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7000원에 새우 무제한 주다 망한 식당...몰락의 이유, 또 있었다
<84>미국 레스토랑 레드 랍스터 몰락의 진실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미국 최대 해산물 외식업체 '레드 랍스터'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약 4주 전 언론 보도로 알려졌는데, 원인이 '새우 무제한 제공 메뉴'라고 해서 기사로 크게 다뤄졌다. 한국에 진출한 적 없는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인데도 국내 언론에 등장했다. 기사는 잠깐 웃음거리가 됐다.
한국은 '무한 리필' 고깃집이 대세였던 시절을 거쳤다. 새우보다 더 비쌀 수도 있는 고기를 제한 없이 먹는 식문화에 익숙하다. 한국인들은 무한리필 고깃집이 망하는 걸 보며 '무한제공'을 비웃지는 않았다. 되레 그런 음식점이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말하자면 무한제공이라면 미국보다 우리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음식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레드 랍스터가 무한제공 메뉴를 제공한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50여 년의 영업 기간 동안 이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무한제공 메뉴를 꺼내 휘두르곤 했다. 이번 행사도 만성 적자 속에 손님을 끌어모으고자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는데 곧 파산 소식이 뒤따르는 통에 유일한 원인처럼 낙인찍히고 말았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대체로 그렇듯 레드 랍스터의 몰락은 복잡한 사업적 결정 및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이었다.
이익에만 관심 있는 사모펀드로의 매각
레드 랍스터는 1968년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에서 문을 열었다. 윌리엄 다든(1918~1994)과 찰리 우즈비(1931~2022)가 내륙 지역에서 해산물 레스토랑의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차린 레스토랑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 내륙에서는 해산물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레드 랍스터는 개업과 동시에 호황을 누려 매장을 곧 네 곳으로 늘렸다. 그리고 2년 만인 1970년 다국적 식품 기업 제너럴 밀스에 매각되었다.
소유권은 넘겼지만 다든은 첵스 등 시리얼이 대표 제품인 제네럴 밀스의 임원이 돼 계속 경영에 관여했다. 제네럴 밀스는 레드 랍스터의 분위기를 요즘 같은 캐주얼·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조정하는 한편 재정을 지원해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그 결과 15년 만인 1985년 매장을 400곳으로 크게 늘렸다.
레드 랍스터의 성공에 힘입어 제네럴 밀스는 다양한 콘셉트의 레스토랑 프랜차이즈를 시장에 선보였다. 그 가운데 캐주얼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올리브 가든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레드 랍스터는 올리브 가든과 더불어 제네럴 밀스의 레스토랑 사업을 견인하는 쌍두마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외식 사업이 잘된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식품 기업인 제네럴 밀스는 덩치가 빠르게 불어나는 레스토랑 사업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다든이 세상을 떠나고 1년 뒤인 1995년 제네럴 밀스는 레드 랍스터와 올리브 가든을 비롯한 레스토랑 브랜드들을 묶어 다든 레스토랑이라는 사명으로 분사시켰다. 이후 꾸준히 브랜드 가치를 유지해 온 레드 랍스터는 20년 만에 큰 변화를 겪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영업이 신통치 않자 투자자들의 압박을 받아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2014년 레드 랍스터는 21억 달러(약 2조9,000억 원)에 사모펀드인 골든게이트캐피털의 손으로 넘어갔다.
태국 타이 유니언에 지분 49% 매각
사모펀드로의 매각이 레드 랍스터 몰락의 진정한 첫 번째 원인이었다. 골든게이트캐피털은 레스토랑 영업의 본질, 즉 음식을 잘 팔아 이문을 남기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모든 것을 수치로만 보고 이익을 남길 전략을 짜서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고 다시 사업체를 매각해 버렸다. 이런 일련의 결정 가운데 가장 크고도 치명적인 것이 부동산 매각이었다. 레드 랍스터 소유였던 600군데 매장과 부지의 매각이 결정됐다. '세일 앤 리스백(매각 후 재임대)'이라 알려졌는데, 용어 그대로 매장과 부지를 매각한 뒤 그대로 임차해 쓰는 사업적 결정이었다. 단기간의 자산 유동화와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쓰는 전략으로,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종종 채택해 기사에 등장하곤 한다.
