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달넘은 의료공백 끝은…이달말 다시 '마무리 vs 확산' 기로
범의료계 특위 구성에 서울대병원 휴진 중단으로 대화 분위기 '고조'
반복되는 집단행동에 여론 악화…의정 '물밑대화'로 내주 협의체 꾸려질 수도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이달 초 정부가 전공의들에 대한 유화책을 발표하면서 '상황 점검' 시점으로 밝혔던 6월 말이 다가오면서 넉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료 공백 사태가 다시 봉합과 확산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가 교수들과 지역의사회 등이 참여하는 범의료계 특위를 출범하면서 의정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의료공백 사태가 마무리될지 기대된다.
환자단체가 대규모 거리 집회를 계획하고 있고 보건의료 노동자단체가 이달 말까지 진료 정상화가 안 되면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압박하는 등 신속한 사태 해결에 대한 여론의 요구 또한 커지고 있다.
다만, 일부 의대 교수 등 의료계는 이달 말과 내달 초 '무기한 휴진'을 계획하고 있어 정부와 의료계가 사태 해결의 '묘책'을 찾지 못한다면 의료 현장의 혼란과 환자들의 고통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정부 "마냥 기다리기 어렵다"…'미복귀 전공의 처분' 고민
23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4일 복귀 전공의에게는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중단'하고,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사직서를 수리하고 여론을 감안해 대응하겠다는 유화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마냥 기다리기 어렵기 때문에 너무 늦지 않게 결정해 주시길 부탁한다"며 "6월 말 진행 상황을 중간 점검하고 필요시 보완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당시 미복귀자에 대해서는 "전공의들이 얼마나 복귀하는지, 비상진료체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등과 여론을 감안해서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는데, 6월 말 상황을 본 뒤 7월 초에는 어떤 처분을 할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환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일단은 병원들이 전공의들의 복귀 설득에 더 속도를 내 달라고 요청할 생각"이라며 "이르면 7월 초에는 미복귀자에 대한 '결단'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의사단체들의 요구대로 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취소'하며 '없던 일'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전공의 이탈 초기 내렸던 각종 명령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는 만큼 전공의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며 '역습'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된다면 향후 의료개혁 추진 과정에서 정부에 '독'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는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을 내릴지, 복귀자와 마찬가지로 행정처분 절차 '중단'을 결정할지 고민하고 있다. 앞서 '여론과 비상진료체계 상황'을 고려하겠다고 한 만큼 어떤 결정을 내릴지 가능성은 열려있다.
행정처분을 내린다면 의료계의 반발이 더 거세질 수 있고, 미복귀자에게도 선처를 한다면 이탈하지 않은 전공의나 복귀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범의료계 목소리 모으고, 무기한 휴진 중단 움직임…꿈쩍않는 전공의 '변수'
다시 의정 갈등의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시작된 의정 대화 움직임은 의료공백의 긴 터널이 끝이 날 수 있다는 기대를 높인다.
의협은 교수, 전공의, 시도의사회 대표 3인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를 설치하고 전날 첫 회의를 열었다. 올특위가 그동안 정부가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던 '의료계의 공통된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면서, 의정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상황이다.
올특위는 회의 후 "'형식, 의제에 구애 없이 대화가 가능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환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2025년 정원'을 의제에 포함할지 여부를 두고 정부와 잠시 공방이 오가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대화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전날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을 중단한 것도 의정 대화에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의대학-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1일 휴진 중단 사실을 알리면서 "휴진 결의 이후 정부는 전공의 처분 움직임을 멈추는 등 유화적인 태도 변화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의협과 세브란스병원은 오는 27일, 서울아산병원은 다음 달 4일 각각 휴진 계획을 발표했고, 강남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다른 '빅5' 병원도 휴진 여부를 논의하고 있지만,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결단'이 의료계 전체로 확산할 경우 대화 분위기가 더 빠른 속도로 조성될 수 있다.
다만 힘들게 시작된 대화 분위기 속에서도 장기간 의료현장을 이탈하고 있는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여전히 '탕핑'(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중국 신조어)의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사태 해결에 부정적이다.
의협과 의대교수 단체 등이 올특위에 전공의의 자리를 비워놨지만, 전공의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불참 의사를 밝혔고, 전날 첫 올특위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의대생들 역시 올특위 참여에 부정적이다. 수업거부 움직임이 누그러지지 않자 서울의대 학장단은 지난 20일 학생들에게 "선배님들은 대한제국 시절에도, 일제 강점기에도, 전란에도,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놓치지 않았다"며 강의실 복귀를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투쟁' 자세를 버리지 않는 이상은 의정 간 극적인 타협이 이뤄진다고 해도 전공의와 의대생의 이탈에서 시작된 의료공백 사태는 해소되기 어렵다.
의협은 전공의와 의대생의 올특위 합류를 기다릴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도 "전공의들이 직접 대화에 참여해 사태 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무기한 휴진'에 악화한 여론, 신속한 해결 '압박'…의정 간 '협의체' 구성 기대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론은 의료계와 정부 모두를 향해 악화하고 있다.
법원이 의대 증원에 대해 정부 쪽 손을 들어주고 2025년도 증원이 확정되면서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의료계가 '집단 휴진' 카드를 꺼내 들며 혼란이 더 커지자 환자나 보건의료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직접 '행동'에 나서겠다며 의정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유총)는 다음 달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다른 환자단체들과 함께 환자와 보호자 1천명이 참여하는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촉구 환자 총궐기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의료계와 정부가 환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상황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땡볕으로 나와서라도 직접 국민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환자단체가 이렇게 대규모로 집회를 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환자단체들에 따르면 1천명 규모가 참여하는 환자 집회는 과거에는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성명이나 기자회견 등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앞으로는 직접 행동을 하겠다는 의도다. 환단연은 이미 집단휴진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온라인 피케팅'을 시작했다.
의협의 지난 19일 집단휴진을 계기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휴진하는 동네 병·의원에 대해 불매 운동을 벌이자'는 움직임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환자를 외면하고 파업(휴진)에 동참한 병의원 명단 공개와 이용 거부 불매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선언했고, 한 환자는 휴진에 참여한 의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협과 세브란스병원이 집단휴진을 예고한 27일 지부장-전임간부 연석회의를 열어 투쟁방안을 논의하기로 하면서, 월말까지 진료 정상화가 안 되면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여론이 전보다 더 강한 목소리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가운데, 정부의 의료계 사이의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도 속도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와 의료계는 올특위 구성 후 본격적인 의정 대화를 위한 물밑대화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의제 등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를 본다면 이르면 다음 주 중 의정 간 대화체가 꾸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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