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 푸틴의 2차 방북 평가와 한국의 대안
박종수 전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만에 두 번째로 방북했다. 한반도의 신냉전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루어진 푸틴의 방북에 대해 국제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승부사 기질을 타고난 푸틴이 다시 방북 카드를 꺼내든 배경은 무엇인가.
사반세기전 러시아와 북한은 모두 존망의 기로에 있었다. 러시아는 1990년대 소련 해체 후 서구식 개혁·개방에 나섰지만 혼란의 연속이었다. ‘움직이는 병동’ 보리스 옐친은 연일 술독에 빠져 있었고 신생 러시아는 급기야 디폴트에 이르렀다. 푸틴은 2000년 5월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북한을 택했다. 소련 당시에도 없었던 최고위 인사 방문이었다. 그는 북러관계를 사실상의 동맹수준으로 복원시키고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곧장 오키나와 G8 정상회담장으로 달려가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북한 김정일에게도 푸틴의 방문은 구원투수였다. 1990년대말 ‘고난의 행군’으로 붕괴 일보 직전에서 회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남한과의 수교로 소원했던 중국까지 다시 끌어당기는 일거양득이었다.
이번에도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3년의 민감한 시기에 방북했다. 미국이 608억달러 예산과 러시아 해외 동결자산 수익금을 지원함으로써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임박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의 도움이 절실하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폐쇄와 서방제재의 고통에서 벗어나 안보와 경제를 모두 살려야 하는 김정은 총비서다. 러시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양국 정상이 실질적으로 주고받은 것은 무엇인가. 북한으로서는 핵미사일 완성을 위한 첨단 군사기술을 지원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대북 핵개발 지원국으로서, 핵비확산체제(NPT) 관리국으로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쉽게 수용할 수 없다. 차선책으로 실질적 군사 지원 대신 선언적 합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번에 체결한 23개항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은 2000년 2월 체결한 신조약 2조의 ‘즉각 접촉’을 ‘군사 접촉’(4조)으로 구체화했다. 이를 위한 근거로 ‘상호 지원’의 유엔 헌장 51조를 명시했다. 외형적으로는 2008년 한러간 맺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보다 상위 개념이다. 그렇다고 옛 소련 동맹조약의 ‘자동 군사개입’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조약 서명 후 김정은은 ‘동맹’임을 세차례 강조했지만 푸틴은 침묵했다. 서방에서도 4조에 대한 해석을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아무튼 냉전 이후 가장 강력한 북러관계로 부상한 근거가 됐고, 서방 세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미·중·일 등 한반도 주변국의 고심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러시아와 북한이 기대했던 ‘전략적 모호성’이 아닐까.
러북 양국은 서방의 지옥같은 제재에서 탈출해야할 동병상련의 운명공동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러 간 군사 대리전을 넘어 경제전쟁이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를 극복하지 못하면 패전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 차 있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은 바로 대북제재, 그 다음으로 대러 제재를 단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액션플랜의 시작이다. 그 일환으로 북한의 노동력 송출 문제가 비공식 의제로 올랐을 것이다.
북한은 12만명의 노동력을 러시아에 보내는 것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1인당 연간 3만달러를 잡아도 36억달러의 외화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 게다가 무기공장이나 전선에 투입될 경우에는 첨단 군사기술과 실전 경험까지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러시아로서도 2차 동원령없이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다. 북한 청년들 만큼 양질의 노동력도 없다. 특히 보위부의 자체 감시체제로 통제가 용의하다.
또다른 경제현안은 러시아산 농축우라늄의 대북 수출이다. 지난 5월 13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93개 상업용 원자로에서 사용하는 러시아산 농축우라늄(20%, 연간 10억달러)에 대한 수입금지법안(H.R.1042)에 서명했다. 러시아로서도 전비 조달을 위해 단 1달러가 아쉬운 상황에서 우라늄 수출 대체시장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대러 제제로 중단된 원유와 가스를 중국·인도, 심지어 중동에 팔았듯이 농축우라늄을 북한에 수출할 수 있다. 매년 전력난에 허덕이는 북한 입장에서는 우랴늄광 개발보다는 러시아산을 싸게 도입하고 그 대신 실탄이나 미사일·드론으로 상계할 수 있다.
한국에게는 이번 방북이 24년전과는 달리 백해무익하다. 그때는 한러관계가 돈독해 러시아의 대북관계 개선을 오히려 환영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안타깝게도 한미동맹을 외칠수록 러북관계는 견고해지는 제로섬적 결투장이 됐고, 더나아가 한러관계 복원은 북한의 결사반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망가진 한러관계를 치유할 처방책은 매우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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