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늦깎이 시인 '방직공장 소녀' 김형순 작가 "친구들 중학교에 다닐 때 공장 다니며 서러웠죠"(1편)
한때는 부끄러운 기억…이제는 추억의 한 페이지
"월급 타서 엄마에게 미소 안겨 준 것이 큰 보람"
자작시 '뽕뽕다리'로 2022년 박길무문학상 수상
[남·별·이]늦깎이 시인 '방직공장 소녀' 김형순 작가 "친구들 중학교에 다닐 때 공장 다니며 서러웠죠"(1편)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공중에 매달린 실타래 감는 소리
끊어지기 전에 교체하며 이어 주는 손
번개 손처럼 왔다 갔다
고된 시간 잊은 채
일상 퇴근길은 삼삼오오 지나갔다.
- 김형순 '뽕뽕다리' 中
이 시는 김형순 작가가 1970년대 10대 소녀 시절 광주 시내 한 방직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입니다.
그 시절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김 씨는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현재 방송통신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올해 국문학과 4학년인 김 작가는 학회장을 맡는 등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국문학과에 지원한 이유는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어온 문학공부를 제대로 해보기 위해서입니다.
6남매 중 넷째인 김 작가는 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 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신 집 부근에 있는 방직공장에 다녀야 했습니다.
당시 양3동 달동네인 발산마을에 살았는데, 방직공장이 광주천 너머에 있어 뽕뽕다리를 건너다녔습니다.
◇ 어머니의 고된 삶 덜어 주려 공장 다녀
방직공장에서 하는 일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여러 대의 방적기 앞에서 실이 끊어지면 재빨리 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공장 내부는 높은 습도와 수 많은 기계들이 작동하며 일으키는 먼지로 인해 숨이 막힐 정도로 열악한 작업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운동화를 벗으면 물이 흥건히 배어 있었고 발가락은 무좀이 가시지 않고 괴롭혔습니다.
"그때는 점심시간이면 동료들과 잔디밭에서 산타루치아 노래 배우고, 일하면서도 소나무야 노래를 즐겨 불렀어요. 고단하고 지루한 근무시간에 능률을 올리려고 그랬지요. 노래 알려준 친구가 그립네요"라고 추억했습니다.
◇ 산업체부설 야간과정 통해 중학교 학력 이수
이후 방직공장을 나와 어머니의 권유로 미용 기술을 배워 결혼 전까지 미용사로 일했습니다.
"어머니가 공부를 못 시키니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미용 기술을 배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을 따라 서울로 이사해 딸 둘을 키우며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서울 보훈병원에서 일하면서 마흔 살이 넘어서야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어 딸들이 모두 출가하자 10여 년 전 다시 광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늘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김 작가는 2년제 동강대학교 보육복지과에 진학해 졸업했습니다.
◇ 50년 만에 추억 어린 발산마을 돌아봐
오히려 이제는 대학까지 나왔으니 홀가분 마음으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작가는 최근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50년 만에 소녀 시절 추억이 어린 발산마을을 돌아보았습니다.
그 사이 소방도로가 뚫리고 아파트가 들어서 많이 변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뽕뽕다리가 놓였던 자리에는 새로운 현대식 인도교가 다시 들어섰지만, 김 작가의 기억 속에는 방직공장을 오가던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다리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흔들거리는 쇳소리, 찬찬한 발소리가 들리고 다리 아래를 내려다 보며 주저앉아 웃고 울던 사람도 스쳐갑니다. 신발이 다리 아래로 빠져서 내려가서 봤는데 이미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동네오빠들이 해질 무렵이면 퇴근하는 방직공장 아가씨들을 보며 놀리곤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라고 반추했습니다.
※ 이 기사는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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