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인터뷰] “尹, 노태우·김대중 리더십 따라가야… 상대 적대시할 땐 ‘동물정치’”
“노태우의 ‘1노3김’ 시대에 여소여대였지만 의안 통과율 제일 높아”
(시사저널=박성의·박나영 기자)
"대통령 탓이다." 6월20일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6선 의원 출신 문희상 전 국회의장에게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를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행정부 수반인 윤석열 대통령이 입법부를 적대시하는 탓에 정치는 실종되고, 여야의 대치는 심화되고 있다며 "국회를 경시한다"는 진단을 내놨다. '여소야대' 지형이 윤 대통령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엔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여소야대 지형이었지만 대통령은 빛났다"며 전(前) 대통령들의 탕평책·대야 소통을 반례로 제시했다.
"정치의 실종…대통령이 국회 경시해"
문 전 의장은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쪼개는 개헌에 나선다면 "지지율이 반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더불어민주당 고문인 그는 '이재명 사당화' 논란에는 "국회의장에 우원식 의원이 선출된 것을 보고 안도했다"며 "이념에 매몰되어 상대를 적대시하는 풍토는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평가 부탁드립니다.
"정치의 실종, 부재, 붕괴예요. 적이냐, 동지냐를 나누는 이분법의 세계가 됐습니다. 타협하고 대화하고, 양보할 줄 알아야 하는데 지금은 상대를 때려 죽이려고만 합니다. 동물의 정치입니다. 자기편 외 전부를 부정하고 자기 새끼만 심으려 해요. 밀려난 측은 그게 또 억울하니 칼을 갈고 죽일 생각만 합니다."
실제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거야(巨野)와 소여(小與)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당은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하는데, 야당을 영어로 하면 'opposition(반대하는) party(정당)'입니다. 야당은 정부·여당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뜻이 모인 집합체입니다. 야당이 여당과 같은 주장만 하면 기본 책무를 다하지 않는 셈이죠. 어느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집권 2년 차까지 안 만납니까.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탓에 영수회담이 지연됐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판단도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너무 지나치면 '이건 너무하지 않나'란 얘기가 나오게 되고, 국민은 정치에 근본적인 회의가 들 수 있습니다."
대야 관계가 아닌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어떤가요?
"대통령이 여당을 자기 멋대로 움직입니다. 지난 여당 전당대회를 보세요.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 윤 대통령은 자기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후보를 '안 돼!'라며 뿅망치로 때려댔습니다. 자기 말 잘 듣는 당대표만 '오케이'했죠. 대통령이 국회를 경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윤 대통령에게 '정치 실종의 책임'이 있다는 의미인가요?
"윤 대통령 용산 집무실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란 팻말이 있습니다. 맞아요. 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야당 탓, 국회 탓, 전 정권 탓만 했습니다. 이태원에서 국민 수백이 다치거나 죽고, 인명을 구하던 군인이 물에 빠져 죽으면, 그들 부모의 마음과 국민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그걸 책임지라면 누가 사단장 하겠나'라고 말했다는 것 아닙니까. 여기에 3대(노동·교육·연금) 개혁도 진전이 없습니다. 특히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만든 법을 건건이 무시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의 역할, 권한이 제한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의석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빛날 때가 있었습니다. 과거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다 극복했어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1노(노태우)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체제'에서 야당 총재 3명과 합의해 5공화국 청산 청문회를 했고, 남북 기본합의서를 통과시켰으며,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을 해냈습니다. 의회 법안 통과율도 기록적이었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과 동시에 보수의 핵심이던 JP(김종필)를 국무총리에 임명했습니다. 탕평책을 쓴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에게 계속 회동을 요청했고요. 이게 정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윤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논어》에서 공자가 정치란 병(兵), 식(食), 신(信)이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信)이라고 했고요. 말을 실천해야 믿음이 생깁니다. 국정 수행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대통령이 석유가 날 거라 말해도 국민이 코웃음을 칩니다. 윤 대통령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개헌을 하는 것입니다."
개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욕을 안 먹는 건 '6·29 선언'을 통해 새로운 공화국을 창설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위정자들이 잘못하면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 벌떼같이 일어나서 뒤집었고, 국민이 나서서 헌법을 고쳤어요. 만약 윤 대통령이 직접 본인의 임기를 줄여서라도 대통령 권력을 쪼개는 개헌에 나선다면 7공화국을 만든 주역이 되는 것이고,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금방 살아날 것입니다."
"거야의 독주? 다수결의 원리가 법치"
국회 원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거야의 '독주'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rule of law)입니다. 운영위원회와 법사위원회를 여야가 나눠 갖는 관계는 여야 합의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국회법은 다수당이 (상임위 위원장을) 다 가지려면 다 갖는 것입니다. 법률을 지키는 걸 어느 특정 정당을 위한 독주라 말하는 것은 맞지 않죠. 물론 소수의 의견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다수결의 원리를 무시하는 순간, 만장일치 아니면 아무런 일도 못 하게 됩니다."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국회의장에 우원식 의원이 됐을 때, 전 민주당이 살아있다고 봤습니다.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1인 체제라 하더니, (이 대표 말을) 듣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죠. 다만 이건 추미애 의원이나 우원식 의원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국회의장이 누가 되든 윤석열 대통령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회 권위를 지키는 게 입법부 수장의 업무입니다."
국회의장 후보에 당원 의중을 반영하려는 움직임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당원들이 뽑는 건 당대표지 국회의장인가요. 국회법 위반입니다."
정치의 복원을 위해 국민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 묘비 앞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독재를 하거나, 독선을 부릴 때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만 최고'라 말하거나 상대를 적대시한다면 동물정치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념에 매몰되어 상대를 적대시하는 풍토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인정할 때 나옵니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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