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도 법원서 ‘줄파산’…“파산하는 조합 더 나온다” [민경진의 판례 읽기]

2024. 6. 2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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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확보 어렵고 추가분담금도 눈덩이
사기범죄까지 기승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는 지역주택조합이 줄을 잇고 있다. 고금리로 인해 금융비용이 크게 오른 데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 조달까지 어려워지면서 어렵게 토지를 확보해 조합을 설립하고 나서도 파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이 파산할 경우 내 집 마련은커녕 조합에 납부한 분담금마저 돌려받지 못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법원서 회생 신청도 ‘기각’

서울회생법원 18부는 2024년 6월 18일 ‘행운동 더퍼스트힐(옛 서울대역편백숲2차) 지역주택조합 설립추진위원회’에 대해 파산선고를 결정했다. 채권 신고는 7월 1일까지 받고 채권자집회 및 채권조사 기일은 7월 26일로 정했다.

재판부는 “채무자에게는 지급불능 및 부채 초과의 파산원인 사실이 존재하므로 관련 법을 적용해 파산을 선고하기로 한다”고 판시했다.

행운동 더퍼스트힐 지역주택조합 추진위는 서울 봉천동 66 일원에 총 1042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립을 추진했다. 추진위는 2008년 봉천동에 처음 사무실을 열었고 2019년 11월 창립총회를 거쳐 본격적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사업지가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과 인접한 점 등을 내세워 사업성을 홍보했다. 하지만 토지사용권한 확보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등 사업이 오랜 기간 지연됐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 상당수가 가입계약을 해지해 분담금을 반환받기도 했다.

일부 조합원은 추진위를 상대로 부당이득금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머지 가입자들의 분담금 납부마저 지연됐고 이에 추진위의 재정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추진위는 2023년 11월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했다. 법원의 개시 전 조사 결과 추진위의 자산 총계는 약 532억원인 반면 부채 총계는 약 761억원에 달했다.

이에 재판부는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를 초과함이 명백해 회생보다는 파산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채권자 이익에 부합한다”며 회생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추진위는 다시 파산 절차를 밟았고 법원은 이날 파산선고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서울에서만 4곳 파산

지역주택조합의 파산은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 5년간의 법원 파산 사건 공고를 전수조사한 결과 전국 지역주택조합 파산은 2020년 1건, 2021년 1건, 2022년 0건에서 지난해 6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파산한 지역주택조합 가운데 4건은 서울에서 나왔다. 서울회생법원 12부는 2023년 11월 9일 서울 관악구 당곡역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에 대해 파산을 선고했다. 다음 날 같은 법원 16부는 동작구 상도동 장승배기 지역주택조합에 대해서도 파산선고를 했다.

수도권에서 잇따라 지역주택조합 파산 사례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또 지난해 파산선고를 받은 지역주택조합 가운데 3곳은 추진위 단계가 아닌 조합이 설립된 곳이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토지 사용 면적의 80% 이상의 사용 동의서를 확보해야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이미 사업 추진이 어느 정도 진척된 곳에서도 파산선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지역주택조합 파산의 원인으로는 고금리로 인한 금융비용 상승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거절 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점이 꼽힌다. 토지주가 사업 주체인 재건축·재개발과 달리 토지담보대출을 통해 토지 확보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역주택조합 사업 특성상 자금난에 훨씬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한계 상황에 이른 조합 가운데 출구전략으로 법원 파산을 이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이 경우 조합원들은 분담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고 전했다.

 

 ‘낡은 제도’ 지적에 폐지론까지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무주택자 또는 전용면적 85㎡ 이하 1주택 소유자들이 스스로 토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건축자금 조달, 마케팅 등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새집을 마련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지역주택조합 추진 사업지는 서울에서만 100곳이 넘는다.

하지만 제대로 입주까지 하는 지역주택조합은 전체 사업 가운데 17%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계획 승인 조건(토지 95% 이상 소유) 등을 맞추기 어려운 데다 길게는 수십 년에 이르는 사업 기간에 땅값과 공사비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추가 분담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지역주택조합 제도에 대한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16년엔 서울과 부산 등 광역지자체 8곳이 국토교통부에 지역주택조합 제도 폐지까지 건의하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는 2024년 1월 서울시에 지역주택조합 제도를 전면 폐지 또는 개정하는 의견을 제출했다.

도시정비사업 전문가인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변호사는 “도심에도 빈 땅이 많아 토지 확보가 쉽던 1970년대 도입된 제도로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며 “앞으로 자금난 등으로 파산하는 조합이 더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조합 운영진, 수백억대 횡령 저지르기도

지역주택조합 운영진의 사기·횡령 사건도 꾸준히 불거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최근 운영진의 비리를 원인으로 지역주택조합의 설립인가를 지방자치단체가 직권 취소한 사례가 처음 나왔다.

송파구는 2024년 2월 16일 가락1지역주택조합과 가락2지역주택조합의 설립인가를 취소했다. 두 조합은 지하철 3·5호선 오금역과 3호선 경찰병원역이 가까운 입지에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사업 등을 추진하던 곳으로 조합원 수는 747명에 이른다.

감사원 감사 결과 두 조합은 2015년과 2016년 조합설립(토지소유자 동의율 80%) 때 위조된 토지사용승낙서를 송파구청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2023년 8월부터 9월 사이 구에 보관된 토지사용승낙서를 점검한 결과 모두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조합 내부에서 대규모 횡령사고도 발생했다. 두 조합의 운영 대행사 대표는 가락1지역주택조합 조합장에 자신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가락2지역주택조합 조합장에 고교 동창을 내세웠다.

그는 두 조합에서 대여금 등의 명목으로 업무대행비를 받아 채무변제와 도박 등에 약 400억원의 조합자금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2023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추징금 396억원이 확정됐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서도 한 지역주택조합의 분양사기가 논란이 됐다. 해당 지역주택조합은 옥수동 일원에 34층 593가구 규모 아파트를 건설해 분양할 것처럼 광고해 2017년 4월부터 2021년 6월까지 400여 명으로부터 400억원 상당의 가입비를 받았다.

해당 조합은 2017년 4월 용산구 한남동에 모델하우스까지 짓고 “토지를 대부분 매입해 곧 사업 승인이 날 것”이라고 속였으나 사업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뒤늦게 해당 지역이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7층 이상 아파트를 올릴 수 없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조합원들의 신고를 받은 서울 강남경찰서는 2023년 10월 조합장 A 씨 등 2명을 사기 및 배임 혐의로 구속하고 6명은 사기 혐의로 불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조합은 사업 추진을 위한 토지를 거의 확보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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