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다 갑자기 서성대도 OK"···전국 유일 '치매 영화관'은 다르다

김수호 기자 2024. 6.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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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 치매친화 영화관 미림극장 '가치함께 시네마'
최현준 미림극장 대표·이민아 인천광역치매센터 기획홍보팀장 인터뷰
전국에 4곳 남은 '실버영화관' 관심 필요
인천 미림극장 ‘가치함께 시네마’ 현장. 사진 제공=인천광역치매센터
[서울경제]

‘영화는 세대를 넘어 꾸준히 사랑받아 온 귀중한 여가’라는 말이 있다. 특히 과거 이렇다 할 여가 문화가 없었던 어르신들에게 영화는 유일한 문화 생활이었다. 이처럼 추억의 산물이었던 영화 관람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이 있다. 고령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자료에 의하면 65세 이상 10명 중 1명이 치매인데, 상당수가 혹여나 다른 관객들에게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걱정에 극장 문을 쉽게 열지 못한다. 오로지 이들만을 위해 문을 연 특별한 영화관이 한 곳 있다. 치매 당사자들도 맘 편히 방문할 수 있는 국내 유일 ‘치매친화 영화관’, 인천 미림극장의 ‘가치함께 시네마’다.

이곳은 치매 특성을 반영한 시설환경을 갖춰 당사자들이 안심하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극장이다. 인천광역시는 올 3월부터 10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인천 미림극장에서 가치함께 시네마를 운영한다. 인천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기관·단체의 단체 관람도 가능하다. 인천광역치매센터와 중구·동구치매안심센터, 인천 미림극장이 주관하는 ‘2024 가치함께 시네마’는 올해로 운영 4년째를 맞는다. 이 특별한 영화관에 담긴 이야기를 이민아 인천광역치매센터 기획홍보팀장과 최현준 미림극장 대표로부터 들어봤다.

사진 제공=인천광역치매센터

◇상영시설부터 영화 라인업까지 치매 노인 ‘안성맞춤’ = “‘가치함께’란 ‘치매 환자도 대우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치매 극복을 함께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치매 진단으로 인해 문화·여가생활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미림극장과 함께 치매친화 영화관을 열게 되었습니다.” 2021년 문을 연 가치함께 시네마에는 지금까지 치매 환자와 가족, 지역주민 등 3200여 명이 다녀갔다.

치매친화 영화관은 어떤 점이 특별할까. 이민아 팀장은 “‘치매 친화’라는 것은 어떤 조건에도 상관없이 치매 환자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상영관 조명을 조금 밝게 유지하고, 화장실이나 거울 등에 있는 안내물의 글자 크기를 치매 환자의 시선에 맞춰 큼직하게 부착하는 등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라인업 역시 안성맞춤이다. 옛날에 유행했던 고전영화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조금씩 천천히 안녕’ 등 치매 관련 영화를 상영한다. ‘엄마의 공책’, ‘매일매일 알츠하이머’, ‘소중한 사람’ 등 배리어프리(화면을 설명해주는 음성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정보를 알려주는 영화)도 스크린에 올랐다.

치매 노인들은 영화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는 등의 이유로 상영관 안팎을 이동하는 일이 잦다. 다른 극장에선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미림극장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다 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영 전 다른 관람객들에게도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며, 직원과 봉사자들이 항시 대기해 환자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출입구 근처에는 환자 지원 가족화장실도 마련된다. 영화관을 찾은 이들은 “치매 환자를 위한 배려가 묻어난 곳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만족을 표했다. 매월 이곳을 찾는 단골 노부부도 있다. 치매 환자인 아내의 손을 붙잡고 온 남성은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 와본다. 정말 감사하다”며 매월 빠짐없이 가치함께 시네마를 찾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치매 환자들의 일터가 되기도 한다. 초로기치매(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 환자들은 활동비를 제공받으며 관람객들에게 티켓을 배부하는 역할 등을 하고 있다. 한 초로기 치매 환자는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치매가 와서 많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나와서 활동할 수 있어 뿌듯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현준 미림극장 대표는 “치매 환자들이 한 달에 하루라도 마음 편히 문화 생활을 할 수 있게 극장을 열어 두는 것은 우리 사회에 소수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계기”라며 “극장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지자체와 인천광역치매센터 등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있어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민아 팀장은 “앞으로도 가치함께 시네마가 지역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치매 환자를 위한 문화 공간이 확대될 수 있도록 시네마를 지속 운영하며 ‘같이의 가치’를 나누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인천 미림극장 매표소

가치함께 시네마가 열리는 인천 유일 단관극장이자 실버영화관인 미림극장은 수익이 목표가 아닌 사회적 가치 실현과 지역극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으로 하는 문화 공간이다. 1957년 개관 후 잠시 문을 닫았다가 실버 세대의 문화 생활을 위해 2013년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했으며, 2020년에는 다시 ‘인천 미림극장’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최현준 미림극장 대표는 “앞으로는 세대 차이를 넘어 문화예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영화를 보는 독립예술영화관으로 나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 위치한 ‘허리우드클래식’ 실버영화관 홈페이지

◇재정난·운영난 겪는 ‘실버영화관’ = 미림극장처럼 어르신들의 문화 생활을 앞장서 돕는 ‘실버영화관’은 코로나19 시기를 거쳐 전국에 4곳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 티켓 값이 3000원 수준으로 워낙 저렴하다 보니 영화관 운영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인천 미림극장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로부터 연간 약 6000만원의 인건비·홍보비 등을 지원받고 있다. 최 대표는 “극장 매출(티켓·매점·대관 등)로는 월 임대료와 운영비를 충당할 수 없어 영진위 지원사업비와 출장 상영, 진로체험 등으로 부가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라며 "다만 코로나 이후로는 이 마저도 거의 없어 앞으로가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현재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9.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어르신들의 친구 같은 실버영화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김수호 기자 su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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