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5년 종말 후 4년 수명의 신인류가 등장한다면..."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이 세번째 소설을 냈다.
<호모 콰트로스 : 내전편>(우석훈 지음, 해피북스투유 펴냄)은 수명이 4년에 불과한 신인류에 대한 이야기다. 바이러스 사포엔치의 창궐로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종말을 맞이하고, 2045년 신인류가 등장했다는 설정. 신인류 호모 콰트로스의 문명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2151년, 수명 연장을 도모하는 세력이 쿠데타를 감행해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우석훈 작가는 17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고작 4년을 사는 인간"을 설정한 이유를 묻자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봄에 태어난 고양이는 가을에 벌써 엄마가 되어 있습니다. 2, 3년을 살다가 길고양이들은 떠나는데 그럼 그 묘생이 가치가 없는 거냐, 어쩌면 우리가 100년을 살면서도 느끼지 못했을 정도의 밀도 있는 삶을 살다 갈 수도 있어요. 우리가 왜 사는지 시간 축을 바꿔서 한번 생각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 작가는 4년을 사는 인간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행복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 많은 것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4년 밖에 못 산다면 하고 싶은 일은 바로 해야 합니다. 행복도 마찬가지거든요. 행복이 무언가를 하면, 언젠가 오는 게 아니다, 지금 있는 그 행복을 지금 바로 쓰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생태경제학자인 우 작가에게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밝힌 포항 유전 개발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석유가 나올 일은 없다고 본다"며 총선 패배 이후 국면 전환용으로 던진 카드로 해석했다.
"4월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 보면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선거에서 이겨야 정책을 새롭게 시행하거나 법 개정을 할 동력이 생깁니다. 근데 윤 대통령은 유전 개발 이외에도 종부세와 상속세 개편 입장을 밝히는 등 연일 정책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요. 비유를 하면 엄마한테 칭찬 받을 일을 해야 선물을 사달라고 조를 명분이 있는 건데, 말썽은 잔뜩 피우고 선물 사달라고 조르는 격이죠."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빈곤, 기후, 팬데믹이라는 세 가지 위기에 더해 한국은 두 가지 고유한 위기에 직면해 있어요. 저출산과 남북문제. 사실 북한 문제는 큰 문제라기 보단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정도였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 갈등이 심화되면서 시급한 문제가 됐죠. 윤 대통령은 뭘 해도 아주 빠르게 하기 때문에 위기도 아주 빠르게 올 것 같습니다."
다음은 우 작가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100년 사는 호모 사피엔스 vs. 4년 사는 호모 콰트로스, 누구 삶이 더 가치 있나?
프레시안 : 경제학자가 왜 자꾸 소설을 쓰시나요?
우석훈 :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그래요. 경제학이나 사회학 책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주제들인데 꼭 해보고 싶은 얘기들이 생기면 소설을 씁니다.
프레시안 : 이 작품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요?
우석훈 : 이제껏 인류의 수명이 계속 늘어오기만 했어요. 인류가 100세 시대라고 그렇게 오래 살게 되는데 삶의 목적이 과연 장수는 아니거든요. 우리는 왜 사는지를 시간 축을 바꿔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프레시안 : 왜 수명을 4살로 설정했나요
우석훈 : 매우 우연한 일인데, 고양이를 많이 키웠던 적이 있었어요. 봄에 태어난 고양이들이 가을이면 엄마가 돼 있어요. 2, 3년을 살다가 고양이는 떠나는데 그럼 그 평생은 묘생이라고 해야겠죠, 짧다고 가치가 없는 거냐. 어쩌면 우리의 60년, 100년 일생보다 밀도 있는 삶을 살다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레시안 : 책에서 신인류가 처음 나타난 시기를 2045년으로 잡았습니다. 얼마 안 남은 건데 너무 절망적인 거 아닌가요?
우석훈 : 첫 변종이 나오는 시기를 그렇게 잡은 거고, 근데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어떤 팬데믹이 올지 모르니까요. 또 쓰는 입장에서 너무 뒤로 보내면 긴박감이 없어요. 적당한 근미래로 설정했는데, 다른 작품들도 보니 <공각기동대>도 이미 지난 시기의 이야기로 설정했더라구요
프레시안 : 소설이니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자세히 여쭙지 않겠습니다. 내전편은 생명 연장을 바라는 세력의 쿠데타가 핵심 사건인데, 저는 영화 <서울의 봄>도 떠올랐어요. 서울과 울산, 상업자본과 산업자본, 욕망과 절제 등 설정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석훈 : 호모 사피엔스가 사라지고 호모 콰트로스가 모여 살던 게토 중에서 마지막까지 버텨서 살아남은 곳이 울산공화국입니다. 우리 비슷한 신체를 가진 호모 콰트로스가 하나의 문명으로서 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어놓은 것을 일정하게 계승한다고 치면, 한국에서 가능할 수 있는 도시는 울산입니다. 서울은 공장이 없어서 자체적인 생산이 불가능하거든요. 적당히 농사를 지을 땅도 있어야 하구요.
