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맞은 설날…‘코리안 보드게임’에 왁자지껄
극지의 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듯 구워본 사람이 잘 굽는다. 우리 팀의 엘(L), 엠(M), 벡터 그리고 나는 서로 조리의 수고를 맡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모두 그런 일에는 서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무리 잘 구우려 해도 그 아까운 삼겹살들은 새카맣게 타버렸다. 다른 팀들이 그게 뭐냐며 고기를 나누어 주었고 우리는 내내 놀림거리가 됐다. 한국 사람들이 고기를 굽는 수선스러운 과정을 좋아하는 이유는 집게와 가위를 든 채 고기를 자르고 김치를 올리고 상추쌈을 싸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얘기를 술술 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곧 몇몇 연구자들이 기지를 떠나기 때문에 그날의 회식은 더 특별했다. 남극에서 맞는 첫번째 이별이었다.
남극에서의 첫 이별
“같이 있다가 사람 나가면 기분이 조금 이상해.”
1월부터 들어와 있었던 카밀라 언니는 미리 그렇게 알려주었다.
“아, 정말요? 같이 일해오던 연구자들이라 그런가?”
나는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 내게도 그런 아쉬움을 줄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한켠이 좀 텅 빈 것 같아질 거예요, 작가님도.”
언니는 극지 온실 기체 연구를 위해 북극과 알래스카, 세종기지를 오가며 곳곳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겨왔다.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했지만 먼저 나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조용히 듣고 응시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2018년 지금의 연구동이 생기기 전 컨테이너 시절부터 연구 활동을 했던 기지의 산증인이었다.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려야 지켜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고 남녀가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얇은 파티션으로 겨우 공간을 구획하며 지냈던 그 시절은 지금도 박물관이 되어 기지에 남아 있었다.
언니는 다가오는 주일에 괜찮으면 함께 공소예절(정식 성당이 아닌 곳에서 미사 참여를 대신하는 일)을 드리자고 했다. 작년에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아직 열의만 앞설 뿐 사실 나는 제례나 절차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주일에 신자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은 기뻤다. 놀랍게도 이곳 남극에도 성당이 있지만 러시아 정교회에서 만든 곳이었고 거기라도 가려면 일단 바다를 건너야 했다. 언니는 식전 기도를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신자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마지막 촬영까지 잘 마친 원격탐사팀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들 역시 이틀 뒤에 나갈 예정이었다. 비행기가 뜬다면. 고생 많으셨어요, 하고 말하자 책임자인 ‘옆잘님’ 옆에서 묵묵히 수고를 다하던 제이(J)가 복잡 오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긴장하고 집중하는 표정 이외에 비로소 보게 된 제이의 평소 표정이었다. 원래 그렇게 책임감이 많은 성격이냐고 하자 제이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까울 정도로 방황한 시간들도 있었다고.
제이 앞에는 기지에서 가장 어린 이(E)가 앉아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발전기의 제대로 된 가동을 위해 삭발을 감행한 이(E)는 마치 동자승 같은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순간 잊히지 않을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른 나이에 선박 기관사가 되어 항해한 경험까지 가지고 있는 이(E)를, 그의 선량하고 맑은 웃음을 모두 좋아했다.
옆잘님은 내게 이(E)를 취재해 해양소설을 한편 쓰라고 권했다. 그때 내가 떠올린 건 남극에 오기 전 읽었던 19세기 미국의 대표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였다. 포의 유일한 장편인 이 작품에는 남극 탐험을 떠난 두 소년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선상 반란과 폭풍, 난파와 기아 같은 온갖 모험이 펼쳐진다. 하지만 정작 그가 소설 속에서 묘사한 남극의 모습은 실제와는 전혀 맞지 않는데, 그 어긋남과 오류는 ‘소설적 상상력’에 개입되어 있는 시대상을 생각하게 했다. 어느 아프리카 대륙의 섬처럼 남극을 묘사하고 있는 포의 한계와 오류는 그 당시 광풍처럼 일었던 제국주의적 상황에 제어당한, 혹은 매혹당한 결과물처럼 보였다.
나는 이십대 초반의 이(E)가 배 위에서 만났을 다국적 선원들과의 일상이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2월 말에 여기를 떠난 뒤에도 여전히 경험할 남극의 가을과 겨울 그리고 다시 찾아올 봄도. 사람의 몸에도 나이테 같은 것이 있다면 여기에서의 시간은 바깥의 온도와는 상관없이 이(E)의 인생에 굵직한 성장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자기 꿈을 향해 가는 이(E)는 너무 멋진 젊은이야.”
