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탱한 면과 시원한 감칠맛이 몰아친다
대학 시절 학교 구내식당 구석에서 팔던 튀김우동을 좋아했다. 당시 400원 안팎의 우동엔 덴카스(튀길 때 생기는 자투리 튀김 조각)가 듬뿍 들어있고 단무지 몇 쪽을 국물에 풍덩 넣어주었다. 덴카스 덕분에 더 기름지고 고소하게 우러난 우동 국물은 혈기 왕성한 20대 학생들의 뱃속을 든든하게 해줬다. 가을이면 카운터 옆에서 씻어 놓은 새빨간 홍옥 사과를 단돈 100원에 팔았는데 우동 먹고 후식으로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우동’ 하면 뜨끈한 국물 음식임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그러다 뜨끈함을 넘어 펄펄 끓는 수준의 돌냄비 우동에도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입천장이 까질 정도로 뜨거운 우동 국물에 꽃어묵, 새우 등 고명도 화려했기에 다 먹고 나면 든든한 요리 하나를 완수한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즉석우동, 돌냄비우동을 즐기던 과거에는 수타 짜장면이나 손칼국수에 비해 어딜 가나 비슷한 두께와 식감의 툭툭 끊어지는 우동 면발의 다양성에 대해서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코로나 시대 면(麵) 전문 기업에서 일하면서 시대별 대중 면발의 변화를 체감하게 되었다. 면과 소스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를 하는 곳이다 보니 연구원들의 표현이 흥미로웠다. 실제 시장에서는 쫄깃한 메밀이 아직 더 대중적이지만 공장용 메밀국수는 메밀 전문식당 특성을 쫓다 보니 구수한 풍미와 함량을 높인 또각또각 끊어지는 면발을 우위로 쳤다. 물론 우동 면에 대해서도 시장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과거 뜨거운 국물 안에서 툭툭 끊어져도 그러려니 하며 부드러운 식감을 쫓던 시절을 지나 쫄깃한 식감을 찾는 추세가 분명해졌다. 구내식당 튀김우동과 돌솥우동에 빠져 살다 점점 제대로 된 현지 우동 면발을 찾던 나의 선호 흐름과도 같았다.
밀가루에 함유된 글리아딘·글루테닌이라는 단백질은 물과 만나 활성화되고 글루텐이 형성돼 탄성이 증가된다. 물을 단계적으로 넉넉히 가해 주고 숙성시켜 탄력을 갖게 하는 게 다가수숙성 방법이다. 그렇게 잘 반죽된 우동은 맛있는 정점에서 삶은 뒤 곧바로 급속 냉동시켜 식당으로 유통한다. 시장 눈높이에 맞게 발전시킨 면발에 고도화된 현대의 유통 시스템이 더해지니 요즘은 고속도로 휴게소 우동까지도 탄력의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대량 생산하는 우동 시장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가 제면을 하는 ‘우동 전문점’에 바라는 기대치도 더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바게트 제조처럼 밀가루·물·소금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조합의 우동은 면 장인의 내공을 더욱 심화시키고, 고객들의 평가는 우동 본고장과 비교하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특히 여름은 우동 면발이 시험대에 오르는 계절이다. 냉우동을 먹다 보니 일본인들이 말하는 면발이 이에 씹히는 정도인 ‘하코다에’가 좋고 나쁨까지 세세히 논하게 된다. 히야시우동은 물론 납작면우동, 붓카케우동 등 냉우동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특히 달걀, 유부, 파, 가라아게, 튀김 등 고명이 올라가서 비비듯 적셔먹는 붓카케우동이 시그니처 메뉴인 곳이 많다. 거기에 면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달금하고 짭짤한 감칠맛의 간장양념소스 쯔유의 개성이다. 시원한 여름의 묘미, 붓카케우동이 맛있는 우동 맛집을 추천해본다.
냉우동 맛집
묘오또
우동집에 들어가면 우동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만족스러워 보인다. 여기에 오픈 주방의 흥겨움도 한몫한다. 붓카케우동의 고명은 단출한 편이다. 쫀득한 면발이 치아 사이사이 기분 좋게 씹힌다. 쯔유 넣어 비벼 먹는 달걀프라이 미니 덮밥도 함께 나와 든든하다.
서울 서초구 방배로28길 16/0507-1329-5980/붓가케우동 1만원, 붓가케우동세트 1만5000원
히노야마
얄팍하며 야들야들 탄력의 납작우동은 일일 20개 한정이라 이를 위해 일찍부터 줄을 서는 곳. 붓가케우동의 쯔유는 다른 우동집에 비해 덜 진하며 덜 짜고 덜 달아 부담 없다. 조린 유부, 반숙 달걀, 덴카스 등 고명이 조화롭다. 세트에 나오는 김치 유부초밥은 한국적이면서 정겹다.
서울 양천구 목동서로 349 센트럴프라자 119호/0507-1305-8667/붓가케우동정식 1만6900원, 납작우동한상 1만8000원
고추동제면소
서울 동작구 숭실대 인근의 소박한 우동 맛집. 가는 면발의 수제면 위에 가쓰오부시, 반숙 달걀, 김, 라임 등이 올라가 있다. 쯔유와 섞으면 무척 조화로운 맛이 된다. 부드러운 매운맛의 온우동은 물론 주먹밥도 인기. 즉석떡볶이 메뉴도 흥미롭다. 음식점 직원들도 친절하다.
서울 동작구 상도로 399 삼호아파트 상가 2동 103호/0507-1476-4004/붓가케우동 9000원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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