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전 집 떠난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6·25 74년①]
과거사법 통과되며 재조사 길 열려
진실규명 됐지만…공식사과는 아직
[서울=뉴시스]이수정 기자 = 음력 5월18일이면 충주의 한 마을 일대에 전 굽는 냄새가 풍겼다. 1950년 그날, 집을 떠난 이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그날 집을 나선 이들은 '국민보도연맹'에 속했다는 이유로 집단 학살을 당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정확한 기일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유족들은 이들이 집에서 끌려간 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지난 21일 만난 서울 구로구 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복영(75)씨도 그날 아버지를 잃었다.
김씨는 "내일 모레(23일)가 음력 5월18일인데 그날이 아버지 제사"라며 "고향에 저 같은 피해자가 많다. 예전에는 일곱 집이 함께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아버지가 떠난 날은 김씨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당시 아버지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의해 연행되거나 소집 통보를 받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같이 나간 이들 중 10명 중 7명이 집단 희생 당했다.
김씨는 "국민보도연맹이 뭔지도 모르고, 같은 지역에 사는 이장이나 주민이 가입하라고 하니 가입했을 것"이라며 "지금과 달리 기록도 없이 도장만 있으면 가입되는 것 아니겠나. 끌려갈 적만 해도 별 문제 있겠나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보도연맹은 좌익인사 교화와 전향을 목적으로 1949년 이승만 정권이 만든 반공단체다. 가입자가 30만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전원 처형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아버지가 떠난 뒤 그해 음력 11월9일, 김씨가 태어났다. 8년 뒤 어머니는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떠나면서 병을 얻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후 외가 쪽 친척집을 전전했다. 이후 목재 일을 배우며 생계를 꾸렸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전국 유족회'를 알게 된 건 우연치 않은 기회였다.
김씨는 "우연치 않게 유족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하겠다고 했을 때, '너무 힘든 길'이라며 만류하는 어르신들도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 당시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유족'임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트라우마로 남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김씨는 유족들이 고통을 감내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고 연신 강조했다.
그 중에서도 김씨는 진실규명을 위해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거나 토론회를 통해 유족의 목소리를 전하는 쪽을 택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2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던 일이었다. 김씨의 입을 빌리자면 "비로소 물이 흐르기 시작한 때"였다.
과거사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 등에 대한 재조사 길이 열렸다.
이후 가동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충주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에 대한 진실규명에 돌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3년이 되어서야 김씨의 아버지를 피해자로 인정하는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충북 충주군 살미면에 거주하던 주민 38명이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 등으로 예비검속돼 군·경찰에 의해 희생됐다고 기재했다.
지난해 4월에는 충주시 호암동 749-4번지에서 충주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 유해 발굴에도 착수했다. 그러나 유해는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다.
김씨는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유해 발굴을 서둘렀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더 시급하게 바라고 있는 것은 '국가의 사과'였다.
위원회는 진실규명과 함께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도 권고했으나, 아직까지 유족 측에 닿은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국가의 사과'는 앞으로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나 다름 없다고 연신 강조했다.
현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전국유족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힘이 닿는 데까지 진실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야 해요. 같이 슬퍼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그리고 후손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감언론 뉴시스 crysta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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