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학살당하고 남편에게 맞은 날에도 썼다...문학으로 기록한 팔레스타인·아프간의 비극

전혼잎 2024. 6. 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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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작가 가자에서 쓴 ‘집단학살 일기’
아프간 여성 작가 소설집 ‘나의 펜은 새의 날개’
절망 속에서도 희망 이으려는 이야기의 힘
1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 발라의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희생된 사망자를 팔레스타인인들이 애도하고 있다.. 데이르 알 발라=AP 연합뉴스

“내가 죽으면, / 너는 살아서 / 내 이야기를 전해 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이었던 리파아트 알라리르가 지난해 11월에 쓴 시 ‘내가 죽어야 한다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3,000만 회 이상 읽힌 이 시는 같은 해 12월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가족과 함께 살해당한 그의 유언장이기도 하다.

“…내가 죽어도 / 희망이 되게 해 줘 / 이야기가 되게 해 줘”라는 시인의 바람을 잇는 팔레스타인과 아프가니스탄의 문학이 국경을 넘어 도착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 한가운데 있었던 팔레스타인 작가 아테프 아부 사이프의 산문집 ‘집단학살 일기: 가자에서 보낸 85일’과 아프가니스탄 여성 작가 15명이 쓴 소설집 ‘나의 펜은 새의 날개’다. 문학은 중동에서의 침통한 비극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3만 명 살해당한 가자지구 “기록은 우리 투쟁의 일부”

집단학살 일기: 가자에서 보낸 85일·아테프 아부 사이프 지음·백소하 번역·두번째테제 발행·532쪽·2만2,000원

지난해 10월 7일 ‘알아크사 홍수’라는 이름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습은 1,000여 명의 이스라엘 사망자와 부상자를 냈다. 이날 팔레스타인 작가 아테프는 아들과 함께 가자지구 중심도시 가자시티의 여동생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해변의 북쪽 끝 바다에서 올해 첫 수영을 즐기던 때, “아무런 경고도 없이 로켓 소리와 폭발음이 사방에서 들렸다”. 아테프는 수영을 계속했다. “가자에선 이게 평범한 거니까. 한두 시간 그러겠네, 여전히 일정은 소화해야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모두가 알듯 아테프의 예감은 빗나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8개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3만 명을 넘어섰다. 아테프는 전쟁 첫날부터 85일 동안 가자에 머무르며 쓴 일기를 ‘집단학살 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인 72만 명이 쫓겨나 난민이 된 나크바(대재앙) 이래로 이어진 전쟁 같은, 때로는 실제 전쟁의 상황에서 아테프는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서방의 기자와 국제 구호단체도 떠난 가자에서 그는 “남은 건 기억뿐이고, 뭐가 일어났는지 잊지 않겠다고 책임을 지는 건 계속 살아남으려는 우리 투쟁의 일부다. 때가 되면 이 자료들이 우리를 길러낼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은 채로 글을 쓰고 또 썼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테프 아부 사이프(오른쪽)가 지난해 12월 동료 작가와 사진을 찍고 있다. 아테프 아부 사이프 페이스북 캡처

가족과 친척, 친구, 이웃이 매일 죽어 나가다 못해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아테프의 일기에서 그는 '사망' '죽음' 대신 ‘살해’란 표현을 쓴다. 예를 갖춘 장례조차 사치인 전쟁 속에서 그가 제일 그리워하는 건 바로 자신이다. “내가, 아테프가 그립네. 내가 나였던 게 그리워”라는 그의 탄식은 ‘나’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전쟁의 무게만큼 무겁게 내려앉는다.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 ‘나의 펜은 새의 날개’

2021년 8월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에 장악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어깨에 소총을 멘 한 탈레반 병사가 여성 모델의 사진이 훼손된 미용실 앞을 지나고 있다. 탈레반은 재집권하면서 여성을 사회에서 지워나갔다. 카불=AFP 연합뉴스

2021년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탈레반은 인권, 특히 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데 몰두했다. 교육을 받고 취업을 하긴커녕 남성 보호자 없이는 외출조차 불가능한, 일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듣기란 불가능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작가들의 소설집 ‘나의 펜은 새의 날개’가 세상에 나와야만 했던 이유다. 한국에 소개되는 첫 현대 아프가니스탄 여성 작가의 소설집이기도 하다.

23편의 단편소설 속에서 여러 처지의 아프가니스탄인은 말하고, 일하고, 꿈꾼다. 이들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또 딸이면 어떡하지. 내 삶은 지옥이 될 것“이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 여성은 결국 여덟 번째 딸을 낳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다른 여성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맞닥뜨린다.(‘여덟 번째 딸’) 이처럼 일부다처제와 가정폭력 등의 억압에 시달리면서도 이들은 쓴다. “책을 읽지도 않고 어떻게 바뀔 수 있겠니. 부모들이 모두 교육을 받았다면 너처럼 여자아이들이 곤경에 처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야.”(‘꽃송이’)

나의 펜은 나의 날개·아프가니스탄 여성 작가 15인 지음·이정은 번역·파초 발행·260쪽·1만8,000원

소설이 쓰이는 사이 벌어진 탈레반 재집권으로 ‘나의 펜은 새의 날개’의 작가들은 신상조차 공개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소설들이 탈레반이 다시 득세하기 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그저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라 보아 넘기기 어렵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작가들은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쓴다. 이들은 말한다. “불안도 우리에게서 작가 정신을 앗아갈 수는 없어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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