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있는 그대로’는 위증교사 단골 멘트… 판례 보니
더불어민주당이 20일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재판과 관련한 녹취 파일을 공개한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박 의원이 이 대표의 녹취록을 임의로 편집하고 자막을 조작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얼마든지 고발하라”며 “위증 교사를 하는 모습이 녹취에 명백하게 담겨 있는데도 그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왜곡 운운하고 있는 민주당을 보면 안쓰럽다”고 했다.
이 대표는 위증교사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첫 재판에서 “오히려 (김진성씨가)위증을 할 것 같은 위험한 생각이 들어 ‘기억나는 대로,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 안 본 것을 본 것 처럼 이야기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12번이나 반복적으로 말한 것이 녹취록에 나온다”고 했다.
박 의원이 공개한 녹취 파일에 따르면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되던 2018년 12월 김병량 전 성남시장 수행비서이던 김진성씨에게 전화를 걸어 “주로 내가 타깃이었던 것, 이게 지금 매우 정치적 배경이 있던 사건이었다는 점들을 좀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 “있는 대로 진짜, 세월도 지나버렸고” “시장님 모시고 있던 입장에서 한번 정치적으로 얘기를 해주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등의 발언을 했다.
검찰은 김씨가 “검사 사칭 수사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도 이 대표가 ‘김병량 전 시장과 KBS간에 최철호 PD에 대한 고소는 취하하고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고 거짓 증언을 시켰다며 이 대표를 기소했다.
◇ ‘사실대로 말해달라’ 위증교사에서 단골로 등장
‘사실대로 증언해 달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고 했다’는 주장은 위증교사 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논리로 자주 동원된다. 재판부는 실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따져 유무죄를 결정한다.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했다’는 위증교사범의 변명이 맞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증언을 부탁받은 사람이다. A씨와 B씨는 친구가 가짜 석유를 판매하다 석유사업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되자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시켜서 검찰에서 (유죄 취지로) 거짓말했다고 진술해라” 고 위증을 교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6개월,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증인이 이들로부터 “유리한 쪽으로 진술해 달라고 했다” “당신이 증언하면 (구속기소된 업자가) 형이 줄고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했다’는 말은 거짓말로 판단했다.
여자 청소년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거짓 증언을 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C씨 등도 ‘기억나는 대로 진술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C씨 등이 시켜서 거짓으로 고소했다”는 여자 청소년의 말을 들어 이들의 변명이 거짓이라고 봤다. C씨 등이 ‘가짜 피해자’로 둔갑시켰던 이 여자 청소년에 따르면, 자신이 강제추행을 당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도 C씨 등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해라. ‘그때(수사기관에서)진술했다는 내용이 맞을 겁니다’라고 해라”라고 했다. 광주지법은 2017년 위증을 주도한 C씨에게 징역 10개월, 이를 도운 그의 지인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유지했다.
이처럼 위증교사 사건의 유·무죄 판단에는 실제 증언한 사람의 진술이 중요하다. 거짓말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거나, 기억나지 않은 사항을 주입받았다고 한다면 위증교사 유죄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했다’는 위증교사범의 변명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병원장 D씨는 입원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들에게 가짜 입퇴원확인서를 발급해 보험금을 편취한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D씨는 자기 재판을 위해 환자들에게 ‘실제 치료받은 게 맞다’는 위증을 교사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D씨 또한 ‘사실대로만 말해달라고 했고 위증을 교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2022년 1월 D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환자들이 “병원장이 ‘이런 식으로 진술하면 보험사기가 돼서 보험이 해지될 수 있다’고 말해 위증했다. 병원장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경찰에서처럼 사실대로 말했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위증범 진술의 신빙성이 관건
증언한 사람의 진술이 중요한 만큼, 증언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지면 무죄가 나는 경우도 있다. E씨는 사기죄로 기소됐는데, 그 재판에서 증언한 공사 현장소장에게 ‘공사 관련 서류를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었다’ ‘재하도급을 준 사실이 없다’는 위증을 교사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E씨 역시 ‘사실대로 증언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위증교사를 받았다’는 현장소장의 진술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증언 내용을 볼 때 E씨가 시켜 거짓말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하도급 여부에 대한 증언은 사건 쟁점도 아니고 재판장이 즉석에서 물어 본 내용인 데다 현장소장이 과거 수사기관에서 공사 관련 서류를 넘겨 준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사건에서 ‘위증범’ 김진성씨는 지난 2월 재판에서 “유력 정치인인 이 대표가 직접 수차례 전화해 위증을 요구한 것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허위 증언한 것이 맞느냐”고 하자 “예”라고 했다. 또한 “(이 대표가)이전 재판에서 소위 ‘꼬리 자르기’를 했는데 모멸감과 배신감을 느꼈느냐”는 자신의 변호인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한 법조인은 “이재명 대표 위증교사 사건 또한 김진성씨 진술의 신빙성을 기초로 유·무죄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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