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두 브랜드, 형제였네”…브로맨스 뽐냈던 ‘두 남자’ 나치 때문에 갈라섰다 [추동훈의 흥부전]
[흥부전-58][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48]아돌프 다슬러
그의 신발은 단순한 운동화가 아닌 경기력을 향상하는 혁신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브랜드로 남은 위대한 창업자는 여전히 나이키의 가장 큰 라이벌이자 독일을 대표하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를 창업한 아돌프 다슬러입니다.
아디는 매우 창의적이고 손재주가 뛰어난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신발 공장에서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가지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신발 제작 기술을 익혀갔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아디는 공장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도와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신발 제작의 기초를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디에겐 둘도 없는 단짝인 형 루돌프가 있었습니다. 그와 루돌프는 매우 가까웠습니다. 두 형제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활동을 즐겼습니다. 루돌프는 아디의 아이디어와 열정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든든한 형이었습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다슬러 가족을 포함한 12명의 직원들이 매일 50켤레의 운동화를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생산해냈습니다. 또한 외향적인 성격의 루돌프는 세일즈와 마케팅에 집중했고 조용하고 꼼꼼한 신발 장인 아돌프는 신발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특히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그의 신조(Only The Best For The Athlete)는 아디다스 브랜드 철학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창업 이듬해인 1925년, 아돌프는 스파이크를 박은 러닝화와 가죽 징을 박은 축구화를 개발합니다. 이를 통해 아돌프는 특허권을 획득합니다.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올림픽은 이들에게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이미 독일 국가대표 선수 대부분이 이들 형제가 만든 운동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을 꿈꾸던 이들 형제는 미국 국가대표가 머물던 베를린의 선수촌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미국의 육상스타 제시 오언스에게 자신들의 운동화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이에른 지역에서 베를린까지 10시간 가까이 직접 운전해 간 그들은 스파이크 운동화를 그의 발에 신기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제시 오언스는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계주, 멀리뛰기 등 총 4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며 베를린 올림픽 최고의 스타에 등극합니다. 바로 아돌프의 신발을 신고 말이죠.
그리고 그들 형제는 1933년 나치 당원이 됩니다. 문제는 사업에 도움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에 가입한 아돌프와 달리 루돌프는 진성 나치 당원이었다는 점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또다시 징집된 루돌프로 인해 아돌프는 혼자서 사업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 루돌프는 아돌프가 자신을 음해하고 고발했다는 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제 전쟁이 끝난 후 전범재판 등을 놓고 두 형제는 서로를 탓하며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그렇게 스포츠업계를 주름잡던 두 형제의 갈등은 완전한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키웠지만 반대로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두 곳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동생 아돌프가 지켜온 기존 회사는 아디다스가, 루돌프가 독립해 새로 세운 브랜드는 푸마가 됩니다.
두형제의 갈등이 오히려 업체간 경쟁을 유도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넓히는 기회로 이어진 것이죠. 물론 반대로 두 형제가 계속해 힘을 합쳤으면 나이키를 뛰어넘는 대제국을 형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슬러 형제의 결별은 스포츠 용품 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두 형제가 각자 설립한 아디다스와 푸마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로서 경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경쟁은 혁신과 품질 향상을 촉진했고, 전 세계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아디다스와 푸마는 각각의 브랜드로 독립하며,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다슬러 형제의 갈등과 결별은 한편으로는 슬픈 이야기이지만, 결과적으로 두 개의 위대한 브랜드가 탄생하게 만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아돌프 다슬러는 197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아디다스에 남아있습니다. 혁신과 품질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디다스를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돌프 ‘아디’ 다슬러의 작은 세탁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거대한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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