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인도 경제가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일자리[딥다이브]
연 8%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평균 28.6세의 젊은 인구. 여기에 탈중국이란 지정학적 기회까지. 인도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 관심이 뜨겁습니다. 급기야 인도증시 시가총액이 지난 6개월 동안 약 1조 달러 늘어나면서, 지난주 사상 처음 5조 달러를 돌파했죠(세계 5위, 미국·중국·일본·홍콩 다음).
하지만 잘 나가는 주식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인도 경제에 대해선 경고음이 이어집니다. 빛나는 인도 경제에 결정적으로 부족한 게 있어서인데요. 바로 일자리이죠. 오늘은 인도 경제 성장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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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공무원 시험이 난리인 이유
인도의 공무원 선발 시험인 UPSC(연합공공서비스위원회) 시험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 불립니다. 매년 100만명 넘게 지원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1000명 이내. 최종합격률이 0.1%도 되지 않죠. 워낙 전 국민의 관심이 뜨거운 시험이라 합격자 발표 날 인도 모디 총리가 SNS에 불합격자 격려 발언을 올릴 정도입니다(“좌절은 힘들지만, 인도엔 여러분 재능이 빛날 기회가 풍부합니다”).
이 도박에 가까운 확률을 뚫기 위해 인도 전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수재들이 몰려듭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7~8년씩 시험 준비만 하는 공시족이 넘쳐나죠. 2년 전 뉴델리의 공무원 시험 학원가에 입성한 공대 출신 라훌 싱(26세)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공무원 직업을 얻으면 내 인생뿐 아니라, 가족 인생 전체가 순조로울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공부를 많이 한 대졸자들은 월급 150달러짜리 소규모 조립공장 일자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또래들처럼 시골에서 가축을 돌보거나 인력거 운전이나 아이스크림 노점상으로 나설 리도 없죠. 그래서 남은 선택이 공무원입니다. 기본 월급은 5만6100루피(93만원)로 아주 높진 않지만, 복지혜택 좋고 직업 안정성도 최고이니까요. 게다가 사회적 엘리트로 인정도 받고요. ‘인구 잠재력의 막대한 낭비’(뉴욕타임스 기사 인용)라는 말이 나오지만, 청년들에겐 그게 그나마 열려있는 문입니다.
연 8% 경제성장 스토리의 큰 약점
인도는 전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지난해엔 GDP 성장률이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8.2%를 기록해 경제학자들을 놀라게 했고요. 올해도 연 7% 성장을 기대합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앞다퉈 인도 증시로 몰리는 이유이죠. MSCI 인도 지수의 PER(주가수익비율)은 약 23배. 세계에서 가장 고평가된 주식시장입니다(참고로 중국은 10배). 거시경제도, 주식시장도 그 어느 나라보다 밝게 빛나는데요. 이런 인도를 가리켜 ‘세계 경제의 빛나는 별’이라고도 부르죠.
그래서 인도의 높은 청년 실업률을 보면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그 성장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모디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메이크 인 인디아’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제조업 유치를 위해 도로·공항·철도 같은 기반시설에 엄청나게 투자했고요(10년 동안 국도 길이가 60% 증가). 통신망 확충 덕분에 이제 노점상도 QR코드로 결제할 정도로 스마트폰 이용을 보편화했습니다. 2020년엔 ‘생산연계 인센티브’라는 보조금 제도를 도입해 휴대전화와 반도체 산업을 밀어주고 있죠. 덕분에 애플과 마이크론 공장도 유치했고요.
하지만 생각만큼 국내외 기업의 제조업 투자가 팍팍 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들춰보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도 해치워야 할 걸림돌이 수도 없이 널려있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대표적인 대못 규제인 토지수용법이 그 예이죠. 인도에선 너무 까다로운 토지수용법 때문에 땅을 사서 공장 하나 짓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요. 이거 모디 총리가 10년 전부터 고치려고 했는데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땅을 헐값에 뺏길까 걱정한 농민들의 대규모 반대에 부딪히자 정부가 두손 든 거죠.
