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유지보다 협의이혼이 더 유리한 '이상한 세제'

안창남 소장 2024. 6. 2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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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안창남의 생각
현실과 세제의 간극
협의이혼 시 공동재산 분할
단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아
부부 사이 양도할 경우 과세
이상한 세금 제도가 이혼 장려

여기 협의이혼한 부부가 있다. 재산분할 소송에서 부인 B가 남편 A의 명의로 된 공동재산 중 일부를 되찾아왔다. 이 경우, 협의이혼한 부부는 단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다. 하지만 멀쩡하게 잘 사는 부부는 다르다. 남편이 부인에게 주식을 양도하면 남편은 양도소득세를, 부인은 증여세를 내야 한다. 그러니 세금을 줄이기 위해 위장이혼을 사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현실과 세제의 간극,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관계를 유지하는 쪽보다 협의이혼한 부부가 세금을 내지 않을 경우가 많다.[사진=뉴시스]

재산분할 청구액의 과다 여부를 둘러싼 최태원 SK그룹 회장(A)과 법원 간 공방이 치열하다. 1심과 달리 고등법원에선 A 명의로 보유하고 있는 SK㈜ 주식 42.29%를 재산분할 명목으로 배우자(B)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산분할 청구는 협의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부부인 A와 B가 공동소유한 공유물 중 B가 A 명의로 된 자신의 재산을 되찾아오는 것(공유물 분할)을 의미한다(민법 제839조의2).

A와 B가 재산분할 협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 법원은 분할의 액수와 방법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금액이 1조4000억원이란다. A는 고등법원의 재산분할 범위와 비율 판단의 근거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럼 대법원에서 원심을 유지하는 판결을 하면 세금은 어떻게 될까. 재산분할 청구 확정에 따라 A가 B에게 주식을 넘겨주는 경우, B가 자기 것을 되찾아오는 거래(공유분할의 법칙)에 불과하기 때문에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다(96누14401 판결). 그래서 A는 1조4000억원의 주식을 넘길지라도 양도소득세 부담은 없다.

그러면 B는 어떨까. 증여세를 내야 할까. 헌법재판소는 "이혼 시의 재산분할 제도는 본질적으로 혼인 중 쌍방의 협력으로 형성된 공동재산의 청산이므로… 증여세를 부과할 여지가 없다"며 증여세 과세규정을 위헌으로 결정했다(96헌바14 결정).

따라서 B 역시 증여세 부담 의무가 없다. 물론 B의 재산이 아니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의 과실이겠지만 말이다. [※참고: 그렇다면 1조4000억원을 상속받은 것과 유사하므로 과세논리 상 B의 상속세 납세의무가 주어질 수도 있다.]

A와 B의 이혼을 포함한 대부분의 이혼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한때는 서로 상대방 없이는 못 살아 '한 몸'을 이뤘건만, 이제는 하루도 같이 살 수 없다고 하니 그간에 켜켜이 쌓인 원망과 실망은 가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아팠을 것이다. 이 사건 당사자와 가족의 아픔과는 별도로, 돈이 가치판단의 최우선인 세상의 눈은 이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다만, 이쯤에서 우리는 "협의이혼을 하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걸 악용하는 사례가 있음을 살펴봐야 한다. 서류상으로라도 협의이혼을 부추기는 법기술자 등이 자산가들의 집 문턱이 닳도록 넘나들 게 분명해서다. 이른바 위장이혼 사업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혼인 유지와 세법, 또는 세제의 간극을 깊게 고민해야 한다. 부부간 거래를 특수관계가 없는 일반 사인간 거래와 같은 잣대로 엄밀하게 쳐다볼 것인가 여부다. 부부간 거래는 그 원인과 과정이 복잡하고 세제만으로 풀 수 없는 여러 요인이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부인이 암사슴처럼 귀여워서 남편이 자신의 재산을 주겠다는데, 위장이혼에는 과세를 하지 않으면서도, 굳이 과세를 하는 게 사리에 맞는 걸까. 부부가 '한 몸'이라면 이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왼쪽 주머니로 옮긴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참고: 혼인을 유지 중인 부부의 경우 남편이 부인에게 주식을 넘겨줬다면 남편은 양도소득세를, 부인은 증여세를 부담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세제는 부부간 거래엔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다. 이혼 당사자 간 재산분할의 경우, 과세를 이연하고(재산분할 시점에는 과세하지 않고 받은 재산을 양도할 때 과세), 부부간 재산을 이전할 땐 혼인 중이든 이혼 상태이든 과세당국이 개입하지 않는 세제 등을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배우자 상속분은 비과세다.

큰 호흡을 하고 보면 대부분 선량한 부부간 거래(A가 B에게 증여나 양도 또는 상속)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식이나 제3자에게 넘어온다. 그때 과세하면 안 될까. B가 A로부터 받은 주식에 당장 과세하지 않더라도 B가 C 등에게 양도할 경우양도차익 계산 시, 취득원가를 증여받을 때 시점이 아닌 A가 취득한 가액으로 한다면 국고 수입에도 별 영향이 없다고 본다. 단지 과세시점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 세제 때문에 위장 이혼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굳이 A→B→C 거래 단계마다 과세할 게 아니라, A와 B가 부부이고 그들 사이에 진정한 거래가 있다고 한다면 A→B 단계는 세법이 눈을 감고, [(A→B)→C]의 단계에서 B가 이전에 납부하지 않은 (A→B) 단계의 세금을 사실상 부담하도록 세제를 설계하면 어떨까.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 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혼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제가 혼인을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이혼을 하는 게 유리하다면 이거야말로 이상한 것이다. 세금 때문에 위장이혼을 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장차 혼인하길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일 것이다.

안창남 AnP 세금연구소장 | 더스쿠프
acnanp@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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