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타는 꼬마들, 여기선 흔해”…길만 나서면 심장 쫄깃, 지하철 개통은 하세월 [신짜오 베트남]

홍장원 기자(noenemy99@mk.co.kr) 2024. 6. 2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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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로 꽉 찬 베트남 거리. [게티이미지뱅크]
[신짜오 베트남 - 298]이제 막 베트남 살이를 시작한 외국인이 꼭 배워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길 건너기 스킬입니다. 횡단보도를 따라 신호에 맞춰 느긋하게 길을 건너는 상황은 베트남 대도시에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선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며 시범을 보이는 지인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끝없이 다가오는 오토바이 부대를 보고 지인은 말없이 앞을 보고 도로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하노이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인 롯데타워 인근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길을 건너는 지인을 보며 오토바이는 다들 알아서 사람을 피해갔고 아무도 다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처음에 지인 옆에 꼭 붙어서 “어, 어, 어!”를 외치던 저는 시간이 흐를수록 하노이에 익숙해져서 나중엔 당당하게 앞을 보며 길을 건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베트남에서 체류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 중 하나로 교통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최근 한 베트남 언론이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기사를 올려 내용을 소개합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베트남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퇴근 시간은 가장 힘든 시간 중 하나입니다. 호치민시에 사는 미국인 교수 잭(Zach)은 최근 비가 오는 하늘을 보고 한숨을 푹푹 쉬며 지옥 같은 퇴근길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전인 오후 4시 30분, 학생들을 돌려보낸 그는 물이 고인 곳을 건너기 위해 배낭에서 플라스틱 슬리퍼를 꺼내 신었습니다. 아직 베트남에서 1년이 채 되지 않은 그가 빠르게 습득한 ‘생존 기술’입니다. 그는 아직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걸어서 학교 앞 혼잡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오토바이 택시를 찾을 생각입니다. 인파에서 떨어져 있어야 오토바이 택시 운전기사가 자신을 찾을 수 있기에 그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얘기합니다.

베트남 거리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길을 건너는 스킬 말고도 베트남 거리를 떠올리면 인상 깊은 추억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퇴근길에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 물결입니다. 베트남 대도시도 사람과 차가 공존하는 곳이고 따라서 차는 차도로 다니고 사람은 인도로 다닙니다. 오토바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차도로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퇴근길에는 당연한 이 상식이 무너집니다. 오토바이 부대 물결이 인도를 점거하고, 인도를 걷던 사람은 오토바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됩니다.

처음에 이런 일을 당하고 당황한 저는, 카페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공간에 내몰려 긴장한 얼굴로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요령이 생긴 저는 퇴근길에 절대로 인도를 걷지 않는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기사에 나온 외국인들도 마찬가지 일을 겪었습니다. 베트남에서 14년간 살고 있는 네덜란드 출신 엔지니어 마르셀(Marcel) 씨는 두 가지 방법으로 끔찍한 퇴근 시간을 회피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교통지옥이 끝날 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골목길을 통해 교통체증을 피하는 것입니다. 큰 길을 빼고 작은 길만 다니는 방법은 이동거리가 더 멀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 호치민시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베트남은 글로벌 자금을 끌어들여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베트남의 도시 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걸림돌 중 하나가 교통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기도 합니다. 하노이의 경우 지난 2021년 말 하노이 최초 지하철역이 개통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개통될 예정이었던 최초 노선은 여러 문제로 개통이 5년이나 밀렸고 지금 진행 중인 공사도 제때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선진국 대도시처럼 거미줄처럼 사통팔달 통하는 노선을 갖추기 위해선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할지 모릅니다.

제한된 지하철 노선으로는 대중교통 수요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국 대도시의 촘촘한 교통 수요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결국 오토바이입니다. 주차장이 넉넉하지 않은 베트남 대도시 특성상 차량 운행에도 적잖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이카’ 시대가 만개하려면 국민소득도 조금 더 올라와야 합니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부피가 작아 인도 위에 세워두기도 편하고, 언제든 손쉽게 이동하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차량 대비 기름도 훨씬 적게 들고 차량 가격도 저렴합니다. 몽골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말을 타며 숙련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베트남 아이들은 꼬마일 때부터 엄마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며 일찍부터 주행 스킬에 눈을 뜹니다.

2023년 말 기준 호치민시에 등록된 차량은 총 920만 대, 이 중 830만 대가 오토바이입니다. 전년 대비 4.64% 증가한 수치입니다. 아무리 베트남 정부가 대중교통 인프라를 빨리 조성하려고 해도, 대도시로 몰려드는 베트남 인구가 오토바이를 끌고 들어오는 상황을 볼 때 오토바이는 앞으로 더 늘면 늘었지 당분간 줄어들리 만무합니다.

기사에 달린 진심 어린 댓글이 인상적입니다. “베트남 사람들도 무서운데 외국인들은 오죽할까요. 교통체증, 교통 혼잡 때문에 집이 가까운 사람들도 매일 왕복 1시간을 도로에서 보내며,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은 2-4시간을 소비합니다. 거리에서 매연을 마시고, 더러운 물에 젖으면서 건강이 나빠져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심장병, 스트레스 등이 증가하고, 이는 의료비용도 증가시킵니다.”

하노이, 호치민 등 베트남 대도시는 지하철 노선을 확충하고 전기버스를 도입하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만들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에 편중된 차량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통 개선 작업을 성공하느냐 여부가 베트남 도시 경쟁력과 직결될 것이 분명합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더 많은 외국인이 몰려와서 일을 해야 국가가 발전하고 투자가 따라옵니다. 과연 베트남 정부의 교통 개선 프로젝트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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