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롭기만 한 그의 일상, 왜 감동적일까…영화 '퍼펙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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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여름날 커다란 나무에 바람이 불면 '쏴'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반짝거린다.
그는 도쿄 시부야구(區)의 17개 공중화장실을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새롭게 단장한 '더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단편영화 제작을 의뢰받고 지금의 도쿄를 담은 장편을 만들어보겠다고 역제안하면서 '퍼펙트 데이즈'를 연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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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화창한 여름날 커다란 나무에 바람이 불면 '쏴'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반짝거린다.
일본에선 이 반짝임을 '고모레비'라고 부른다.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퍼펙트 데이즈'는 고모레비를 구식 필름 카메라에 담곤 하는 남자 히라야마(야쿠쇼 고지 분)의 이야기다.
노년에 접어든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노동자다.
혼자 사는 그는 이른 아침 이웃집 할머니의 빗질 소리에 잠을 깨고, 청소노동자 유니폼을 입고, 집을 나설 때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작은 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들으면서 출근한다.
영화는 규칙적이기 이를 데 없는 히라야마의 며칠에 걸친 일상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관객은 히라야마의 단조로운 일상에 어딘가 특이한 점이 있다는 걸 곧 눈치채게 된다.
잠자리에서 전등을 켜놓고 미국의 문호 포크너의 소설을 읽는 히라야마의 모습은 그가 과거엔 지금과는 다른 일을 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공중화장실 변기를 빈틈없이 닦아내는 그의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활동을 넘어 종교적인 의식(儀式)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보여주지 않지만, 이따금 그의 규칙적인 일상에 균열을 내는 사건은 어렴풋이 무언가를 짐작하게 한다.
소원하게 지내는 여동생의 딸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일이 그렇다. 조카와 대화하던 히라야마는 자신과 여동생이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고 말한다.
관객은 그의 과거가 어땠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과거 히라야마는 여동생과 같은 세계에 속했고, 그때 그는 적어도 고모레비의 아름다움을 누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짐작해볼 수는 있다.
그런 히라야마의 모습은 찌들어 버린 삶에 염증을 느끼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새로운 삶을 찾아 기어코 떠나는 톨스토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연상시킨다.
관객은 히라야마가 등을 돌리고 떠난 세계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삶을 돌아보게 된다.
'퍼펙트 데이즈'는 가시적인 현상 너머의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으면서 관객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식으로 감동과 깨달음을 끌어내는 데 이 영화의 놀라운 힘이 있다.
벤더스 감독은 '파리, 텍사스'(1987)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베를린 천사의 시'(1993)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는 도쿄 시부야구(區)의 17개 공중화장실을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새롭게 단장한 '더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단편영화 제작을 의뢰받고 지금의 도쿄를 담은 장편을 만들어보겠다고 역제안하면서 '퍼펙트 데이즈'를 연출하게 됐다.
'퍼펙트 데이즈'는 벤더스 감독과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고지의 만남으로도 주목받았다.
'큐어'(1997), '우나기'(1999), '쉘 위 댄스'(2000) 등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야쿠쇼는 '퍼펙트 데이즈'로 지난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7월 3일 개봉. 124분. 12세 관람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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