‘옆잘님’은 그윽한 눈으로 이(E)를 대견스러워했고 살다 보면 20대에 한번은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지만 그때만 잘 넘기면 문제없다고 격려했다. 가장 유순한 마음을 가졌지만 그렇기에 가장 상하기도 쉬운 시절, 스스로의 정체성보다는 사회적 시선을 통해 평가되고 정의되는 시기가 20대 아닐까. 20대였을 때 내가 가장 싫어한 말은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였다. 기성세대에 의해 내 삶이 함부로 규정되는 듯해 질색이었다.
뽀얗게 우러난 사골떡국
회식 자리가 파하고 나가는데 포르투갈팀의 요스바니가 “노래방 가니?” 하고 물었다. 카밀라 언니와 같이 출입구로 가다가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아니, 우리는 숙소로 가려고” 하고 말했다. 요스바니는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한국인들에게 노래는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니 기지에도 노래방이 있었다. 세종회관 바로 옆이었다. 꼭 밤이 아니더라도 휴게시간 틈틈이 대원들이 부르는 팝, 댄스, 발라드 노래가 들려오곤 했다. 디셈버와 케이윌, 박효신이 있었고 아이유와 크러쉬, 방탄소년단이 남극에 있었다.
키즈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해 본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거의 모든 한국 아기들이 시키지 않아도 종일 춤추고 그렇게 노래를 한다고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이 민족은 밤낮으로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긴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회식을 하고 나와도 밖은 여전히 밝았다. 남극에서는 밤 10시쯤이 되어야 조금씩 어두워졌다.
“여기서는 오로라는 못 보겠지요?”
“지금 시즌에는 별 보는 것도 어려울 거예요. 장보고기지에서는 오로라 있는 밤이 일상인데….”
장보고기지에서 두번 월동을 한 대기과학 전공의 그 대원은 극지에 대한 많은 지식과 정보, 특히 어마어마한 양의 영상과 사진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이름과 알파고를 합친 ‘원파고’라고 불렀다. 내가 어떤 문제에 약간 의문을 보이면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관련 자료를 보여주었고 백과사전을 읽는 음성지원 프로그램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자기 경험을 나누는 데 망설임이 없고 그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너무 좋았겠다. 오로라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일지 감히 상상도 안 가네요.”
“갈 때 혹시 엘에이(LA) 경유하세요? 야간에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서 오른쪽 창가에 앉으면 오로라를 볼 수 있다던데?”
역시 과학자라서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도 사실 정보를 이용하는구나 감탄하고 있는데 카밀라 언니가 “잠깐” 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 시즌에 그렇다는 거야? 어떤 항로로 가든 다? 위도상 그게 되나?”
언니는 과학자 특유의 근성을 발휘해 가능성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원파고 역시 자기가 들은 정보를 조합해 카밀라 언니와 계속 토론했고 그 과정은 우리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 나는 그냥 오로라를 보고 싶다고 한 것뿐인데….” 문 앞에서 내가 탄식하자 사람들이 웃었다.
한해가 마무리되는 남극의 밤, 여느 때처럼 책을 껴안고 침대로 들어갔다. 기지 도서관에서 빌려온 루쉰 단편전집 ‘납함’이었다. 도서관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양서들이 남극의 오래된 얼음과 동토층처럼 간직되어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난다면 아주 신비로운 아우라를 갖게 될 곳이라는 기대가 들었다.
루쉰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친구와의 대화를 기술한다. 집필 활동을 독려하는 친구에게 “창문도 전혀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된 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수밖에 없다면 그들 중 일부를 소리쳐 깨운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며 냉소하던 그는 “그러나 몇 사람이 깨어 일어난다면, 이 쇠로 된 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걸세” 하는 답을 듣고 마음을 바꾼다. 남극해를 무겁게 통과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읽는 루쉰의 성찰은 얼음처럼 정결하게 느껴졌다.
자정이 지나 남극시간으로 2월10일이 되자 옆방에서는 대원들이 가족들에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는 옆방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새해를 맞는 이 밤에는 달랐다. 모두 창가에 붙어 통화를 하는 듯했다. 혹시 통신신호가 더 잘 잡힐지 모른다는 기대로, 그러면 가족들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으니까. 며칠 전 해표마을에서 좀 어색하게 대화를 마쳤던 일행분도 큰 소리로 아이에게 인사했다. 나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완전히 누그러졌고 휴대전화를 열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2024년, 힘차게 일어나 씻으러 나갔더니 요스바니가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세탁기 돌리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코스를 선택하고 세제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돌아간다고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어제 노래방은 재미있었느냐고 묻자 요스바니는 멋쩍게 웃었다.
