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열기 타고 글로벌 총출동…K기업들, ‘스포츠 마케팅’으로 불황 넘는다
‘세계 최강’ 한국 양궁 뒤엔 현대차의 든든한 지원
KB금융·신한은행 등은 스포츠 유망주 육성 지원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최근 기업들의 스포츠 마케팅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초대형 글로벌 이벤트인 파리 하계올림픽을 맞아 스포츠 마케팅은 기업 이미지 제고 수단에서 더 나아가 불황 타개를 위한 돌파구로 인식되는 모습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7월26일 열릴 제33회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후원사든 후원사가 아니든 각자의 방식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보통 하계·동계 올림픽이 벌어지는 해에 스포츠 전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인지도 제고 넘어 실질적 성과 추구
한국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가 유일하게 파리올림픽 공식 후원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올해 파리 하계올림픽까지 26년간 올림픽을 후원해 왔다. 전화 사용이 제한적이던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선수들이 고향의 가족들과 무료로 통화하게 돕는 '콜 홈'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것을 시작으로 올림픽마다 최신 모바일 기기를 지원한 바 있다.
올림픽 후원 초기에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방점이 찍혔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글로벌 판매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고 삼성전자 측은 밝혔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분기 만에 애플을 무찌르고 선두를 탈환했지만, 애플의 반격이 거세고 중국 기업들의 성장세도 가팔라 전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다. 삼성전자는 이미 파리의 대표적인 거리 샹젤리제에 '삼성 올림픽 체험관'을 열었고, 개막 후 올림픽 파크와 선수촌, 미디어센터 등에서도 자사 모바일 기기 체험관을 운영할 예정이다.
LG전자는 이번 파리올림픽을 유럽 시장 점유율 제고의 기점으로 삼는다는 복안이다. 5월26일(현지시간) 샹젤리제에서 냉장고 신제품 체험행사를 열며 프랑스 시장 공략을 시작한 데 이어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올림픽 메달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선전하는 종목의 후원사들이 자연스레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직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이 획득한 금메달 6개 중 4개가 양궁에서 나왔다.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의 지위를 다진 배경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전폭적인 후원이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도 변함없이 양궁협회와 함께 파리올림픽 양궁선수단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양궁선수단 지원을 위해 파리올림픽을 직접 찾을 계획이다. 현대차의 실적 측면에서도 파리올림픽 양궁선수단의 선전은 중요하다. 현대차가 연간 58만6680대(2022년 기준)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유럽은 미국(78만675대), 한국(68만8884대)에 이은 3대 시장이다. 정 회장이 파리올림픽 중계 카메라에 잡히고, 자연스레 현대차그룹의 한국 양궁 지원 스토리가 유럽 등 전 세계에 알려질 경우 홍보·마케팅 효과는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클 전망이다.
해외 마케팅을 하지 않는 기업들도 파리올림픽과 관련한 직간접적인 마케팅에 여념이 없다. 특히 기업 신뢰도와 고객 유치가 중요한 금융사들의 행보가 눈에 띈다. KB금융그룹은 스포츠 유망주들을 오랜 기간 지원하며 스포츠계의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자처해 왔다. 단기적인 성과보다 긴 호흡으로 선수들과 함께 성장 스토리를 써내려간다는 후원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파리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 중에는 황선우(수영), 여서정(기계체조) 등이 유망주 시절부터 KB금융의 지원을 받았다. 든든한 후원 속에 실력이 일취월장한 두 선수는 어느덧 한국 스포츠계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성장했다. KB금융은 이들이 속한 수영·기계체조 국가대표팀과 배드민턴 국가대표팀도 후원하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망주 발굴부터 프로구단 운영까지
신한은행은 유도 유망주들을 발굴해 지원하고 있다. 재일교포 허미미, 허미오, 김지수 등과 개인 후원계약을 맺었고 지난해 7월부터는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는 유도 국가대표팀을 공식 후원해 왔다.
신한은행은 파리올림픽 관련 후원 외에도 다양하고 색다른 스포츠 마케팅을 펼치는 중이다. 대표적인 게 '프로야구 적금'이다. 신한은행은 2024 한국프로야구 KBO리그의 타이틀 스폰서로서 해당 적금을 선보였다. 응원하는 구단을 선택해 월 최대 50만원까지 자유롭게 저축하는 12개월 만기 적금 상품이다.
NH농협은행은 2017년 스포츠단을 발족해 비인기 종목 유망주 발굴과 동호인 대회 후원을 이어 왔다. 테니스와 당구, 골프 등 종목을 후원하는 NH농협은행은 국제테니스대회 같은 엘리트 대회는 물론 테니스, 농구 등 동호인 대회도 운영 중이다.
하나은행의 스포츠 마케팅은 대한축구협회 공식 후원으로 대표된다. 1998년부터 대한축구협회를 후원해온 하나은행은 2007년부터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타이틀 스폰서로, 2017년부터는 K리그 타이틀 스폰서로 후원 범위를 넓혔다.
하나은행은 단순한 후원에서 그치지 않고 2부 리그 소속이었던 대전 시티즌을 2020년 인수해 대전 하나시티즌으로 구단명을 바꾸고 과감하게 투자했다. 대전 하나시티즌 구단주인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인수 당시 "대전 하나시티즌의 K리그1 승격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3년 만에 대전 하나시티즌이 K리그1 승격을 이뤄내며 현실화했다.
이 밖에 한화그룹은 프로골프단 운영을 통한 스포츠 마케팅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화는 2011년 한화골프단으로 여자 골프선수 후원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8년부터 그룹의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담당하는 한화큐셀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 맞춰 한화큐셀골프단으로 재출범했다. 한화큐셀골프단은 현재까지 LPGA 22승, KLPGA 19승, JLPGA 6승과 LET(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 3승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해 왔다.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공식 스폰서가 된 지 23년째를 맞은 기아는 지난 1월 2024 호주 오픈을 맞아 대회장인 멜버른파크에 부스를 설치하고 글로벌 브랜드 캠페인을 활발히 진행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례 없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지정학 위기에도 스포츠가 주는 감동과 매력은 여전하다"며 "후원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거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유·무형의 성과를 얻는 경우도 상당한데, 이것이 바로 기업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일각의 지적에 아랑곳없이 스포츠 마케팅을 지속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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