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 박민서 신부 "절망하지 마세요"[이수지의 종교in]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장애는 하느님 선물입니다. 장애에는 생각하지 못한 놀랄 만한 보물이 많이 있어요."
박민서 신부는 '아시아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로 불린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삶이 놀랍게도 많이 변할 것입니다."
2살 때 열병을 앓은 후 청력을 잃었지만 '아시아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로 박사가 되기까지 "장애는 예상치 못했던 삶으로 이끌었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전했다.
국립서울농학교 고등부 학생 때 청각장애인 미술 교사가 사제의 길로 안내했다. "선생님은 가톨릭교회를 소개하고 가톨릭 사제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설명해 주며 청각장애인 사제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한국에는 개신교 청각장애인 목사는 많은데 천주교 청각장애인 사제는 한 명도 없었거든요"
농학교 졸업 후 199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서 수업받을 때 수어 통역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어요"
그는 "전문대에서 수업을 받았을 때 강의를 들을 수 없어 같이 공부했던 학생들 노트를 베껴 쓰며 공부해야 했다"고 한국에서의 학업 고충을 털어놓았다.
박 신부는 미국 워싱턴시 갈로뎃대학교 어학원에서 영어와 미국수어를 배우고 학사 학위를 받았다. 갈로뎃대학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청각장애인을 위한 대학이다.
수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모든 교수가 미국수어로 강의했고 청인(일반인) 교수들도 미국수어를 잘했기 때문이다.
미국장애인법에 따르면 청각장애 학생도 일반대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 수어통역사와 속기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박 신부도 뉴욕 세인트존스대 대학원 공부 4년간 수어통역사 2명과 속기사의 도움을 받아 석사과정을 마쳤다.
박 신부는 1999년 뉴욕 성요셉 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서울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마쳤고 마침내 2007년 사제품을 받았다.
박 신부는 "한국에서 신학수업을 받았을 때 수어통역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며 "신학대에 있는 수어동아리에서 한국수어를 배웠던 신학생들이 자청해 수어통역을 해줬다"고 당시 신학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시아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란 타이틀을 얻게 된 박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각장애인사목 전담사제, 천주교 서울대교구 에파타 준본당 주임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에파타 본당 승격과 에파타본당 주임신부로 일했다.
사실 박 신부는 '아시아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라는 타이틀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 청각장애인들에게 사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고 있어" 박 신부는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제가 사제가 된 후 아시아 가톨릭 청각장애인들에게 큰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앞으로 아시아 청각장애인 사제가 늘어나리라 기대됩니다."
현재 아시아에 청각장애인 사제는 박 신부를 포함해 모두 3명이다. 아시아 가톨릭교회에서 지난 2015년 11월 싱가포르 청각장애인에게 사제품을 줬다. 지난 5월에는 인도 청각장애인도 사제품을 받았다.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박 신부는 2021년 다시 미국으로 가 워싱턴대교구 청각장애인사목 담당사제를 맡았다.
그전까지 워싱턴대교구에 청각장애인 성당이 있는데 담당사제가 없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한국수어를 하는 사제 10여명 중 영어 수어도 하는 박 신부가 그 성당으로 가게 됐다.
그해 박 신부가 집전한 미국수어 미사는 현지에서 화제였다. 워싱턴대교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 박 신부의 미사에 평소 10배에 달하는 800여 명이 접속했다. 해당 동영상에는 '감동했다'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제가 한국수어와 미국수어만 알지만 다른 수어를 아는 청각장애인들과도 아픔과 경험을 공감하며 손짓과 몸짓으로 웃으며 대화해요. 많은 외국 청각장애인도 제 강의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니 신비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워싱턴대교구는 박 신부의 사목을 통해 청각장애인 사목에 대한 중요성을 느껴 일반 사제를 청각장애인 사목을 위해 보냈다. 박 신부는 그 신부에게 청각장애인 사목을 가르쳤다.
"그분은 미국수어도 배워 청각장애인을 위해 사목을 할 수 있어요.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 제 도움이 필요한 청각장애인들 곁에 있고 싶습니다."
박 신부는 같은 시기 학업에 또 도전했다. 석사 논문 지도 교수의 권유로 시카고 가톨릭연합신학대학원 실천신학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논문을 쓰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지 고민 많이 했어요. '내가 사제가 됐는데 왜 박사 공부가 필요하냐?'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죠. 지도 교수님은 제가 (박사과정을) 포기하면 가톨릭 청각장애인교회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는 청각장애인은 없을 거라며 저를 끝까지 응원했어요."
지난달 '에파타!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란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가 된 박 신부는 꿈에 도전하는 모든 장애인을 힘차게 응원하고 있다.
"장애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세요. 장애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애인이지만 희망과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렵고 힘들어도 원하는 모든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어요.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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