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어떻게 당했나 말해봐” 법정서 2차가해...그녀는 그림으로 치욕을 되갚아줬다 [나를 그린 화가들]

정유정 기자(utoori@mk.co.kr) 2024. 6. 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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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선생님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한 18세 소녀가 있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서야 소녀의 아버지는 이를 알게 되고 강간범을 고소하죠. 그런데 법정에 선 소녀에게 2차 가해가 쏟아졌습니다. 그녀는 강간 혐의를 부인하는 용의자, 자신을 비난하는 거짓 증인들을 마주했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개 재판에서 소녀는 성폭행을 어떻게 당했는지 하나하나 상세히 말해야 했습니다.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에서 이기고 몇 년 후, 그녀는 유명한 화가로 성장했습니다. 남성들로만 이뤄진 예술 아카데미에 첫 여성 화가로 입성합니다. 이탈리아의 바로크 시대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이야기입니다.

17세기 로마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아르테미시아는 1593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화가인 아버지 오라치오로부터 회화 수업을 받았고, 열네 살 때부터 아버지의 도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죠.

오라치오는 아르테미시아에게 원근법을 가르치기 위해 절친한 화가인 아고스티노 타시를 선생님으로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열두 살에 어머니를 잃어서, 집 안에 보호자가 없다시피 했는데요. 타시는 이를 노려 아르테미시아를 성폭행했습니다.

열여덟 살의 아르테미시아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강제로 성관계를 합니다. 이후 타시는 아르테미시아에게 결혼을 약속하며 위로했죠. 아르테미시아는 결혼하면 자신의 손상된 명예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타시와 지속적인 성관계를 맺게 됩니다. 하지만 타시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고, 몇 달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오라치오는 타시를 고소합니다.

재판은 아르테미시아에게 2차 가해의 연속이었습니다. 피해자인 그녀는 법정에서 강간범이던 타시를 대면해야 했습니다. 조산사 두 명은 그녀의 처녀막이 찢어졌는지, 출혈의 증거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게다가 타시는 아르테미시아를 강간한 혐의를 반복적으로 부인했습니다. 아르테미시아가 많은 남자와, 심지어 아버지 오라치오와도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죠. 타시가 동원한 거짓 증인들은 타시 편을 들며 아르테미시아를 비난했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손가락을 죄는 고문까지 당하면서 자신의 증언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칼로 타시에게 상처까지 입히며 저항한 사실, 성폭행당한 경위를 낱낱이 밝혀야 했습니다.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 법원은 마침내 아르테미시아의 손을 들어줍니다. 타시는 유죄 판결을 받고 로마에서 추방됐지만 처벌이 집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수산나와 장로들’, 1610, 그라프폰쇤뵈른컬렉션, 폼메르스펠덴, 독일
‘수산나와 장로들’은 아르테미시아가 타시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기 1년 전인 17세에 그린 작품입니다. 성서 속 결혼한 여성인 수산나가 자신의 집 정원에서 목욕하던 중 두 명의 장로로부터 협박당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죠. 두 장로는 정숙한 여인인 수산나에게 성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젊은 남자와 간통을 저질렀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당시 간통은 사형에 처할 정도로 중범죄였습니다.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그림에서 수산나는 불편한 자세로 몸을 비틀고 가해자들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이마를 찌푸린 표정에서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수산나는 두 팔을 올리고 저항하며 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죠. 일상에서 보호자 없이 로마의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던 아르테미시아는 수산나의 마음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아르테미시아가 살던 당시의 로마는 사기꾼, 뱃사공, 예술가들이 뒤섞여 있어 무질서하고 폭력적인 곳이었고, 전반적으로 여성에게 위험한 환경이었거든요.

‘수산나와 장로들’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룬 그린 기존의 그림들은 아르테미시아의 작품과 상반됩니다. 오히려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하거나, 에로틱한 환상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수산나를 묘사했습니다.