호모 사피엔스는 과도한 욕망으로 바이러스 창궐과 재앙에 가까운 환경 파괴로 종말을 맞이했기 때문에 호모 콰트로스가 만든 울산공화국의 헌법엔 4년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금지시켜 놓았어요. 이걸 바꾸고 싶어하는 서울 세력들과 이를 지키려는 울산 세력이 붙으면서 내전이 벌어집니다. 생존 자체가 절체절명의 과제이었다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정된 순간이 되면 내재적 욕망이 생기는데, 4년이란 수명이 제약이면 당연히 늘리고 싶은 욕망이 생기겠죠.
평균 수명 늘었으니, 청년들은 기다려라?
프레시안 : 사실 지금도 많은 자본과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명을 늘리기 위한 많은 연구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우석훈 : 그렇죠. 아직 평균 연령이 100세까지는 아니지만 100세 시대라고 하니까요.
지난 20년 동안 들었던 얘기 중에서 제일 어이 없는 얘기가 제가 88만원 세대 이후로 청년 이야기들을 많이 하니까,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예전에 수명이 40년일 때의 10대, 60년일 때의 10대와 이제 100세를 사는 시대의 10대는 다르다. 수명이 늘어난 것에 비례해 청년기를 늘려야 한다. 좀 기다려라. 진짜 본인들은 젊었을 때부터 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젊은 사람들이 치고 올라오니까 너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저는 이건 음모라고 생각하고 절대적으로 그 나이에 해야 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4년을 사는 인간이라는 설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었나요?
우석훈 : 행복의 본질입니다. 오래 살거나 오래 버티는 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건 그냥 미루는 거다. 수명이 4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갑자기 제 인생이 되게 긴 것 같더라구요. 얼마나 많은 걸 시도해 볼 수 있겠어요. 또 4년 밖에 못 살면 나중에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을 못 합니다. 지금 행복한 게 중요하죠. 행복은 무엇인가를 하면 언제가 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있는 그 행복을 지금 바로 쓰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프레시안 : 부제가 '내전'인데, 후속 작품도 있나요?
우석훈 : 이 작품을 구상한 지는 10년 정도 됐고, 실제로 쓰는 시간은 3년 정도 걸렸습니다. 원래는 3부작으로 구상했습니다. 처음 등장 후 게토를 만들어서 살아남는 이야기, 다음에 안정화 되면서 내전을 벌이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쿠데타 세력들이 밖에서 세력 키워서 하게 되는 최후의 전쟁. 가운데 이야기를 쓴 거죠. 나머지 얘기도 쓸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20대 남성의 보수화, 한국이 가장 빨랐지만 전세계적 현상
프레시안 : 많은 사람들이 우석훈 하면 책 <88만원 세대>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그 책이 나온지 벌써 17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20대가 이제는 30대 후반 아니면 40대가 됐습니다. 당시 '88만원 세대'의 상황이 지금 보니 조금 더 암울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석훈 : 88만원 세대, 그 이후 세대들에서 출산율이 많이 떨어졌고, 이는 앞으로도 계기가 없으면 반전이 어렵다고 봅니다. 저출산 시대가 상당히 구조화됐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없었던 양상 중 하나는 젠더 갈등 문제입니다. 좀 부드럽게 표현하면 20대 남성의 보수화, 유럽식 표현으로 하면 극우화입니다. 이게 한국에서 선거를 통해 제일 먼저 드러났어요. 지난 대선 때, 그리고 이번 총선 때도 20대 남성과 여성의 표가 20% 이상 갈립니다.
