 시신경을 망가뜨리는 대표적인 질환이 녹내장이다. 늦게 발견할수록 실명 위험이 커진다. 초기 자각 증상이 없어 시신경이 많이 손상된 후에 발견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전문의들은 40세 이후부터 1년에 한 차례씩 눈 검진을 받으라고 권고한다. 그럼에도 평소 안과를 찾아 눈 건강을 살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생애 한 번도 눈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4명 중 1명이라는 국민건강영양조사(2010~12년) 결과도 있다. 

녹내장은 백내장과 이름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질환이다. 이대목동병원 안과 서울 교수는 "백내장과 녹내장은 이름만 유사할 뿐, 질환이 생기는 원인과 부위에도 차이가 있고 치료 접근법도 다르다. 백내장은 수정체에 혼탁이 생기는 질환으로 수술을 통해 어느 정도 치료할 수 있어 완치 개념이 존재하지만, 녹내장은 시신경이 손상된 질환으로 완치나 회복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한 환자가 강동경희대병원 안과에서 눈 검사를 받고 있다. ⓒ강동 경희대병원 제공

'폐쇄각 녹내장'과 '개방각 녹내장' 구별해야

녹내장의 주요 원인은 안구의 압력(안압)이다. 안구에는 둥그런 눈의 형태를 유지하고 눈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안구액(방수)이 있다. 방수는 매일 분비되고 배출되면서 일정한 안압을 유지한다. 그런데 방수가 배출되지 않으면 안압이 높아져 시신경이 손상되는 녹내장이 발병한다. 

방수가 배출되지 않는 이유는 배수로(섬유주)가 막혔기 때문이다. 이를 폐쇄각 녹내장이라고 한다. 섬유주가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으나 방수 배출이 안 되는 경우를 개방각 녹내장이라고 한다. 폐쇄각 녹내장은 안압이 급격히 상승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구토도 한다. 눈 주변 통증과 충혈이 발생하고 빠른 시력 손실이 진행된다. 이런 증상 때문에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증상 발생 후 수 시간 만에 시력을 잃을 수 있다. 

개방각 녹내장은 섬유주가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서서히 막히므로 안압도 천천히 상승한다. 안압이 아예 오르지 않는 경우(정상 안압 녹내장)도 있다. 정상 안압 녹내장은 정상 안압(11~21mmHg)에도 손상될 만큼 시신경이 약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서양에서는 안압이 높은 개방각 녹내장이 많으나 국내에는 정상 안압 녹내장이 전체 녹내장의 80%를 차지한다. 그래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신경을 상당히 잃은 후에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정상 안압 녹내장을 조기에 발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의료계의 숙제다. 최근 방수의 단백질 변화를 측정하거나 인공지능(AI)을 이용하는 등으로 조기에 발견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안과 강자헌 교수는 "안압이 정상이라도 물리적 압력이나 혈류 장애로 시신경이 손상될 수 있으므로 시신경 손상 여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녹내장이 발병하면 양쪽 눈의 중심부 시야는 괜찮은데 주변 시야가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좁아지는 증상이 생긴다. 마치 터널 안에서 밖을 보는 것과 같다. 시야가 매우 좁아지면 주변 사물과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계단이나 낮은 문턱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거나 운전할 때 표지판이나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아 사고를 내기도 한다. 심지어 실명까지 유발하는 심각한 질환이지만 대부분은 초기에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실제로 눈에 불편한 증상이 없지만, 건강검진 등을 통해 녹내장으로 진단받거나 다른 증상으로 내원해 녹내장을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침침함 등의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시신경 손상이 진행된 경우가 많다. 

약물·레이저·수술 치료로 안압 조절

병원에서는 녹내장이 의심되면 3단계(안압 측정, 시신경·망막 검사, 시야 검사)로 확인한다. 안압 측정은 녹내장 진단의 필수 검사로, 눈에 고압의 공기를 쏴서 각막의 변형을 확인한다. 안압이 높으면 녹내장 가능성이 있지만 안압이 정상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그래서 시신경·망막 검사를 진행한다. 눈 사진을 찍어 시신경과 망막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시신경 두께나 부피를 측정하는 안구 단층 촬영(OCT)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시야가 좁아진 정도를 파악하는 시야 검사를 한다. 

