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정신질환 낙인, 가이드라인 만들어도 변화 없었다

윤유경 기자 2024. 6. 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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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대상 논문]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 도입 전후 변화 분석
의미있는 변화 없어 '위험성 인식 조장 용어 사용 자제' 준수율 특히 낮아
"'정신질환은 예방 및 회복 가능' 보도 시 의무사항으로 규정해야" 제안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Gettyimages.

편집자주: 언론·미디어 연구 속 언론은 변화가 더딘 혁신의 대상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학계 진단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은 그 차이를 확인하고 간극을 좁히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미디어오늘은 현업인들에게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연구 사례를 소개하며 언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3줄 요약:
-2022년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 발표됐지만 언론보도의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언론은 계속해 정신질환자를 폭력적이거나 자기통제가 어려운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정신질환은 예방 및 회복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언론보도에 의무적으로 명시하게 해야 한다.

정신질환과 범죄의 인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가해자의 정신질환 병력을 언급하거나 사회적 낙인을 조장하는 언론보도를 막기 위해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이 2022년 발표됐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언론보도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4월 충남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사회과학연구' 제35권 제2호에 실린 논문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도입 전·후 정신질환에 대한 언론 보도 양상'(경상국립대 박소혜·김선자·서미경)은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2022년 4월28일을 기준으로 전·후 1년 간의 11개 일간지 기사에서 '정신장애인', '정신질환자', '정신병자', '정신병 환자', '조현병 환자', '조울증 환자', '우울증 환자' 등 7개의 키워드 중 하나 이상을 포함한 기사 총 88건의 내용을 분석했다.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서울시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서울시와 만든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은 정신질환 관련 용어 사용에 유의, 기사 제목에 정신질환 관련 언급 최소화, 정신질환과 범죄의 인과관계를 임의로 확정 짓지 않기, 정신질환 관련자 등의 의견 포함, 정신질환은 예방 및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과 도움 요청 정보 언급하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진은 “정신질환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뉴스 또는 신문이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형성 요인으로 대중들은 TV, 신문, 영화 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며 “실제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준수되고 있는지, 가이드라인의 개선 사항은 없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 자료집 갈무리.

의미있는 변화 없어…'위험성 인식 조장 용어 사용 자제' 준수율 특히 낮아

연구에 따르면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도입은 언론 보도에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특히 정신질환과 관련해 위험성 인식을 조장하는 용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항목의 준수율은 가이드라인 도입 전 24.5%, 도입 후 28.6%로 개선 비중이 가장 낮다. 언론에서 계속해 정신질환자를 폭력적이거나 자기통제가 어려운 위험한 모습으로 묘사한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가이드라인이 도입되었음에도 여전히 언론을 통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에 가족·당사자 등 정신질환 관련자 등의 의견을 포함해야 한다는 항목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언급 하지 않은 기사의 비율은 도입 전 82.5%, 도입 후 85.7%로 오히려 늘었다. 정신질환자 당사자 의견이 반영된 경우는 도입 전 0.0%, 도입 후 2.9%에 그쳤다. 정신질환에 대한 언론보도는 정신질환 관련자, 당사자 등의 의견을 거의 포함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기사 하단부에 '정신질환은 예방 및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과 도움 요청 정보를 명시'하라는 항목의 준수율은 가이드라인 도입 전·후 준수율이 모두 0%, 한 건도 없다.

다만, '낙인 찍혀', '꺼리는' 등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소외를 암시하는 용어 사용을 자제하라는 항목 준수율은 가이드라인 도입 전 81.1%에서 도입 후 97.1%로 증가해 통계상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하 표현을 지양하라는 항목 준수율은 도입 전·후 모두 100%로 나타났다.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 자료집 표지 중 일부 갈무리.

'정신질환은 예방 및 회복 가능' 보도 시 의무사항으로 규정해야

연구진은 정신질환은 예방 및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과 정신질환 관련 도움 요청 정보를 언론이 의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의 경우 기자연합을 중심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가이드라인을 발간한 영국 스코틀랜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언론보도가 도움과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의무로 두고 있다. 관련해 연구진은 “언론보도를 통해 정신질환은 예방과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계속해 노출하면 정신질환자의 사회적 낙인을 완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역으로 언론 매체를 활용해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극복하자는 제안도 있다. 논문은 정신질환자 당사자의 시각을 담은 언론 '마인드포스트'를 예로 들었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질환자 당사자의 회복 기사를 싣고 있다. 연구진은 “정신질환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회복의 이야기를 대중이 지속적으로 접하게 된다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완화될 수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지속적인 언론 보도 점검 등을 확대하되, 정신질환 관련자와 언론 전문가로 모니터링단을 구성할 필요성도 제시됐다. 연구진은 “(선행 연구에 따르면) 모니터링 활동에 참여한 일반인이 정신질환자와의 접촉을 통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자각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며 “언론 전문가들이 모니터링에 참여한다면 언론인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 함께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 연구진은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에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을 게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과의 협력을 통한 기자 교육 프로그램 확산 등을 통해 언론인들이 가이드라인을 실질적으로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소지하기 쉬운 형태로 제작해 배포할 것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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