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선 넘네'…'우크라 무기 지원' 카드 꺼낸 정부[통실호외]

박종화 2024. 6. 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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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규탄성명서 무기지원 가능성 시사
"우크라 무기지원, 러 태도 따라 검토" 압박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는 재검토할 예정이다.”(장호진 국가안보실장) 대통령실이 그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동안 한·러 관계를 고려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는 지원하지 않았지만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어선 이상 우리도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대통령실과 정부 판단이다.

19일 평양국제공항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환송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사진=연합뉴스)

‘레드라인’ 훌쩍 넘은 러·북

대통령실은 20일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해 상호 군사·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데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하며 이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러시아를 겨냥해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제재 결의안을 주도한 러시아가 스스로 결의안을 어기고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우리 안보에 위해를 가해 오는 것은 한·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서 양국은 한쪽이 ‘침략’을 받으면 다른 한 쪽이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 등을 제공하기로 명시했다.

조약 전문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 일각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이 추상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왔으나 러·북은 이를 뛰어넘는 유착을 과시했다. 이를 두고 러·북 관계가 군사동맹 수준으로 깊어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고무된 북한이 군사 도발을 감행하거나 러시아 군사기술이 북한에 이전된다면 우리 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는 메시지를 러시아에 보냈던 이유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 관련 정부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마이크 앞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젠 러시아에 배려 없다’

대통령실은 개인·기관 제재, 수출 통제 확대 등 러시아를 겨냥한 여러 맞대응을 발표했으나 이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 등 서방은 한국에 탄약 등 무기 지원을 강하게 요청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무기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한·러 관계를 고려해 우크라이나에 구급차·지뢰제거장비 등 비살상 물품만 지원했다.

대통령실이 이런 원칙을 거둬들인 건 그만큼 러시아를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러시아를 배려해서 우크라이나에 보내지 않은 무기들이 있는데 이제 그런 배려를 하지 않는 것도 생각하겠다는 게 대통령실 기류다. 또한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 기술을 제공한다면 우리도 러시아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돕는다는 의미도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연히 나왔어야 하는 반응이다”며 “러시아 행동에 대해 문제 제기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고 정부가 거기에 대해서 적합한 방안을 찾아보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도 “한국도 2차 레드라인을 설정해서 러·북 동맹에 따른 위협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이 러시아를 움직이고 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자 강력한 수단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이라고 평가했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북러 조약에 항의하며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를 초치했다.(사진=연합뉴스)

어떤 지원 이뤄질진 전략적 모호성…비살상·방어무기 등 거론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어떤 종류의 무기 지원을 검토할 수 있는진 전략적 모호성 차원에서 말을 아끼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1일 “무기지원에는 다양한 방안들이 고려될 수 있으며 구체적인 방안은 최근의 러·북 동향 관련 우리 측이 어제 밝힌 입장에 앞으로 러시아 측이 어떻게 응해 오는지에 따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전날에도 “무기지원은 여러 가지 옵션이 있고 살상이냐 비살상이냐에 따라서 다르게 지원할 수 있는 여러 방법도 있다”며 “러시아가 차차 알게 하는 게 흥미진진하고 (러시아에) 더 압박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우크라이나에 155㎜ 포탄을 지원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엔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방공 체계 등 방어용 무기를 우선 제공한 후 러시아 행동에 따라 지원 확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양욱 위원은 “휴대용 신궁 등 대공 미사일 등 방어적 성격의 살상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며 “러시아가 북한에 추가적인 지원을 한다면 다음에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현무 미사일이나 K-9 자주포 같은 것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푸틴 “러시아, 韓에 고통스런 방식으로 대응”

우크라이나의 한국의 무기 지원이 러·북 유착을 더 강화하고 한·러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란 우려도 있다.푸틴 대통령은 이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러시아는 그러한 조치에 대해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한다고 러시아가 겁먹고 북한과 조약을 취소하진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살상 무기를 공급하는 게 러시아 입장에서 치명적이어서 우크라이나 전쟁 전세를 바꿀 수 있는 건 전혀 아니다”고 했다. 제 교수는 “러시아가 겁먹을 것 같으면 러·북 유착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조치는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레버리지가 아니라 한·러 갈등을 격화시키는 트리거”라고 비판했다.

박종화 (bel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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