“나 사실 며칠 전 벡터가 보여준 영상에서 네 춤을 봤어. 리키 마틴 같던데!”
“리키 마틴?”
요스바니는 파안대소를 하더니 너 재밌는 사람이다, 하고 내게 말했다. 나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춤 실력을 칭찬한 것이었는데. 아침 식사로는 셰프가 정성스럽게 마련해준 떡국을 먹었다. 남극으로 떠날 때 새해에 떡국이나 먹을 수 있는 거냐며 모두들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한국에서처럼 뽀얗게 우러난 사골국물에 좋아하는 김가루를 듬뿍 뿌려 ‘한살’ 든든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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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새해 첫날의 여름
각자 일과를 보내다 설 당일이니까 오후에는 윷놀이를 하기 위해 모였다. 어려서 가족들과 했던 윷놀이는 아직도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독립하면서 윷놀이가 가능한 수만큼의 사람들과 새해를 보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기대를 갖고 세종회관으로 들어서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식당 바닥 전체에 커다란 윷판이 그려져 있었다. 말을 놓으며 하는 윷놀이가 아닌 사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고 했다. 윷놀이의 승패는 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고 특히 말을 최대한 합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도착하는 것이 핵심인데 그러자면 사람이 사람을 업고 이동해야 했다. 기지의 젊은 대원들이야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럴 힘이 있을까? 하지만 이미 룰은 정해져 있었고 우리가 던져야 하는 윷가락은 웬만한 보디 필로(긴 베개)만 했다. 윷놀이를 시작하자마자 개와 걸만 던지던 연구대팀들은 예상한 대로 완패했고 아무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자 월동대원들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한명씩 다른 팀에 합류시켰다.
포르투갈팀의 과학자 ‘구름’은 이 코리안 보드게임에 완전히 몰입했다. 일단 도, 개, 걸, 윷, 모의 발음을 물어 정확히 익히더니 티셔츠가 말려 올라갈 정도로 최선을 다해 윷가락을 던졌다. 상대편 말을 잡을 때는 정말 그를 잡아먹을 듯 쏘아보며 으르렁월월그릉그릉 포효하기도 했다. 그간 윷놀이판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음향효과였다. 한번 움직인 말은 되돌릴 수 없다는 규칙을 몰라 낭패를 보기도 했다. 윷가락이 나자빠지자마자 세 걸음 잽싸게 움직인 그는 우리가 “안 돼, 구름. 안 돼!”라고 절규하자 눈이 휘둥그레져 왜 그러냐고 물었다. “다른 계획이 있었거든!” 하자 아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사과하며 슬퍼했다. 월동대원들은 괴력을 발휘해 무려 두 사람이 앞뒤로 한 사람에게 매달려 한발 한발 윷판을 통과했다. 두 모를 연속해서 해내는 신들린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승리는 가장 건장한 대원들이 모인 ‘헬스보이’팀에 돌아갔다. 상품은 기지에서 매우 높은 교환가치를 지니는 담배와 초콜릿파이 그리고 이탈리아 기지에서 가져온 배지(badge)였다. 우리는 그래도 새해이니 상품을 좀 나눠달라고 읍소했고 다들 초코파이와 비슷한 칠레산 초콜릿파이를 손에 쥐고서야 흩어졌다. 함께 이동하고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머리뿐 아니라 힘을 써서 임무를 완수하는 것, 나중에 생각해보니 남극 일상을 꼭 닮은 윷놀이이기는 했다.
한창 웃고 떠들던 현장에서 나와 나는 혼자 기지를 산책했다. 고 전재규 대원 흉상을 지나면서는 늘 그랬듯 기도했고 솟대와 장승을 지나 해안가까지 내려가보았다. 모처럼 셀카도 찍었다, 새해이니까. 저편에서 펭귄이 날개를 사선 방향으로 내린 채 어디론가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었고 바다의 물색은 약간 어둡다가 금세 민트색으로 환해졌다. 자맥질하는 나머지 펭귄들과 입남극할 때부터 어떤 상징물처럼 맥스웰만 한가운데 떠 있는 빙산. 남쪽으로 좀 더 걷자 스쿠아들이 모여 있는 작은 못이 나왔다. 기지 사람들은 그곳을 ‘스쿠아 목욕탕’이라고 불렀다. 목을 축이고 몸을 적셔 깃털도 손질하며 스쿠아들은 특별한 일이 없어서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해피 뉴 이어!” 들은 것만큼 거칠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다가가면 또렷한 시선으로 나를 경계하는 남극 친구들에게 나는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정말 아름다운 새해 첫날의 여름이라고.
소설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등을 썼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늘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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