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기회는 대학 밖에 있다 [PADO]
[편집자주] 한동안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국내에서도 활발했는데 이제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아버린 듯한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논의는 주로 대학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아에 국한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대학 바깥에서, 학계 사람들이 아닌 평범하지만 의욕이 있는 일반인들을 주축으로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열의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관련 논의가 늘고 있기도 하고 기존의 대학과는 다른 대안적인 시민 교육 기관들이 설립되고 있기도 합니다. PADO는 최근 미국에서 관측되고 있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소개하는 글은 미국의 저명한 문화·음악평론가 테드 지오이아가 자신의 뉴스레터(구독자 14만 명으로 음악 관련 뉴스레터 중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합니다)에 쓴 '인문학의 진짜 위기는 대학에서 일어나지 않는다'입니다. 지오이아는 본래 스탠퍼드와 옥스포드에서 영문학과 철학 등을 전공했는데 이후 스탠퍼드에서 MBA를 취득하고는 맥킨지, BCG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음악평론가로 전향한 독특한 커리어의 인물로, 비즈니스 업계에서 일한 경험과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결합시켜 결코 사변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인간 창의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씁니다. (그의 문장은 여느 평론가들과는 달리 매우 평이하고 이해하기 쉬워 영어 초심자에게도 권할 만합니다.) 지오이아는 인문학의 위기가 대학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회생활을 해본 일반인들이야말로 인문학에 대한 열의를 대학생들보다 더 강하게 갖고 있으며 이미 사회 각 분야에서 이러한 '인문학 혁명'이 조금씩 관측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직까지는 미국에서 주로 관측되는 상황이지만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볼 수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재즈를 가르칠 때 나는 대학생이 아닌 지역사회 사람들을 위한 야간 강좌를 개설했다. 대학은 지역사회와의 교류를 원했고 나는 그 임무의 선봉에 서게 됐다.
누구나 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SAT 시험을 치를 필요도 없었고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유일한 요구 조건은 300달러를 지불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스탠퍼드 학비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스탠퍼드는 지역사회 교류를 결정하고 나에게 이를 맡겼다.
등록 인원은 40명으로 제한됐다. 알고 보니 수강생 모두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우리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두 차례 만났다.
나는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나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두뇌들인 (혹은 그렇다고 하는) 스탠퍼드 학생들에게 같은 커리큘럼을 가르쳐 왔다. 나의 야간반 학생들은 그저 300달러를 낼 여력이 있던 일반인들이었다. 나는 '진짜' 학생들과 야간 학생들 간의 차이가 눈에 띌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차이가 있었다--하지만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차이였다.
최초의 화요일 저녁 수업 후 나는 충격을 받았다. 교실에서 벌어진 토론은 탁월한 수준이었다. 일반인인 야간 학생들은 똑똑하고 열정적이었다. 학생들은 주제를 매우 진지하게 다루었는데 내가 가르치던 스탠퍼드 학부생들보다 더 진지했다. 이 지역사회 교류 강좌에는 성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수수께끼였다. 왜 성적을 받지 않는데도 이렇게 집중하고 참여도가 높을까?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학생들이 공부한 내용을 그들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났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풍부한(내가 상대적으로 그들보다 어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교실에서 논의하는 것과 그들의 삶 또는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서로 연결해서 생각할 줄 알았다.
이런 반응은 내가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목요일의 두 번째 수업에서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나는 정말 즐거웠다. 나는 열정적으로 저녁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교육은 원래 이래야 한다. 하지만 왜 내가 낮에 가르치던 젊은 천재들의 교실이 아닌 여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여기에 놀라운 점이 있다. 다른 지역사회 대상 강좌를 담당하던 스탠퍼드 교수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었다.
성인들이 대학생들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내가 미적분학이나 컴퓨터 과학 또는 공학을 가르쳤다면 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과 인문학과 관련된 모든 것은 성숙한 정신과 어느 정도의 사회 경험이 필요했고, 그런 것이 있어야 교육이 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한탄할 때마다 내가 가르쳤던 야간학교 학생들을 생각한다.
(계속)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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