또 사법 시스템은 심각하게 취약한데요. 소송이 한번 시작되면 최종 판결까지 수십년 걸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20년은 보통이고, 최대 72년 걸린 사건도 있다고 하죠. 계류 중인 사건은 넘쳐나는데(5000만 건 이상) 판사 수는 너무 적고(인구 100만명당 2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 절차의 디지털화도 되지 않아서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사법 리스크도 엄청난 겁니다.
그래도 인도는 워낙 인구가 많죠. 만약 전반적으로 소득이 늘어나고 중산층이 커진다면 그 소비시장을 노리고 진출하려는 기업이 점차 늘어날 수 있을 텐데요. 바로 그 점이 인도 성장 스토리의 약점입니다. 놀랍게도 인도의 근로자 실질임금이 지난 10년 동안 오히려 감소한 거죠(ILO에 따르면 2022년 상용 급여 소득자 실질임금이 10년 전보다 14% 감소). 직장인조차 인플레이션 타격으로 점점 지갑이 얇아지고 있는 건데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빛나는 경제의 수혜는 결국 소수의 부자만 누리고 있는 겁니다.
경제발전 공식과 인도의 길
당연히 그게 되겠냐, 그런 전례가 없다는 회의론이 주류입니다. 제조업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는 경고가 점점 커지죠. 이런 식입니다.
“앞으로 30년 정도 지속될 인구 보너스 기간 동안 공업화를 실현할 수 없다면 모디 총리가 내세우는 선진국은커녕 중국 수준의 상위 중소득국이 되기도 어려워집니다. (…) 인도의 선진국화를 위해서는 경공업에 힘을 쏟아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 칼럼)
“총선 결과는 인도국민당에게 굴욕을 안겨주었습니다(단독 과반 의석 확보 실패). 그들이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낸다면 인도의 성장 스토리는 계속되고 심지어 개선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인시아드대학 푸샨 더트 교수)
그런데 이와 다른 참신한 의견도 있어서 소개합니다. ‘제조업 버스는 이미 놓쳤으니, 서비스업 열차에 올라타자’는 주장인데요. 전 인도중앙은행 총재이자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책과 인터뷰, 칼럼을 통해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는 베트남, 중국과 경쟁할 낮은 곳(제조업)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없습니다. 인도가 집중할 곳은 서비스업입니다.” 영어를 쓰는 인력이 풍부하고, 중국처럼 권위주의 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사회라는 인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는 서비스업이라고 보는 겁니다. 따라서 휴대전화 조립공장에 줄 정부 보조금을 차라리 교육에 투자하라. 이런 결론이죠.
물론 가난했던 나라가 그런 식으로 성공한 사례를 한번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판단은 어려운데요. AI와 로봇의 시대엔 경제발전 공식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By.딥다이브
흔히 인도를 20년 전 중국과 비슷하다고 얘기하죠. 그만큼 고성장의 초입에 있다는 기대가 큰데요. 하지만 막연하게 ‘중국이 그랬으니까, 인도도 그럴 거야’라고 보기엔 무엇보다 정치 체제 차이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인도의 미친 공무원 시험 열풍은 청년 실업난의 심각성을 드러내줍니다. 인도에서 25세 미만 대졸자 실업률은 42.3%, 25-29세도 22.8%에 달합니다. 생산가능인구는 점점 늘어나는데 괜찮은 일자리가 모자랍니다.
-제조업 성장이 부진한 게 그 원인입니다. 정부가 인프라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보조금도 뿌리지만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해외기업이 공장 짓는 걸 가로막는 규제와 관료주의가 한둘이 아닙니다.
-‘경공업-중공업-서비스업’이란 발전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인도 경제는 도약할 수 있을까요. 노동집약적 제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이미 제조업 버스는 떠났다는 소수의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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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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