주세페 체사리, ‘수산나와 장로들’, 1607
주세페 체사리의 ‘수산나와 장로들’ 속 수산나는 머리를 빗으며 관람자에게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선 수산나가 오히려 관람자를 유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수산나는 자신이 벌거벗은 상태로 관찰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틴토레토, ‘수산나와 장로들’, 1555-1556
틴토레토의 그림에서 수산나는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존 버거는 이 그림에 대해 “수산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본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을 훔쳐보는 관객 무리에 합류한다”고 평가하죠. 이어 “거울은 여자가 스스로를 하나의 구경거리로 대하는 데 동의하는 것처럼 만들어준다”고도 지적합니다. 나체로 보이는 것에 대한 그녀의 무심한 태도는 아르테미시아의 수산나가 괴로워하는 모습과는 대조됩니다.
성서 속 ‘유디트’를 영웅답게
소송이 끝난 후 19세의 아르테미시아는 결혼을 하고 피렌체로 떠납니다. 그리고 성서 속 주인공인 유디트를 그리는 데 집중하죠. 성서 속 유디트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아시리아 장군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하녀 아브라와 함께 그의 목을 벴습니다.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성벽에 걸어 놓고, 이를 본 아시리아 군대는 달아났죠. 이후 유디트는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으로 존경받으며 살았습니다.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유디트’, 1589년경
아르테미시아 그림의 특징을 비교하기 위해 다른 화가들의 작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유디트’입니다.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유디트는 창백하고 연약해 보입니다. 나이도 10대 정도로 어려 보이죠.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면서도 움찔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옆에 있는 하녀는 늙은 여성으로 다소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618~1620년경,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좀 더 역동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이 그림 속 유디트와 하녀는 몸매가 더 풍만해 강인하고 힘 있는 느낌이 납니다. 두 여인은 소매를 걷어 올린 채 거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인물들을 그림 전면에 놓고, 이들을 서로 가깝게 배치해 관객을 더 가까이 끌어들였습니다.

유디스는 침착한 얼굴로 당면한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른팔을 뻗어 검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고 있고, 왼손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단단히 잡은 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하녀인 아브라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를 힘겹게 누르고 있죠. 함께 일을 도모하는 동료인 셈입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얼굴도 시선을 끕니다. 충격을 받은 그는 팔을 뻗어 반격을 시도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에선 이미 피가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침대는 검붉은 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디트와 하녀’, 1618~1619년경, 피티궁 팔라티나 미술관, 피렌체
홀로페르네스를 죽인 후 여인들이 마을로 돌아가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유디트가 아브라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고 있습니다. 귀족과 하녀로 신분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보여줍니다. 유디트는 어깨에 정의의 검을 대고 있고, 아브라는 왼손에 승리의 트로피를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의 왼쪽 소매는 위로 밀려 올라갔고, 바구니 속에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부분적으로 보이네요. 이 작품에선 피부와 천의 주름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아르테미시아의 능력이 돋보입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디트와 하녀’, 1625~1627년, 디트로이트 미술관
이 그림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직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유디트는 검을 들고 있고, 아브라는 머리를 천에 싸고 있습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은 동작을 멈추고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유디트에게 여왕처럼 왕관을 씌웠습니다. 유디트는 업적을 이룬 당당하고 강인한 모습입니다.
희대의 여성 빌런들
아르테미시아는 영웅적인 여성과 정반대에 있는 이른바 ‘파렴치한 여성들’도 그렸습니다. 가수 이효리의 노래 ‘배드걸’ 가사를 빌리자면 ‘영화 속 천사 같은 여주인공’ 대신 ‘그 옆에 더 끌리는 나쁜 여자’들을 그린 것이죠.

그런데 아르테미시아가 ‘악녀’를 표현한 방식은 남성 화가들의 방식과 다릅니다.

이미 성서나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일부 여성들은 ‘팜므 파탈’로 그려졌습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남자를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이들이죠. 반면 아르테미시아는 성적인 매력을 제거하고 이들을 담백하게 묘사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성서 속 데릴라입니다. 블레셋 지역의 여성 데릴라는 괴력을 가진 삼손을 꾀어 그의 힘의 원천이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이후 데릴라는 삼손을 자기 무릎에 뉘어 잠들게 한 후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카락을 깎게 했습니다. 이에 삼손은 힘을 잃고 두 눈까지 뽑힌 후 포로가 됐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삼손과 데릴라’, 1609~1610
페터르 파울 루벤스의 ‘삼손과 데릴라’입니다. 데릴라의 무릎에 삼손이 잠들어 있고, 그 옆에서 한 남성이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습니다. 루벤스는 데릴라를 관능적으로 그렸습니다. 젖가슴을 내놓은 모습이죠. 그 옆에는 성서에 없는 노파를 등장시켜 사창가의 여주인으로 묘사했습니다. 데릴라를 창녀에 비유한 셈입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삼손과 데릴라’, 1635년경
아르테미시아의 데릴라는 다릅니다. 가슴을 훤히 내놓은 루벤스의 데릴라와 비교하자면 옷을 감각적인 정도로만 입었네요. 데릴라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를 것처럼 가위를 들고 있습니다. 또 옆의 여성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맞잡고 있는데요. 둘이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입니다.
프레드릭 샌디스, ‘메데이아’, 1868
아르테미시아는 악마 같은 어머니의 전형인 메데이아도 그렸습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메데이아’에서 그녀는 질투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아이까지 죽이죠. 메데이아를 소재로 한 그림들은 마법과 주술을 상징하는 물건들과 함께 그녀를 마녀로 묘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메데이아’, 1627~1630년경
반면 아르테미시아는 메데이아를 젊고 우아한 여성으로 그렸습니다. 그런 그녀가 아이에게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아르테미시아의 자화상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그림 우화 속의 자화상’, 1638~1640년
아르테미시아는 자화상을 통해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이 그림도 아르테미시아의 자화상으로 여겨집니다. 여성 화가가 몸을 기울이고 캔버스 앞에서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습니다. 앞치마를 하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그는 외모에 관심 없어 보입니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 그림에 집중한 모습이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경향성의 우화’, 1615년경, 피렌체 카사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집이었던 카사 부오나로티의 갤러리아 천장화 속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를 기념하는 작업이었는데요. 아르테미시아는 그림 속 인물에 자신의 모습을 넣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뻗친 덥수룩한 상태죠.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벽화 ‘최후의 심판’에 자기의 얼굴을 교묘하게 표현한 것과 비슷합니다. 당시 작품에 자신의 얼굴을 삽입한 화가들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티치아노,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정도죠.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의 재능을 역사적으로 훌륭한 남성 화가들과 겨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류트 연주자 모습의 자화상’, 1615년경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트리나 모습의 자화상’, 1615년경, 내셔널갤러리, 런던
아르테미시아는 역할 놀이하듯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류트 연주자 모습의 자화상’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트리나 모습의 자화상’ 등은 같은 포즈에 옷차림만 다르게 그렸습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막달라 마리아’, 1617~1620년, 피티궁 팔라티나 미술관, 피렌체
‘막달라 마리아’에도 자신의 얼굴을 넣었습니다. 역할극을 하는 것 같은 위트와 대담함을 볼 수 있습니다.
온전한 인간으로 숨 쉬는 아르테미시아의 여성들
아르테미시아는 여성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로 스스로를 홍보했습니다. 자신의 명성을 키우는 방법을 알았죠. 이같은 자신감의 뒤에는 탁월한 실력이 있었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23세에 여성으로는 최초로 명성 높은 ‘아카데미아 델 디세뇨’의 첫 여성 화가로 가입했습니다.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종손자인 소(小)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여성으로서 존경받는 화가가 된 것이죠.

