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내가 결정하게 해달라"…대한민국 첫 존엄사 시행[뉴스속오늘]

마아라 기자 2024. 6.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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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품위 있는 죽음→잘 죽기 위한 준비로 의미 확대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9년 6월23일.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환자 가족들의 소송에 대법원이 판결을 한 지 33일 만에 대한민국에서 첫 존엄사가 시행됐다.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는 이날 오전 10시22분경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자발호흡으로 연명했다. 그는 201일만인 2010년 1월10일 사망했다.

◇대한민국 첫 존엄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보호"

2009년 6월2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국내 처음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식의 존엄사가 시행됐다. 사진은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뒤 사망에 이르는 김 할머니(77)를 지켜보는 가족과 의료진의 모습. /사진=뉴시스
우리나라에서 존엄사 논쟁을 처음 촉발한 건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당시 뇌 수술을 받고 자가 호흡을 못 하게 된 환자를 배우자의 요구에 따라 병원이 퇴원시켰고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떼자마자 곧바로 사망했다. 이후 담당 의사들이 살인죄로 기소됐다. 이들은 2004년 5월 살인죄가 아닌 살인방조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대법원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이 살인 행위를 도운 점은 인정된다고 보면서도 "퇴원을 허용한 것은 환자의 생사를 가족의 보호 의무 이행에 맡긴 것에 불과하므로 살인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아내는 항소심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했다.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뗀 인턴만 무죄를 인정받았다.

이후 의사들은 소생 가능성이 없어도 자칫 환자를 돌려보냈다가 살인죄를 쓸 수 있는 상황을 인지했다. 김 할머니 역시 이 같은 분위기 속에 "환자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병원의 주장에 따라 몇 개월간 연명의료를 계속해야 했다.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가처분신청을 낸 뒤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가처분신청은 기각됐지만, 민사소송에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첫 존엄사 판결을 끌어냈다.

당시 법원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상규에 부합하고 헌법 정신에도 어긋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한국의 존엄사법, 2018년 2월부터 시행

/사진=김현정디자이너
존엄사법은 2016년 1월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라매병원 사건 논란 이후 19년 만이다.

중단할 수 있는 연명 의료는 심폐소생술과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네 가지로 한정됐다. 통증 완화 의료나 영양분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은 중단할 수 없도록 했다.

연명 의료를 중단하려면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야 하고, 치료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밝히거나 이런 의사를 문서로 남겨야 한다. 문서가 없으면 가족 두 명이 평소 환자의 뜻이라고 진술해야 하는데 본인 의사를 추정할 수 없는 경우 가족 전원이 합의해야 의료가 중단된다.

존엄사법은 유예기간을 거친 뒤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으로 시행되고 있다. 적용 대상은 말기 환자나 식물인간 상태가 아닌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매우 좁게 정해졌다.

◇존엄사와 안락사, 살인 방조? 조력자살?…'조력존엄사법' 발의 관심

'안락사'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중환자의 고통을 걸어주기 위해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가운데 식물인간 상태처럼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영양 공급 같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가 '존엄사'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의사 등 타인이 치명적인 약을 처방하거나 주입해 생명을 단축하는 방식은 '적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또한 회복 가능성 없는 환자가 고통을 덜기 위해 의사에게 치명적인 약이나 주사를 처방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조력사망'(조력자살)이라고 칭한다. 직접 실행한다는 점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구분된다.

존엄사는 연명 치료 중단에서 품위 있는 죽음, 그리고 '잘 사는 법'과 같은 맥락의 '잘 죽는 법'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의 '웰다잉'(Well-dying, 좋은 죽음)으로 인식이 변화하며 세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한 국가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고 지속되는 고통'을 겪어야 하고 '최소 2명의 의사가 절차에 동의해야 한다' 등의 깐깐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안락사를 허용한다. 네덜란드처럼 적극적 안락사를 법제화한 나라는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 △뉴질랜드 등이 있다.

존엄사는 △대만 △오스트리아 △핀란드 △아르헨티나 등에서 법제화됐으며, 미국은 일부 주(오리건,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등)에서만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다.

조력사망이 합법인 나라는 스위스다. 1942년부터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력사망을 허용하고 있다. 스위스 조력자살 지원단체인 디그니타스는 2016년 한국인이 처음으로 조력사망을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은 환자 요청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는 있지만, 아직 연명치료 중단을 넘어 약물 투여나 처방은 불법이다. 현재 스위스에서 단체의 도움을 받아 사망한 한국인은 10명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존엄사 허용 관련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조력존엄사법) 제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을 존중해 환자가 본인의 의사로 담당 의사의 조력을 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으로 해외의 조력자살과 비슷한 맥락이다. 존엄사를 도운 담당 의사는 현행법상 형법에 따른 자살방조죄 적용에서 제외된다.

제정안으로 발의된 법안은 국회법상 상임위가 공청회를 열어 논의해야 한다. 입법부 차원의 공론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마아라 기자 aradazz@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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