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네덜란드서 전문가들이 얻은 시사점은 [심층기획-출생률, 유연 근무에서 답을 찾다]

이지민 2024. 6. 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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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활용률 EU 평균 20%…한국은 4.4%
“한국선 시간제 일자리 ‘임시 일자리’라는 편견”

“‘신뢰를 기반으로 근태 관리 한다’는 말이 너무 두루뭉술하게 느껴졌어요. 과연 한국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죠.”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독일·네덜란드에서 만난 기업들이 하나같이 근태 관리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며 22일 이같이 말했다. 유연 근무가 활성화한 나라에서 그 비법을 자세히 듣고자 했는데 적잖게 아쉬웠다는 반응이다. 

세계일보는 고용노동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사발전재단,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정연) 관계자들과 함께 이달 5일(현지시간)부터 11일까지 유연 근무가 보편으로 자리 잡은 네덜란드와 독일을 찾았다. 각자 몸담은 분야가 다른 만큼 주목한 부분도 다양했다. 이들의 시선을 따라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점과 꼭 유념해 정책에 반영해야 할 점을 정리해보았다.
독일 노동시장·직업연구소(IAB)의 안드리아스 필저 연구원이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 사무실에서 남성 육아휴직 사용의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유연 근무 관련 사회적 논의 활발해져야”

7일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마이본볼프 사무실에서 만난 마이본볼프의 알렉산드라 메스머 커뮤니케이션 부서장은 주당 30시간대, 혹은 20시간대로 일하는 근로자들의 근태 관리법에 관해 묻자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만약 초과근무를 하게 될 경우 신뢰에 기반해 결재를 올리면 이를 수용한다”고 부연했다. 

황 본부장은 “정보통신(IT) 분야 기업에 국한한 이야기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유연 근무가 활성화돼 있긴 하지만 그에 따른 관리의 어려움은 유럽 국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근로 형태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강제하기보다 노사 협의로 자유롭게 정하는 데 주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업종, 업무별 필요성을 고려해 노사 간 자율적인 협의로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유연한 근무 형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모두 공감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본부장은 “노동자의 시간 주권 확대는 세계적 추세”라며 “독일과 네덜란드 사례 모두에서 노동 시간 단축과 시간 선택권 확대, 건강한 노동환경 조성이 인재 확보를 위한 필수 전제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유연 근무 활용률은 2019년 10.8%(222만명)에서 2020년 14.2%(290만명), 2021년 16.8%(353만명)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22년에는 코로나19 종식 영향으로 16%(348만명)를 기록했다. 재택근무 활용률도 매해 높아져 2021년 5.4%였는데 2022년에는 4.4%로 집계됐다. 

2022년 유럽연합(EU)의 재택근무 활용률은 20%다.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 활용률이 가장 높은 가장 높은 네덜란드는 48.5%를 기록했다. 한국과 44%포인트 차이가 난다. 

노사발전재단의 남지민 일터혁신본부 일터개선팀장은 국내에선 시간제 일자리가 ‘임시 일자리’라는 인식이 강해 유연한 근무 형태에 관한 논의도 더디게 진전되고 있다고 봤다. 임금이나 인사 고과 역시 전일제 근로를 기본으로 하는 것도 한계다. 남 팀장은 “한국은 유연근무제 도입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이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특히 사무실에서 다 같이 일해야 하는 인식이 보편화해 있는데 기업 상황과 업무 특성에 맞게 유연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보통신(IT) 기업 블루브릭스의 로날드 판 스테이니스 최고경영자(CEO)와 잇츠카 얀슨 블루브릭스 인사관리(HR)부 부서장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알펜안덴레인 지역에 있는 본사 사무실에서 재택근무 비율을 설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일·생활 균형’

2022년5월 경총이 발표한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세대가 생각하는 괜찮은 일자리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66.5%는 ‘일과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일자리’를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일자리’(43.3%),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일자리(32.8%)’, ‘수평적인 회사 분위기(25.9%)’ 등이 뒤를 이었다.

‘돈’과 같은 물질적 보상보다 워라밸(일·생활 균형)을 중요시하는 추세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 노동시장·직업연구소(IAB)가 2022년 직원 100명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둘의 조합’(돈과 시간)을 택한 비율은 6%였고 ‘시간’과 ‘돈‘은 각각 59%, 34%를 차지했다.

장현석 고용노동부 고용문화개선과 과장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경향은 더 심화할 것”이라며 “기업에서도 이런 흐름을 인지하고, 적기에 인사 노무 시스템에 반영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 네덜란드 정부 기관과 기업 관계자 모두 유연 근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며 “우리도 근로자와 기업이 신뢰를 기반으로 그런 기업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한 과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스 판 더 펠트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AFAS소프트웨어 임원진들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뢰스덴 본사 회의실에서 공동취재단과 유연근무 제도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육아휴직만으로는 저출생 해결 불가능”

여성 정책 전문가들은 장기 육아휴직보다 시간제 근로와 유연 근로를 활용하는 데 정책의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점을 생생하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민정 여정연 연구위원은 “한국의 육아휴직제도 등은 독일, 네덜란드와 비교해 크게 부족하지 않다”며 “기업 현장에서 이 제도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들 국가와 크게 다른 점”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독일과 네덜란드는 여성 시간제 근로가 많지만 노동시장에서 성 평등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높다”며 “우리도 ‘성 평등 수준의 제고’가 저출생 대책의 기본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독일, 네덜란드의 높은 세율과 이를 토대로 한 복지 수준은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강 연구위원은 “유럽 선진국들은 소득이 높을수록 세율도 높아 굳이 장시간 근로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 IT 기업 마이본볼프의 알렉산드라 메스머 커뮤니케이션 부서장은 “IT 분야의 초봉은 4만5000유로(약 6700만원)부터 시작해서 높은 편이지만, 6만유로(약 8900만원)를 연봉으로 받는다고 해도 세금이 45% 부과된다고 보면 순수 월급은 그렇지 많은 셈”이라고 했다. 독일에서 육아휴직 격인 ‘부모수당’은 최대 14개월간 출생 전 순소득의 65%를 대체해주며, 월 최대 1800유로(약 266만9000원), 소득이 아예 없을 경우도 최소 300유로(약44만6000원)가 보장된다. 

정성미 여정연 연구위원은 제도를 토대로 한 유연 근무 ‘문화’가 얼마나 잘 정착돼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육아휴직의 한계로 꼽히는 경력단절이나 낙인효과 등을 고려하면 유연 근무가 저출생 대책에서 반드시 중요한 중심축이 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너도 쓸 수 있고, 나도 쓸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가 보편적으로 확대돼야 한다”며 “육아휴직 하나만으로는 저출생을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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