아르테미시아는 1638년 찰스 1세와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의 초청으로 잉글랜드에 갔고, 잉글랜드 궁정에서 일하고 있던 아버지 오라치오와 함께 그리니치 퀸스하우스 천장화를 그리게 됐습니다. 퀸스하우스는 왕비와 수행원들이 쉴 수 있는 별궁이었는데요. 이곳에 있는 그림마다 여성 인물의 숫자가 남성 인물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왕비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요.

오라치오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잉글랜드 왕관을 쓴 평화와 예술의 알레고리’, 1638~1639, 말보로하우스 메인홀, 런던. 원래 그리니치 퀸스하우스 그레이트홀에 있던 천장화
아르테미시아가 아버지와 그린 ‘잉글랜드 왕관을 쓴 평화와 예술의 알레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천장화에서 한 명을 제외한 26명은 모두 여성입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이 그림에서 여성의 힘을 표현했습니다. 천장화 중앙에는 월계관을 쓰고 한 손에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 올리브 가지를 들고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황금 왕관을 쓴 승리의 여신도, 지혜와 힘, 점성술, 기하학, 농업, 음악, 회화, 조각 등을 상징하는 여성들도 있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또는 다른 화가, ‘회화의 알레고리로서의 아르테미시아’, 1630년경, 바르베리니궁전, 로마
오랜 미술 역사에서 여성들은 남성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려지며 대상화됐습니다. 이 경향은 유럽의 누드화에서 두드러집니다. 존 버거는 이를 지적하며 “전통적인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보라”며 “이같은 전환을 통해 관객들은 기존의 관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죠.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은 이 지적을 비껴갑니다.

아르테미시아는 다양한 여성을 그렸습니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성녀든 악녀든 그는 그림 속 여성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했습니다. 또 여성 인물을 그리며 현실의 여성 그 자체를 표현하려고 했죠.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의 여성 인물들에게 독립성과 자의식을 투영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르테미시아의 여성들은 주체성을 지닌 온전한 인간으로 숨 쉴 수 있었습니다.

아르테미시아 역시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예술가였습니다. 남성들이 지배했던 화단에서 아르테미시아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당대에 여겨지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물화를 그렸습니다. 전형성에서 탈피한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 이유입니다.

<참고 문헌>

-메리 D. 개러드(2022), 여기, 아르테미시아 :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 아트북스

-Houle, N. (2019). The Tempestuous Life and Work of Artemisia Gentileschi: An Analysis of Women and Art in the Italian Renaissance. HiPo: The Langara Student Journal of History and Political Science, 2(1), 43-50.

-Criswell, H. (2016, April). Artemisia Gentileschi: Judith Reimagined. In National Conference on Undergraduate Research, Asheville (pp. 269-281).

-정은진(2013), 미술과 성서, 예경

-존 버거(2012), 다른 방식으로 보기, 열화당

-영국 로열 컬렉션 트러스트(https://www.rct.uk/) 속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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