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풍선’, 오염으로 인식돼 혐오를 퍼뜨린다

한겨레 2024. 6. 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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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성경의 탈분단 사유
‘오물’ 풍선 효과
29일 서울 구로구에 떨어진 대남 풍선. 합동참모본부 제공

6월은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던 달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 남북공동선언이 2000년에 선포되기도 했다. 연평도 인근에서 발생한 남북 사이의 해상전투 두 차례도 1999년과 2002년 6월에 발생했다. 이즈음 한편에서는 ‘호국보훈’을 강조하는 행사가 줄을 잇고, 다른 쪽에서는 평화를 염원하는 움직임이 활발한 이유이다.

사회 작동 위해 필요한 ‘오염 정화’

하지만 올해 6월은 온통 남북 대결과 적대로 가득하다. 시작은 난데없이 ‘풍선’이 촉발했다. 지난달 26일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차관)이 서해의 해상 국경과 대북 전단 문제를 지적하고 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이 남한을 향해 ‘오물’을 날리겠다는 경고에 귀 기울인 이들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 서해상의 우발적인 군사 충돌을 걱정했다.

하지만 5월29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자신들이 남한을 향해 “휴지장들과 오물짝들”을 대량 살포했으며 이것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에 대한 대응임을 밝히면서 ‘풍선’을 둘러싼 양쪽의 갈등이 극에 다다르게 되었다. 갑작스레 ‘오물’ 풍선을 목격하게 된 남한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고, 탈북민 단체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6월6일부터 8일까지 또다시 풍선을 북쪽으로 띄웠다. 북한도 이에 질세라 다시금 ‘오물’ 풍선을 남한으로 보냈고, 남한도 9·19 군사합의 파기와 대북 확성기 재개로 맞대응에 나섰다. 지금은 잠시 교착상태이지만 ‘풍선’을 둘러싼 남북 사이의 위험은 상존하는 상황이다.

‘풍선’을 둘러싼 이견도 확산되었다. 대북 전단의 효과가 과연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포기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부터 다른 주권국을 상대로 한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도 본격화되었다. 헌법재판소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위헌 결정, 남북교류협력법, 국제민간항공협약까지 온갖 법 조항들을 동원하여 ‘풍선’의 적법성 관련 찬반 논쟁을 벌인다. 대북 전단에 대한 북한의 날 선 반응을 두고 익숙하기만 한 ‘내부 소요설’과 ‘체제 붕괴설’이 재등장하기도 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발언대로 나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하지만 정작 남북이 ‘풍선’을 통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으며 그것이 어떠한 사회문화적 파장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다. 상대방을 향해 ‘쓰레기’를 투기하는 것에 열중한 나머지 ‘풍선’ 사태가 만들어낸 문화적 효과에 대해서는 숙고하지 않는 것이다. 다소 과감하게 주장해보자면 남북의 ‘풍선’ 살포는 서로에 대한 인식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 전환점이다. 특히 남한 사회는 이번 계기를 통해 북한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오염’과 ‘불결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남한 사회 대다수는 북한의 ‘오물’ 풍선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몇몇 풍선에서 동물의 분변과 담배꽁초 등이 포함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북한의 ‘풍선’을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더러움’과 ‘오염’으로 인식했다. 오죽하면 “똥 풍선”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되고 있을까. 일찍이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가 ‘순수와 위험’(Purity and Danger)에서 강조한 것처럼 ‘더러움’과 ‘오염’은 그 사회의 복잡한 상징체계와 연관되어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 이면에서 작동하는 분류체계를 혼란시키는 관념이나 행위가 ‘오염’인데,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것은 사회의 작동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불결한 것이 된다. 예컨대 동물의 분변이 퇴비 더미가 아닌 풍선에 실려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사회와 문화 전반의 법칙이나 분류체계를 파괴하는 것이기에 위협이자 위험으로 감각된다. 그만큼 ‘오염’을 정화하고 퇴출하는 것은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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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대상, 북한 ‘체제’에서 ‘사람’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북한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탈북민이 보내는 전단은 북한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분류체계 밖의 것이 분명하다. 북한 체제가 지도자의 절대적이며 상징적인 위치를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인민들이 지도자와 체제에 대한 비방으로 가득한 전단을 ‘순수’한 정보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 규범을 작동하기 위해 전 지역에 퍼져 있는 국가 기관과 조직들은 대북 전단과 한류 콘텐츠를 담은 유에스비(USB)를 온갖 더러움이 가득한 ‘오염’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불온함이 가득한 남한에서 온 물건을 그만큼 강력한 수단을 활용해 규율하여 박멸하려 할 것이다. 이번 ‘풍선’ 사태에서 남한 정부가 취한 기민한 대응방식, 예컨대 시간을 가리지 않는 경고문자 발송, 주민들의 신고 독려, 공무원이 직접 나선 오물 풍선 수거 등은 체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북한에선 더욱 전방위적으로 시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대북 전단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포함되었다고 비난했던 것을 상기해봤을 때 북한 체제는 남한보다 더욱 다양한 장치를 활용하여 대북 전단을 더럽고 오염된 것으로 의미화했을 것이다. 결국 남한에서 보내온 ‘풍선’은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와 도움이 아닌 위험과 위협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남북이 서로를 향해 보낸 ‘풍선’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심리전의 효과보다는 서로를 불결하게 취급하며 혐오하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올해 초 북한은 남북 관계를 ‘두 국가’, 그것도 “적대적인 두 교전국 관계”로 재규정했다. 이를 두고 윤석열 정부는 수세에 몰린 북한 체제가 내부 단속을 위한 방편으로 ‘두 국가론’을 내세웠다고 평가하면서 이럴 때일수록 통일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정부가 놓친 것이 있다면 남한 주민들 대부분이 이미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도, 통일을 절대적 가치로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풍선’ 사태는 남한 주민들이 북한을 적대와 위협으로 감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염’으로 감각되는 북한이 남한 주민들의 세계에 자리를 얻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이 풍선을 되받아치는 사이 북한이 그토록 강조했던 ‘두 국가’가 남한 주민들 마음속에서 더욱 공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윤석열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탈북민의 대북 전단 살포가 북한을 붕괴시킬 것으로 기대하며 ‘통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북한을 향한 혐오의 감정이 남북 분단을 공고하게 하는 자양분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지금은 북한 체제를 겨냥한 혐오가 북에서 온 사람들로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짐작이나 할까?

‘풍선’ 사태가 잠시 숨을 고른 사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고 두 나라는 동맹 관계를 복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언한 ‘두 국가론’의 현실화를 위해 북한은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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