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장인정신에 자동화 더했다…페라리 최첨단 전동화 기지 'e-빌딩'
로봇·정밀 수작업 혼합 공정…"제조 효율성·유연성 확대 목표"
마라넬로 기존공장선 하루 60대 생산…"철저한 고객 맞춤형 제조"
(마라넬로<이탈리아>=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현지시간 21일 오전 스포츠카 대명사 페라리의 본거지 이탈리아 북부 마라넬로에 자리한 신공장.
페라리가 첫 전동화 생산기지로 구축한 이 공장의 명칭은 'e-빌딩'으로, 성대한 준공식 직후 공장 내부가 세계 각국 미디어에 처음 공개됐다.
건립 비용 2억유로(약 3천억원)와 공사 기간 2년이 소요된 이 공장은 축구장 약 6배 크기의 4만2천500㎡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직원 300명 이상이 근무한다.
e-빌딩에서는 내연기관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순수전기차(EV)가 모두 제작된다. 이는 글로벌 고급차 제조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내년 4분기 생산 예정인 페라리 첫 전기차에는 한국 SK온의 배터리가 탑재될 예정이다.
세계 각국 취재진이 현지 직원 안내에 따라 맨 처음 들른 e-빌딩 2층의 바닥은 자동차 공장이라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매끈한 흰색으로 마감돼 있었다. 공간은 깨끗하고 널찍했다.
전면이 투명한 통유리라 주변 수목과 파란 하늘을 포함한 바깥 풍경이 훤하게 보였다.
생산 라인에는 단계별로 작업 구획이 나뉜 번호표 아래 첨단 제조 시설이 가득 설치돼 있었다.
빨간색의 페라리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은 2인 1조, 또는 혼자서 내연기관 모델에 쓰이는 엔진과 차축 장치를 포함해 각종 부품을 조립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2층이 전통적 제조 기반 시설로 채워졌다면 1층 공간에는 최첨단 자동화 설비가 완비된 상태였다.
각종 크기와 형태의 자동화 로봇이 페라리 직원의 조종을 받거나 자동으로 차체와 다양한 부품을 한 치의 오차 없이 합체하는 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 키의 3배가량 되는 거대한 로봇이 쉴 새 없이 작업장에서 '윙'하는 소리를 내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 로봇은 차체 지붕을 한 개씩 한 개씩 약 6m 높이로 번쩍 들어 올린 뒤 신중하게 내리며 차체에 장착했다.
신공장 e-빌딩이 아닌 마라넬로 내 기존 공장을 둘러볼 기회도 주어졌다.
서로 다른 디자인과 색상의 페라리 모델 10여대가 공정 순서에 따라 제각각 조립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차량을 주문한 개별 고객의 취향과 요구에 맞춘 공정이었다.
가령 차량 외관 색깔의 종류와 농도는 세밀하게 조정될 수 있는데, 페라리 구매자는 약 200만 가지의 색상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각 라인의 생산 구역마다 대형 전자식 타이머가 설치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조립 단계별 시간적 효율성과 배분을 고려한 조치로 보였다.
이곳에서는 하루 평균 60대 정도의 페라리가 완성된다.
대량 생산 체제와 달리 차량 하나하나를 철저히 고객 맞춤형으로 꼼꼼하게 조립, 점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라리 공장 가이드인 헤드라 씨는 "이곳 공장의 철학은 장인정신을 통한 섬세한 조립과 자동화 컨트롤을 기반으로 한다"며 "컴퓨터를 활용한 데이터 측정과 분석을 병행해 작업 과정에서 어떤 실수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둔다"고 말했다.
취재진에 공개된 조립 공정에서는 숙련된 기술자와 자동화 설비의 '협업'을 살펴볼 수 있었다.
거대한 자동화 기계가 엔진이 장착된 차량 하부와 각종 전기 장치가 장착된 차량 상부를 결합한 뒤 정교한 조립 작업이 이어졌다.
페라리 브랜드의 상징인 '카발리노'(도약하는 말) 로고가 새겨진 방패 문양의 엠블럼을 차체에 붙이고, 가죽으로 장식된 대시보드를 설치하는 작업 등은 기술자의 조종으로 특수 로봇이 수행했다.
기술자들은 로봇 조종에 그치지 않고, 손전등 등을 이용해 모든 나사가 제대로 조여졌는지 등 품질을 일일이 점검했다.
페라리는 '촬영 불허'를 전제로 새 모델 디자인을 개발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디자인 센터', 전통 모델 정비와 부품 교체가 전문적으로 이뤄지는 '클라시케' 작업 공간도 취재진에 공개했다.
클라시케는 1960년대 생산된 당시 페라리의 아이콘 '250 GTO' 모델을 포함해 지금은 단종된 차종을 유지·보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올드 카의 수리 이력까지 자료로 보관하고 있었다.
페라리의 '양보다는 가치'라는 경영 철학이 현재까지 이어져 마라넬로 공장 시설 곳곳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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