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외환시장 개방… 원-달러 환율은 방어될 수 있을까

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2024. 6.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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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까지 연장 개장으로 달러 수급 개선 기대
WGBI 편입 성공 시 환율 상승 막을 신규 달러 수급 개선

(시사저널=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올 하반기부터 국내 원-달러 외환시장 거래시간이 기존 오전 9시~오후 3시30분에서 오전 9시~새벽 2시로 연장되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참여도 확대된다. 그동안 해외 투자자들은 외환시장 마감 이후에도 원-달러 거래가 가능하도록 런던 등에 역외 외환시장 개설을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환율 주권을 내세워 외환 거래를 엄격히 통제해 왔다.

이번 조치는 사실상 외국인들이 그동안 요구해온 외환시장 개방에 가깝다. 정부가 헤지펀드의 환투기 공격 노출 우려에도 전격적으로 태도를 바꾼 배경에, 오는 9월 WGBI(세계국채지수) 편입과 향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성공시킴으로써 달러 수급을 개선해 원-달러 환율을 낮추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는 7월부터 국내 원-달러 외환시장 운영시간이 새벽 2시까지 연장된다. 지금까지는 외환시장이 오전 9시 개장해 오후 3시30분에 폐장했다. 운영시간이 10시간30분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다만 달러화가 아닌 유로화·엔화 등 다른 외화 거래시간은 현행대로 유지된다. 추후 달러화를 포함해 모든 외환 거래가 24시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폐장시간이 새벽 2시인 이유는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영국 런던 금융시장과 시간대를 맞추기 위함이다. 주요 글로벌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달러를 거래하는 시간에 원화도 실시간으로 거래하도록 한 것이다.

외화 거래시간 연장으로 해외 거주 외국 투자자나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의 업무시간에 한국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국내 금융회사나 주로 거래하는 외국 금융기관(RFI)을 통해 달러화를 원화로 실시간 환전할 수 있다. 외국환은행과 증권사 등 국내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결제 업무를 위해 야간 데스크를 설치할 계획이다.

국내 투자자들 역시 혜택을 받는다. 그동안 국내 투자자들은 야간에 환전할 경우 실시간 환율이 아닌 임시환율로 거래해야 했다. 이는 시장환율보다 5%가량 높고 이튿날 외환시장 개장 이후 차액이 정산되는 구조였다.

ⓒPixabay

달러 수급 확대가 절실한 이유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로 거래량이 적은 야간에 헤지펀드 등 소수 세력의 공격으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모니터링을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투기적 거래 성향이 강한 헤지펀드나 최근에 국내외 금융 당국으로부터 지적받은 이력이 있는 외국계 금융기관 등에 대해서는 외환시장 참여를 제한할 예정이다.

이번 외화 거래시간 연장의 배경으로는 달러 수급 개선이 우선 꼽히고 있다. 미국 연준은 2022년부터 금리를 가파르게 올렸다. 현재 연 5.25∼5.50%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2023년 1월 3.25%에서 3.5%로 0.25%포인트 인상한 이후 금리를 동결한 상태다. 한미 기준금리는 2022년 7월 역전된 이후 2년간 유지되고 있다. 기준금리 역전이 장기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저점 역시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은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국내 경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이 2022년 10월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집값이 30% 하락할 경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커지면서 국가 전체에 유동성 위기가 닥칠 위험이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주택 가격이 고점 대비 30%까지 하락하는 건 별문제가 없지만, 그보다 더 떨어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내부 검토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불가피하게 금리를 올리게 될 경우 가장 걱정되는 것은 부동산 PF다. 금융기관과 연결돼 있어 금융 안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국내 부동산 급락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속내를 밝힌 것이다.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2022년 말 세법을 개정했다. 개정세법에 따라 2023년부터 해외 자회사 배당금에 대해 익금불산입을 확대 적용했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이 지분 50% 이상을 가진 해외 자회사에서 배당금을 받아 국내로 달러를 들여올 경우 세금을 내지 않게 됐다.

개정세법 시행으로 국내 기업들은 해외 자회사에 있는 달러를 국내로 대거 들여왔다. 삼성전자는 2022년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이 3조5514억원가량이었지만 2023년에는 무려 29조4978억원에 달했다. 현대차 역시 같은 기간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이 8559억원에서 1조5438억원으로 폭증했다. LG전자 역시 마찬가지로 배당금이 7143억원에서 1조7883억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대규모 배당을 이미 실시했기에 국내 기업들의 배당에 따른 달러 수급 개선은 올해는 한계를 보일 전망이다. 정부로서는 새로운 달러 수급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WGBI과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포석?

이번 외환시장 개방은 오는 9월 WGBI 편입을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WGBI는 러셀그룹이 관리하는 국채 관련 채권지표다. 미국, 일본, 영국 등 23개 주요국 국채를 아우르며 이를 추종하는 자금만 2조5000억 달러(약 3300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대 국가 중 WGBI에 편입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인도뿐이다.

러셀그룹은 외국인 투자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를 평가해 매년 3월과 9월 워치리스트(관찰대상국 명단)를 발표한다. 일단 리스트에 올라가면 실제 제도 운용 현황 등을 검토해 최종 편입을 결정한다.

한국은 2022년 WGBI 지수 편입 전 단계인 워치리스트에 올랐지만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당시 WGBI 편입에는 실패했다. WGBI에 최종 편입되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 접근성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국내 외환시장의 폐쇄성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WGBI 편입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오는 9월 WGBI에 편입이 확정되면 국채를 매입하는 외국인 수요가 급증하면서 달러 수급이 개선될 수 있다. 금융연구원은 WGBI에 편입되면 50조~60조원에 달하는 외국인 자금이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시장 개방은 향후 추진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MSCI는 각국 증시를 선진국(DM), 신흥국(EM), 프런티어(FM) 등으로 구분하는데 한국은 외환시장 접근성 부족을 이유로 신흥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정확하게 드러난 수치는 없지만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MSCI 선진국 지수 추종 자금은 약 3조5000억 달러로 신흥국 지수 추종 자금(약 1조8000억 달러)의 두 배에 달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한국이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된다면 국내 증시에 많게는 360억 달러(약 50조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외환시장 개방으로 WGBI와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된다면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환율 고공행진에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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