자산 유동화와 재무 건전성이라니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매각 후 재임대 전략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이후 사업 전개에서 임차료가 추가 고정 비용으로 계속 발생한다는 점이다. '음식 잘하면서도 싼 집은 알고 보니 건물주가 하는 집'이라는 말이 있듯 매장 임차료는 음식점 운영자에게 큰 고정 비용으로 작용한다. 레드 랍스터를 프랜차이즈로 운영하는 사업주는 추가 부담을 떠안게 됐으니 이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6년 동안 빼먹을 만큼 빼먹은 뒤 골든게이트캐피털은 레드 랍스터 브랜드를 태국의 타이 유니언을 비롯한 투자자들에게 매각했다. 미국에서 유명한 통조림 참치 브랜드인 치킨 오브 더 씨를 소유한 해산물 가공 업체이자 레드 랍스터의 거래처였던 타이 유니언은 2019년 5억7,500만 달러(약 7,940억 원)에 지분의 49%를 사들였다. 이게 바로 레드 랍스터 몰락의 두 번째 원인이었다.
지난해 6월 레드 랍스터는 문제의 '20달러(약 2만7,600원) 무제한 새우' 행사를 실시했다. 앞서 언급했듯 지난 20년 동안 그들은 기간 한정으로 무제한 메뉴 행사를 종종 진행했다. 시작은 2003년의 대게 다리 무제한 제공 행사였는데, 손해를 봐서 최고경영자(CEO)가 해고됐다. 하지만 손님을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했다. 그래서 자연산이라 수급이 어려운 대게 대신 양식하는 새우 무제한 메뉴를 바꿨고, 고정 메뉴로 채택했다.
바뀐 세상은 무제한 새우 제공 행사에 치명타를 날렸다. 다들 적당히 배가 부를 때까지만 즐기고 가면 괜찮았을 텐데 음식을 명성의 도구로 삼는 이들이 분위기를 망쳤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지도를 먹고사는 소위 크리에이터들 말이다. 그들은 배도 불리고 관심도 그러모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로 메뉴를 악용했다. 레드 랍스터에서 새우를 최대한 많이 먹어 치우는 '챌린지'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한 유튜버는 무려 186마리를 먹었다.
10시간 동안 음식점에 머물면서 새우를 200마리 먹어 치운 유튜버마저 나왔다.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레드 랍스터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메뉴 가격을 25달러(약 3만 4,500원)로 올렸지만 이미 타격을 받을 만큼 받은 상황이었다. 레드 랍스터는 무제한 새우로 해당 사분기에 1,100만 달러(약 152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소유주인 타이 유니언의 책임도 컸다. 브랜드를 소유하게 된 이후 남는 새우를 처리하고자 납품처를 레드 랍스터로 한정시키고 새우 무제한 행사를 진행시켰다. 코로나19 팬데믹 타격에서 제대로 회복을 못 하고 있었던 터에 스스로 결정타를 날려 버린 셈이었다. 상황을 타개하고자 2021년과 2022년 연속으로 CEO 등 주요 경영진을 교체했지만 모두 퇴사했다.
올해 3월 조너선 타이버스가 새 CEO로 취임했다. 그는 레스토랑 브랜드의 구조조정 전문으로 경력을 쌓았으니, 향후 행보는 상당 부분 예상할 수 있었다. 인수자를 물색한다고 했지만 나타나지 않자 결국 레드 랍스터는 5월 14일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야 말았다. 하루 전에 사전 예고 없이 28개 주에서 100곳의 프랜차이즈 지점을 폐업시킨 뒤였다.
오래된 과거의 일만 역사인 것은 아니다.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쓰이고 있다. 이렇게 세 가지 주된 요인이 설립 56년 만에 레드 랍스터를 주저앉힌 가운데, 역사는 아직도 쓰이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공동 소유주인 뉴욕 월스트리트 투자자 웨슬리 에덴스가 자신이 경영하는 포레스트 인베스트먼트 그룹을 통해 레드 랍스터를 매입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매각이 성사돼도 프랜차이즈 매장 수가 상당 부분 줄어든 만큼 '미국 대표 해산물 패밀리 레스토랑'으로서의 입지는 잃게 될 것이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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