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에 무분별한 ‘악플’… 예술로 맞서다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데뷔 초 익명의 악성 댓글 시달려
미술로 심리적 안정… 우울증 극복
‘사과는 그릴 줄 아니’ 조롱 보란 듯
‘사이버 불링’ 주제로 최근 전시회
“온라인 세상 인정해 규제 마련을”
“사이버 폭력 피해 알리기에 내가 가진 영향력을 활용하고 싶다.”
◆익명 기댄 사이버 폭력… 죄의식 없는 변명
권지안도 사이버 폭력 피해자다. 익명성에 기대 숨은 이들의 맹비난과 성희롱성 댓글이 데뷔 초기 그에게 날아들었다. 당시만 해도 포털 댓글 윤리성 지적은 지금보다 드물었고, 인신공격성 비난도 난무했다. 무분별한 악성 댓글 대상이 되면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왔다.
미술은 심리적 안정을 되찾게 했다. 그림 그리며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되짚은 권지안은 “미국에서는 사이버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생존자’라 말한다”고 언급했다. 온라인을 또 하나의 세계로 인정해야 한다고 거듭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연예인을 겨냥한 사이버 폭력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생겨나면서 더 심해지는 분위기다. 100% 가까운 스마트폰 보급률로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SNS는 가짜뉴스 온상이 됐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가짜뉴스나 맹목적인 비난으로 당사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대면한 악플러의 ‘재미 삼아서 그랬다’던 죄의식 없는 태도는 권지안이 할 말을 잃게 했다. 사이버 폭력을 ‘사이버 테러’라고 그가 말하는 이유다. 연예인 등의 사이버 폭력 피해가 대중의 ‘평가 대상’이라는 시선에서 기인한다고도 짚었다. 사람들의 관심으로 돈을 버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는 생각에서 손끝 하나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일이 생긴다는 얘기다. 연예인은 하나의 ‘소비재’가 됐다며 “이름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존엄성을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사이버 폭력에 깔려 있다”고 권지안은 우려했다.
◆폐기된 보호 법안… 누구나 잠재적 피해자
우리 사회에는 ‘자유는 책임과 윤리가 반드시 따른다’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러한 믿음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21대 국회에서의 사이버 폭력 피해 방지 법안 폐기만 봐도 그렇다.
특정 인물 혐오 표현을 불법 정보에 포함하고 사이버 폭력 처벌 규정 마련과 피해자 권리 침해 등을 방지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여럿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휴지 조각이 됐다.
권지안은 “오프라인과 공존하는 사이버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기준과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카를 떠올리면서는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댓글을 달면 안 된다’는 말을 조카에게 한다”고 부연했다. 상대 앞에서 할 수 있는 말만 온라인에서 해야 한다는 당부라고 한다.
권지안 등 작가 6명이 오는 30일까지 아트노이드178에서 공동으로 여는 전시회 이름은 ‘사이버 불링’이다. 사이버 폭력 피해를 예술로 얘기하는 취지에서 이름이 붙었다. 일반인도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권지안은 그림을 시작했을 때 온라인에서 쏟아진 ‘사과는 그릴 줄 아니?’라는 조롱을 끌어와 작품을 만들었다. 알파벳 A∼Z까지 총 26개의 녹아내리는 듯한 사과 부조(浮彫)를 제작해 빨간색과 노란색·초록색 등 저마다 다른 색깔을 입혔다. 작품 이름을 ‘Beyond the APPLE’(비욘드 디 애플)로 정해 온라인에서의 무분별한 비방을 재해석하고 언어 정화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권지안은 “유족이 법안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고 전하며 “사이버 폭력 피해자여서 목소리 내기에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지금처럼 사회 문제를 예술가들이 말한다면 미래 세대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겠냐고 그는 내다봤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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