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동물원 ‘테마파크’ 아닌 ‘야생동물 보호소’가 되다[이상한 동물원⑦]
-동물원, 야생 복귀·보호 책무 있어야
한때 유행했던 허무 개그가 떠오른다. 아기 낙타가 특이한 외모로 친구들에게 놀림당하자 엄마 낙타가 그 생김새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이야기다. “우리 등은 왜 이렇게 생겼어?” “그건 우리가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해서지, 누구도 갖지 못한 자랑거리야.” 환한 얼굴로 돌아갔던 아기 낙타는 이번엔 “발이 왜 이렇게 생겼어?”라고 묻는다. “그건 모래사막을 건너기 위해서지.”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들에게 갔던 아기 낙타는 이내 다시 달려와 묻는다. “그럼 눈썹은 왜 이렇게 길어?” 엄마 낙타는 “덕분에 모래바람이 눈에 들어가지 않지”라며 다독인다. 한참 생각하던 아기 낙타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그럼 왜 우린 동물원에 있어?” 동물권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과거의 이야기지만 요즘 부각되는 동물원에 대한 문제의식과 잘 들어맞는다.
2006년이었다. 수년째 동물원 동물들을 진료하고 있었지만, 그간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많았다. 200종 가까운 동물들을 치료한다는 건 고민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아픔과 죽음을 피하지 못한 동물들은 내 손을 거쳐 하늘로 갔다. 동물들이 병들고 다치는 원인은 다양했지만 결국 끝은 치료의 실패였다. 자연스럽게 동물원에서 가장 불편한 결재인 동물폐사보고는 내 차지가 됐다. 내가 나타나면 상사들은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와 비례해 수의사로서 내 자존감은 낮아져갔다. 시간이 가며 내 몸 안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쌓였다.
내 장점은 상황에 대한 인정이다. 동물원을 그만둘 게 아니니, 부정적인 에너지도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기분 전환을 위해 동물원을 한 바퀴 돌다 보니 밝게 웃는 아이들이 보였다. 4년째 이어오던 어린이 동물교실을 찾은 아이들이었다. 동물에 관한 일에는 전혀 관심 없는 직원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업무 분장을 잘하면 그에게 꽤 좋은 직장이 되겠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라 사진을 찍으려면 사무실에 있는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주로 나 혼자 다녔던 동물 진료 현장의 사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어린이 동물교실은 동물원의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아 행정직원이 보고용으로 찍은 사진들이 있다. 덕분에 과거 청주동물원의 기록이 이렇게 남았다.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나쁜 일이 생기면 그다음에 올 선물 같은 일을 기대하는 이유다.
어린이 동물교실을 진행하면서 얻은 값진 소득이 또 있다. 청주동물원의 변화는 사실 어린이 동물교실에 참가했던 아이들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18년 전 독수리사 앞에서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독수리는 겨울 철새이며 몽골이 번식지고 주로 먹이 경쟁에서 밀린 어린 독수리들이 한국에 오게 됩니다. 봄이 되면 다시 몽골로 돌아갑니다.”
수달사 앞에서도 말했다. “수달의 세력권은 강을 따라 40㎞ 이상이고 포식자로서 자신의 영역을 알리기 위해 높은 바위에 똥 자리를 만듭니다.”
대부분은 동물이 그저 반갑고 신기해서 보고 있었지만 어떤 아이들은 아기 낙타처럼 계속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그럼 왜 독수리는 날개를 펴지도 못하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어요?” “선생님! 그럼 왜 수달은 작은 욕조에 살아요? 똥 눌 바위는 왜 없어요?” 아이의 궁금증에 말문이 막혔다.
아이들의 물음에 고민이 시작된 날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 동물원의 독수리는 모두 6마리였는데 올해 3마리가 전주동물원으로 갔다. 전주동물원에서 국가유산청 천연기념물 보존관 사업으로 독수리사를 신축했는데 청주동물원의 독수리사보다 몇 배 커서 독수리들이 날아볼 만했다. 다른 동물들도 더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이 있으면 보내고 있다. 현재 남은 독수리는 3마리다. 한 마리는 부리가 비뚤어져 아사하기 직전 극적으로 구조된 개체이고, 다른 한 마리는 2022년 경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했으나 날개가 손상돼서 몽골로 돌아가지 못한 친구다. 마지막 한 마리는 시중에 파는 앵무새장을 본떠 만든 좁은 새장에 갇혀 지낸 독수리로 올해 국가유산청과 구조한 개체이다. 아마도 농약 중독 증세로 구조됐으나 완치 후 돌려보내지 않고 개인이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로 데려오면서 ‘하늘’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얼마 전 하늘이의 건강검진을 했는데 별 이상이 없었다. 특히 두 날개는 멀쩡해져서 훈련을 한다면 장거리 비행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늘이는 내년 완공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청주동물원 독수리 방사훈련장의 첫 입소 개체가 될 것이다.
수달 가족은 서울의 한 동물원에서 한강에 방사할 목적으로 번식한 개체들이다. 그러나 방사 훈련 직전 한강 인근 도로의 로드킬 문제가 제기돼 사업이 취소됐다. 민물에서 놀던 물범들을 제주도로 보내고 빈 물범사를 터 수달사를 확장한 뒤 그 수달들을 데려왔다. 수달사는 수달의 생활 패턴을 고려해 오후 2시나 돼야 개방된다. 관람객들은 오전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수달이 배를 뒤집고 자고 있다고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수달을 기다려주는 관람객들을 보고 있으면 동물에 대한 배려가 느껴져 흐뭇하다.
며칠 전 한 방송국의 요청으로 타 지역에 있는 실내동물원에 다녀왔다. 유아를 동반한 한 가족이 콘크리트벽 작은 방에 있는 사자에게 먹일 닭날개 꼬치를 사고 있었다. 사자의 배고픔을 이용한 먹이주기 체험이다. 당장은 동화책에서 본 사자가 가까이 다가오니 신기하겠지만 아이가 더 커서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 욕심 많은 어른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사자를 배고프게 하면서까지 체험할 동심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동물원 존폐가 찬반 토론의 단골 주제가 된다.
몇년 전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가 나를 찾아왔다. 동물원을 활용한 학교 교육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 인연으로 지난해부터 교원 연수를 동물원에서 하고 있다. 강의가 끝난 후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동물원에 야생동물을 가두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청주동물원의 방향성이 좋은 예가 됐다는 후기를 남겼다. 교사들의 요청도 있었지만 공공 동물원의 책무라 생각해 지난달 충북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교사 연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나의 시 낭송을 들은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로 그 후 시집을 사게 됐다. 교사의 지대한 영향력과 만나는 학생 수를 헤아려보면 동물원의 교육적 효과는 파급력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오래전 갇힌 동물들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은 청주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의 보호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했으나 영구 장애를 얻은 야생동물을 청주동물원에서 보호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장애인 관람객이 고맙다는 전화를 해왔다. 열악한 개인 동물원에서 나이 든 동물을 데려왔다는 기사에는 노령층 독자들이 응원 댓글을 달아준다. 소외된 동물의 보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확장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은 어른이 된 그 시절 아이들은 자신을 닮은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다시 동물원에 오겠지!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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