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는 리포트 0.02%…증권사 투자의견 매수 일색 이유는?
애널리스트, 기업과 틀어지면 정보 접근 차질…'보고서 세일즈'도 원인
(서울=연합뉴스) 이동환 기자 = 올해 증권사들이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의견을 제시한 종목 보고서 대부분이 '매수' 의견 일색인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20일 기준 올해 발행된 기업 보고서 8천662건 중 투자의견을 '매도'로 제시한 보고서는 단 2건(0.02%)에 불과했다.
사실상 매도 의견에 가까운 '비중 축소'는 4건(0.05%)이었다.
반면 '매수' 의견은 8천12건(92.5%)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보유'(Hold)는 636건(7.34%), '강력매수'는 8건(0.09%)으로 집계됐다.
올해 기업 분석 보고서를 발행한 국내 증권사 30곳 중 28곳(93.3%)은 투자의견을 매도로 제시한 보고서가 한 건도 없었다.
대형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하나증권, 메리츠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매도 의견을 제시한 증권사는 한화투자증권, BNK투자증권 2곳(6.6%)이었다. 여기에 비중 축소 의견을 낸 유진투자증권 1곳을 더해도 3곳(10%)에 불과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2월 카카오뱅크 매도 의견을 냈다가 4월 '보유'로 투자 의견을 상향 조정했다. BNK투자증권은 지난달 한진칼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네 차례에 걸쳐 에코프로비엠에 대한 비중 축소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는 같은 기간 대체로 10% 넘는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서비스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은 올해 제시한 투자 의견 중 매도가 16.7%였다. 매수와 보유 의견은 각각 48.2%, 35.2%였다.
이외에도 매도 의견 비중은 모건스탠리증권 서울지점이 16.4%,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 22.8%, 맥쿼리증권 9.1%, 노무라금융투자 15.6%, JP모건증권 13%였다.
국내 증권사들의 매수 편향 보고서는 매년 반복되는 해묵은 문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7월 증권사 최고경영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올바른 리서치 문화 정착을 위한 증권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공개 지적하기도 했지만, 약 1년이 지난 지금도 관행 개선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분위기다.
현실적인 원인 중 하나로 해당 기업 정보에 대한 접근 문제가 꼽힌다.
특히 국내 기업은 실적 가이던스(예상치)를 내는 곳이 거의 없어 가이던스를 산출해야 하는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기업과 척지기가 쉽지 않다.
한 전직 애널리스트 A씨는 "커버리지하는 회사에 대해 부정적 보고서를 낼 경우 IR(기업설명회) 참여 제한이 생기거나 회사가 소극적으로 정보 제공을 하는 등 기업 분석에 지장을 초래하는 불이익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심지어 매수 의견을 유지한 채 목표주가를 낮추기만 해도 해당 회사가 거센 항의 전화를 건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부정적 의견을 낸 애널리스트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거나, 기업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는 전언이다.
국내 증권사의 비즈니스 모델도 한계점으로 꼽힌다.
소속 증권사 법인영업본부가 자사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기반으로 국내외 기관 투자자 등에게 세일즈하는 환경이 대표적이다.
애널리스트도 분석 업무 외에 법인영업이나 국제영업을 돕는 일을 병행한다. 이는 애널리스트에 대한 성과 평가로도 이어진다.
애널리스트 B씨는 "매도 의견 보고서는 결국 증권사의 수익 기여도를 낮출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국내 증권사 보고서는 심지어 공짜라 리서치는 사실상 비용만 쓰는 부서로 인식돼 다른 부서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아울러 분석 대상이 되는 기업 대부분이 증권사 고객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증권사는 기업금융(IB), 신용공여, 기업공개(IPO) 등의 업무도 맡고 있다.
해결책으로는 리서치부서의 분리 독립, 보고서 제공 유료화, 애널리스트의 성과 평가 방식 개선 등이 제시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튜브 등 정보 제공 경로가 늘어나면서 리포트 파워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리서치부서가 독립성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한국 자본시장이 고도화돼야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dh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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