녹내장이 확진되면 곧바로 치료를 시작한다. 녹내장 치료는 시력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시력 상실을 최대한 막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방수가 적절히 분비되고 배출되도록 하는 것이 녹내장의 주요 치료법이다. 서울 교수는 "녹내장 진행은 주관적인 증상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녹내장을 진단받았다면 꾸준한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 손상된 시신경을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 치료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따라서 녹내장으로 손상된 시신경은 회복할 수 없다. 녹내장 치료는 완치가 아닌 시야 결손 진행을 늦추고 실명을 방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폐쇄각 녹내장은 응급질환이므로 빠른 치료로 안압을 떨어뜨려 시신경을 보존하는 것이 관건이다. 안압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맥주사와 함께 복용 약이나 점안제를 사용하며, 안압이 내려가면 레이저 절개술을 통해 방수가 배출될 우회로를 만들어준다. 국내에 가장 흔한 정상 안압 녹내장을 포함한 개방각 녹내장은 안압을 조절해 시신경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이는 치료가 기본이다. 더 이상 시신경이 손상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구체적인 치료법으로 크게 3가지(약물·레이저·수술) 방식이 있다. 약물 치료는 안약을 평생 사용하면서 높은 안압을 조절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쪽 눈에 약물 치료를 시작해 1~4주 후 효과를 확인하고 반대편 눈에도 약물 치료를 진행한다. 안압이 낮아지면 눈 속의 혈액순환이 좋아져 시신경을 보호할 수 있어 시력 저하나 실명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한 가지 약물에 효과가 없으면 다른 약물로 변경하거나, 약물 투여량을 조절하거나, 여러 약물을 병행해 사용한다.

안압이 매우 높거나, 안약으로 안압이 효과적으로 조절되지 않거나, 안약을 사용할 수 없거나, 안약 사용 후 심한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이미 심각한 시신경 손상이 발생한 경우에는 레이저 시술이나 수술 치료가 필요하다. 레이저 치료(섬유주 성형술과 홍채 절개술)는 레이저로 섬유주 또는 홍채에 구멍을 뚫어 방수가 배출되도록 하는 시술이다. 수술도 방수 배출을 위한 통로를 만드는 치료법이다. 수술로 만든 배출 통로가 달라붙어 다시 막힐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방수를 빼내는 관을 넣는 수술(임플란트 수술)을 진행한다. 서울대병원 안과 김영국 교수는 "녹내장은 한 번의 수술로 해결된다기보다는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다. 녹내장으로 실명하거나 생활에 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의지를 가지고 철저히 관리하면 좋은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인이 분명한 녹내장은 그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가 우선이다. 예컨대 감염이나 염증이 원인이라면 항바이러스제나 스테로이드제 등 약물을 사용한다. 종양이 안구액 배출을 막는 상황일 때는 그 종양을 제거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백내장이 원인인 경우에는 백내장 수술을 진행한다. 

고혈압 관리도 녹내장 예방법

녹내장 예방을 위한 특별한 방법은 없다. 다만 녹내장은 압력의 영향을 받는 질환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안압이 높아지는 행동을 삼가는 것이 좋다. 물구나무서기, 관악기 연주, 어두운 곳에서 장시간 스마트폰 보기, 한 번에 많은 물 마시기 등이다. 

녹내장에서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조기에 발견해야 실명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질병관리청과 대한안과학회가 2017~18년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40세 이상 국민 중 3.4%가 녹내장 환자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눈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적다. 매년 안과를 찾거나 건강검진 때 안저검사를 포함하면 녹내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안저검사는 동공을 통해 망막이나 시신경 이상을 확인하는 정밀 검사로, 3대 실명 질환(녹내장·당뇨망막병증·황반변성)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 안과 김찬윤 교수는 "40대 이상이라면 연 1회 안과 검진을 통해 녹내장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특히 고혈압 환자는 전문의의 진료를 통해 혈압을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혈압 환자는 정상인보다 녹내장 위험이 약 16%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혈압에 간 질환이나 고지혈증까지 동반되면 녹내장 위험은 22% 더 높아진다. 근시와 얇은 각막도 고위험군이다. 최근 라식 등 각막굴절교정술로 인해 각막이 얇은 환자가 많다. 심한 고도 근시가 있는 젊은 층도 녹내장이 발생할 수 있다. 부모에게 녹내장이 있다면 자녀의 녹내장 발생 위험은 2~3배 높으며, 형제 중 녹내장이 있다면 발생 위험이 7~8배까지 올라간다. 모든 연령대에서 녹내장이 발생하나 특히 60세 이후 녹내장 위험은 6배 높다. 이와 같은 고위험군은 전문의의 지침에 따라 더 자주 눈 검사를 받아야 녹내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강자헌 교수는 "녹내장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시신경 손상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특히 40세 이상과 고도 근시 환자는 1년에 한 번 안과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또 녹내장 가족력이 있거나 원시 고안압 또는 6개월~1년 이상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사람, 당뇨병·고혈압이 있으면 좀 더 주의 깊게 정기 검진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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