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부터 '가명 출산' 가능…119상황일지도 '출생증명' 효력['보호출산' 한달 앞①]
의료기관이 직접 출생 정보를 지자체 통보
부모가 출생신고 하지 않더라도 등록 가능
의료기관 밖 출산 시 119 상황일지도 인정
출산 사실 숨기고 싶으면 '보호 출산' 선택
7일 이상 숙려 기간…입양 전 철회할 수도
[세종=뉴시스] 박영주 기자 = #. 지난해 6월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사체 2구가 발견되는 등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조사 결과 아이의 엄마는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딸과 아들을 병원에서 출산한 뒤 집 또는 병원 근처 골목에서 살해한 후 아기들의 시신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했다. 30대 친모는 지난 19일 진행된 항소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을 계기로 추진된 '출생통보제'(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와 '보호출산제'(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 시행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의 유기·학대를 예방하고 태어난 모든 아이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이 법안들은 지난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22일 정부 등에 따르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다음 달 19일부터 시행된다. 출생통보제는 아동이 태어나면 의료기관이 직접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아동의 기본적인 정보를 관리해 출생신고 누락으로 '유령 아이'가 발생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부모는 법적으로 1개월 이내 출생신고를 해야 하지만, 신고하지 않아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며 과태료도 5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지자체가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의료기관은 진료기록부 등에 출생 정보를 기록하고 출생일로부터 14일 이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하게 된다. 이를 받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자체에 통보하게 된다. 이후 지자체는 출생신고 기간인 1개월이 지나도록 아이의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친부모에게 통보 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로 인해 출생신고 되지 않은 '그림자 아이'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병원에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는 2236명으로 집계됐다. 이어 복지부가 지난해 6~12월 태어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45명의 소재를 파악한 결과 6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정부는 의료기관 밖의 장소에서 출산한 경우 현행법상 출생신고가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 119 구조·구급활동 상황일지를 출생증명서로 인정하기로 했다. 출생신고 시 제출하는 출생증명서 대체 서면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유미숙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이전에는 119 상황일지가 출산 조력자의 증명서 개념이었지만 7월19일부터는 병원 출생증명서와 같은 효력이 생기게 된다"면서 "조산 등으로 병원 밖 출산을 하게 될 경우 119를 부르면 구조일지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10대 청소년과 미혼모, 성폭력 피해자 등 위기 임산부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출산제' 시행도 목전에 뒀다.
경제적·신체적·심리적 이유 등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임산부가 불가피한 경우 자신을 밝히지 않고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해 산모와 아동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이다.
임신과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임산부들은 익명으로 지역상담 기관에 상담을 요청할 수 있다. 정부는 전국 16개 시도에 상담 인력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담사들은 임산부가 직접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각종 사회보장급여 및 지원 사항 등을 먼저 안내하게 된다. 임산부는 한부모가족복지시설 입소, 산후조리 도우미 이용 등 필요한 지원도 모두 연계 받을 수 있다.
상담을 거쳤음에도 임산부가 보호출산을 선택하면 가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 있는 전산관리번호가 생성된다. 임산부는 가명과 관리번호를 사용해 의료기관에서 산전 검진과 출산을 할 수 있다.
아이가 보호출산으로 태어나면 임산부는 최소 7일 동안 아동을 직접 양육하기 위한 숙려기간을 가진 후 지자체에 아동 인도 요청을 할 수 있다. 아동을 인도 받은 지자체장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입양 등 보호 절차를 밟게 된다. 다만 아동이 '입양특례법'상 입양 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보호출산을 철회할 수 있다.
임산부가 아동을 출생한 후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보호출산을 희망하는 경우 출산일로부터 1개월 안에 지역상담 기관에 신청해야 한다. 보호 출산을 선택할 경우 지역상담 기관은 친부모의 인적 사항, 보호출산을 선택하기까지 상담 내용이 포함된 출생증서를 작성하고, 지자체는 여기에 아동의 성명을 추가로 기재해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하게 된다.
보호출산을 통해 태어난 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받아 서류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이때 친모가 동의하면 서류가 공개되지만, 친부모 동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출생증서는 공개하되 인적 사항은 제외된다.
하지만 보호출산제 시행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크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익명출산제 도입은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보호출산제에 앞서 여성의 임신 유지 및 종결에 관한 자기 결정권부터 보장하고 임신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감언론 뉴시스 gogogir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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