지금은 미국,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로, 유럽은 최근 있었던 EU 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걸 젠더 갈등으로 볼 거냐, 아니면 극우파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봐야 될 거냐.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현상이라 해석은 아직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수로 놓고 봐야할 것 같아요. 고치라고 고쳐질 문제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드러나는 일이라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탈계몽 시대, 어떻게 토론하고 소통하고 연대할 것인가
프레시안 : 빈부 격차 문제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이를 완화시키는 건 정치, 정책의 몫입니다. 그런데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우석훈 : 유럽으로 치면 68혁명 세대가 매우 이상적인 시대를 만들었죠. 그런데 그들의 이상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들도 생겨났도 했고, 이론적으론 포스트모던을 얘기한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상에서 벗어났다고 민주주의로부터 벗어난 거냐, 그건 아닙니다.
우리는 계몽이 불가능한 시대를 맞게 됐어요. 선생님도 없고, 원로도 없고, 21세기 한국도 계몽이 무너진 시기입니다. 그러면 질서가 없냐? 수많은 분산된 질서들이 있고, 이는 다른 방식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 탈계몽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토론하고 의사소통할 것이냐라는 새로운 질문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유럽만 놓고 보면 극우파가 득세하는 것 같지만 중남미를 보면 좌파 블록이 만들어지고, 전 세계가 동일한 시간대에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변한 건 이전에는 진보와 보수가 선거 때만 열심히 싸웠지, 선거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와 서로 잘 지냈어요. 근데 지금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져서 선거가 끝나도 일상에서 같이 지내지 않아요. 미국도 트럼프 지지자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완전히 갈라졌어요.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의 역할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론장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어야 되는데, 이게 사라졌어요. 레거시 미디어들이 그런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은 인기가 없어서 사람들이 잘 안 모이고, 유튜브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죠. 계몽이 사라졌다 해도 공론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데 현재는 그 부분이 사라졌어요.
프레시안 : 그런 흐름을 탈권위가 아니라 반지성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석훈 : 반지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역사가 돌아가서 계몽의 시대가 다시 올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토론과 합의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 인데요, 지성인들이 세상을 끌고 가던 시기가 끝난 겁니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그 계몽의 시대가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요. 지금은 TV에서 육아 전문가가 조언을 해준다, 반려동물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 이런 전문가로서 권위가 더 강하고, 우린 그 세계로 이미 와 있습니다. 사회 현상에 대해 종합적으로 어떤 지식인의 판단이 맞다, 이제 이건 어려울 것 같아요.
민주주의는 불편하고 시끄러운 거예요. 싫은 사람의 얘기도 듣고 그렇게 가는 게 민주주의예요. 그런데 그걸 피하거나, 무의미하다, 효율적이지 않다고 보는 이들도 있어요. 결정을 못하는 것, 나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은 겁니다. 좋은 결정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들이고 시끄러움을 불사하는 건 매우 효율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총선 패배 뒤 포부 밝히는 윤석열, 리스크 관리조차 못한다
프레시안 : 생태경제학자인데, 기후위기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는데 그에 비해 대응책 마련은 더디기만 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산유국의 꿈을 이야기하면서 포항에서 유전 개발을 하겠다고 합니다.
우석훈 : 석유가 나올 일은 없다고 봐요. 그냥 하고 싶은 얘기 한 거라고 봅니다. 4월 총선 이후 윤석열 정부의 언행을 보면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보통 선거에서 이겨야 정책을 새롭게 시행하거나 법 개정을 할 동력이 생깁니다.
종합부동산세도 민주당 일각에서 1주택자에 대한 면제 이야기가 나오니까 윤석열 정부에선 한술 더 떠서 종부세 자체를 폐지하겠다, 상속세도 대폭 완화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법을 고쳐야 하는 일이라서 윤석열 대통령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기후변화 대응은 미국, 한국이 잘 하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할 마음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윤석열 정권 들어 태양광 사업과 같은 재생 에너지 사업은 은행 대출을 받는 일 등이 매우 어려워졌고, 그래서 망한 분들도 많아요. 그러나 세계적으로 형성돼 있는 대세적 흐름을 어느 정권 하나가 많이 바꿀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 기후문제를 자기 문제로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프레시안 : 현재는 기후위기, 경제위기 등 복합위기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 중에 우리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우석훈 : 세 가지를 인류의 현 위기라고 얘기해요. 빈곤, 기후, 팬데믹. 이들은 과학기술을 발달로 완화되지 않을 위기로 지목됩니다. 한국은 여기에 저출산과 남북 문제라는 고유의 위기가 있습니다. 사실 남북 문제는 큰 문제라기 보단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정도의 문제였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간 긴장이 심화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리스크 관리가 안되면서 시급한 문제가 됐죠. 윤석열 대통령은 뭘 해도 아주 빠르게 하기 때문에 위기도 빠르게 올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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