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이 민주주의 뿌리”…김일성은 몰랐고 북한 고아들은 증명했다
동유럽으로 보내졌던 북한 전쟁 고아들 삶 캐올려 현대인들에게 질문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어떤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까."
105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해방 직후 평양에서 고향(평안남도 대동) 선배 김일성을 만난 경험을 또렷이 기억한다. 김 명예교수가 25세, 김일성이 33세 때였다. 김 명예교수는 북한 정권을 탄생시키기 직전이었던 김일성에게 '우리나라가 앞으로 무엇을 해서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일성은 친일파 숙청, 모든 국토와 산업시설의 국유화 등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성을 주문 외듯 빠르게 읊었다. 부연 설명은 따로 없었다. 김 명예교수는 김일성이 공부나 고민 없이 공산주의 진영의 방침을 그대로 외워 실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래를 직감한 김 교수는 월남을 감행했다. 이후 북한은 그의 예상대로 최악의 공산주의 독재국가로 전락했다.
북한의 공식 국가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민주주의공화국은 국가의 주권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국민에게 있는 국가여야 한다. 김형석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의 뿌리는 자유와 인간애로 대표되는 휴머니즘인데, 북한 사회엔 그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구를 잃어버렸을까.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수많은 탈북민이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으지만, 이 목소리는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일 뿐이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사회가 북한 동포들을 북한 체제와 동일시하고, 그들의 인간성을 싸늘히 외면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취재와 제작에 16년 소요…흥행 실패 딛고 재개봉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에 관한 공론장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북한'과 '휴머니즘'이란 두 가지 키워드를 새로 들고 나왔다. 전작 《김일성의 아이들》의 재편집본인 감독판을 통해서다. 2020년 6월 개봉한 《김일성의 아이들》은 1950년대에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국가로 보내졌다가 송환된 북한 6·25 전쟁 고아들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약 1만 명으로 추정되는 전쟁 고아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면서 북한 체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했다. 취재와 제작에 장장 16년이 소요됐다.
국내·외 평단에서 쏟아진 찬사에도 불구하고 4년 전 《김일성의 아이들》이 모은 관객 수는 1768명에 그쳤다. 처참한 흥행 실패로 김덕영 감독은 생계를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 감독은 올해 2월 개봉해 관객 117만 명을 끌어모으며 성공한 《건국전쟁》에 힘입어 기사회생했고, 《김일성의 아이들》도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권할 수 있게 됐다. 오는 6월25일 개봉하는 《김일성의 아이들》 감독판은 김 감독이 추가로 발굴한 북한 전쟁 고아의 편지 등을 소개하면서 러닝타임이 5분 정도 늘었다.
6월18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김일성의 아이들》 감독판 시사회장에 참석한 김 감독은 "2020년 개봉 때 누구 하나 제대로 알아주지 않았던 영화를 다시 극장에 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럽다"며 "공산주의의 비정함 속에서 피어났던 사랑과 이별, 기쁨과 아픔을 영화에 진실하게 담았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김일성의 아이들》에서는 북한 전쟁 고아들을 기억하는 동유럽 현지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6·25전쟁 이후 부모를 잃은 북한 전쟁 고아들은 위탁 교육 명목으로 동유럽으로 보내져 집단 수용됐다. 동유럽은 공산권 연대를 과시하려 아이들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북한 전쟁 고아들은 서먹한 것도 잠시, 생면부지의 동유럽인들과 인간애를 나누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현지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운동하고 노래하고 연애했다. 때때로 다투고 화해하기도 했다. 진실한 가르침과 사랑을 전해준 교사들에게는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동유럽 현지 생존자들에게 북한 전쟁 고아들은 지금까지도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사려 깊고 승부욕이 강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남한을 비롯한 전세계 대부분이 규정하는 북한 사람의 투박하고 기괴한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북한 전쟁 고아들을 가르친 루마니아인 교사 제오르제타 미르초유씨는 북한에서 파견한 교원 조정호씨와 4년간 비밀 연애를 한 끝에 결혼했다. 놀랍게도 북한 전쟁 고아들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동유럽 현지 생존자들은 당시를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스크린 너머 백발이 성성한 불가리아의 노인들이 70여 년 전 배운 북한 노래를 정확한 발음으로 재연하자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동유럽에서 북한 전쟁 고아들이 느낀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50년대 말 동유럽의 자유화 바람을 우려한 김일성은 해당 지역에 있는 북한 전쟁 고아들과 교원들에게 송환 명령을 내렸다. 북한 전쟁 고아들은 하루 아침에 형제와 다름없는 친구들, 부모 역할을 대신해 준 교사들과 헤어져야 했다. 북한에 와서도 영문도 모른 채 각지로 분산됐다. 《김일성의 아이들》 감독판에서 처음 공개한 분량에는 한 북한 전쟁 고아가 동유럽인 교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어머니 아버지, (북한에서) 도망치고 싶어요. 도망치려 했지만 국경선을 넘어가니 너무 추워서 돌아왔습니다"라며 암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사실이 포함돼 있다.
오롯이 자신의 방식대로만 북한을 통치하려 한 김일성은 바깥 세상 물을 먹은 전쟁 고아들을 철저히 배척했다. 버림받은 '김일성의 아이들'은 종종 동유럽으로 편지를 보내다가 1962년 서신 교환마저 금지되며 행방이 묘연해 졌다. 역시 김일성의 지시 아래 동유럽으로 파견됐던 교원들과 그 곳에서 북한으로 이주해 온 외국인들도 배척 대상이 되어 탄압 받았다. 미르초유씨는 남편 조씨를 따라 평양에 가서 딸까지 낳았으나, 돌연 조씨가 타 지역으로 추방되면서 루마니아로 되돌아와야 했다. 조씨는 1977년 '신산의 탄광으로 이주한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모순으로 가득한 북한 체제 올바르게 이해되길"
여전히 북한 전쟁 고아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북한인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유럽인을 스크린 너머로 지켜보는 관객들은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히게 된다. 1945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된 지 79년이 흘렀다. 한 사람이 태어나 인생 말년에 이르는 기간이다. 앞서 숱한 위기 혹은 기회를 지났지만, 한반도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일각에선 "이제 변화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통일에 더는 목 맬 필요 없다"는 회의론까지 제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권력 구조가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사이 북한 사람들은 참 많이 변했다. 시장 원리를 체득하고 체제에 불만을 느끼는 이가 점점 늘어나는 중이라고 전해진다. 이 같은 각성에는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내포돼 있다.
북한 혜산예술대학 성악과 교수로 있다가 체제에 환멸을 느껴 2014년 12월 월남한 허영희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못 살아서, 밥 먹고 배불러지고 싶어 탈북한 게 아니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북한 제도에 항변하기 위해 대한민국에 왔다"며 "북한에 있는 사람들을 지금처럼 차갑게 외면하지 말고 부디 그들이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김덕영 감독도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 휴머니즘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는 "북한 전쟁 고아들의 뜨거운 동유럽 체류 스토리가 철저히 묻혔다가 (영화를 통해) 극적으로 빛을 보게 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영화를 매개로 모순된 북한 체제가 올바르게 이해되길, 또 남·북한을 막론하고 삶에 지치거나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하늘이 돕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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