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면 기사'를 보이콧하라

이슬기 전 서울신문 기자 2024. 6. 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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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미디어오늘 이슬기 전 서울신문 기자]

▲Gettyimages.

'따르면'에 따르면 쓰지 못할 기사란 없다. 기자 입장에선 '그런 일이 있었다'거나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며 사실 검증 주체를 발화자에 돌려 검증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언론사의 온라인부, 24시팀 등으로 불리는 '이슈대응팀'에서는 '따르면' 기사를 집중 양산해낸다. 이들 기사는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 채널 등을 출처로 둔다. 물론 이들 기사에만 '따르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직접 묻고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기사들에도 정부 기관이나 특정 업계의 이름을 빌린 '따르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별도의 취재 과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양산형 '따르면 기사'와는 차별화된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몇몇 유튜버의 '사적 제재'는 피해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피해자와 사전 협의를 거쳤다”며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했고, 그 사이 엉뚱한 이가 가해자의 연인으로 지목돼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를 통해 월 수천만 원의 수익을 거둔 이들의 행태는 '사이버렉카'로 볼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언론사가 '따르면' 기사의 문법에 따라 이를 받아썼다는 점이다. 기사에 해당 유튜브의 채널명이나 영상 제목이 언급됐고 누리꾼들은 이들 유튜브로 몰려가 원본 영상을 시청했다. 언론 보도가 곧 시청자 유입의 마중물이 됐다.

이러한 보도 행태가 계속 되는 까닭은 뉴스룸이 '선 출고, 후 데스킹'이라는 시스템 하에서 페이지뷰 올리기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실에서는 이른바 '경마 저널리즘'을 피할 길이 없다. 애당초 경마 저널리즘이란 선거전에서 후보자의 공약정책에 관한 분석보다는 경마장 말들의 경주를 보도하듯 판세 위주로 보도하는 행태를 비판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AI로 만든 '기자들이 일하는 모습'.

그러나 주목 경제 시대의 뉴스 보도는 그 자체로 '경마'가 됐다. 개별 기자, 언론사들이 경마장의 말 혹은 기수가 되어 '더 빨리, 더 많이'를 목표로 말 달리듯 기사를 써내기 때문이다. '페이지뷰 올리기'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가장 쉽고, 빠른 기사 형태가 '따르면 기사'다.

20년 만에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재조명하는 대다수 언론의 보도 방식은 사이버렉카를 중계하듯 쓰는 일련의 스트레이트 기사 또는 여기에 세간의 반응을 덧붙인 박스 기사 정도였다. 소수 언론만 사이버렉카의 해악, 사람들이 '사적 제재'에 몰입하는 이유와 문제점 등을 기획 기사로 짚고 '스트'나 '박스' 형태의 흥미 위주 기사는 쓰지 않았다.

이것은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한 뉴스룸과 아닌 곳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따르면 기사'에서 기자는 '이런 일이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전달만 하는 역할로 축소된다. 그러나 한 줄 바이라인에 뜨는 엄연히 기자의 이름과 언론의 사명, 기사가 초래할 피해 등을 고려하면 기자는 엄연히 해당 사실을 검증해야 하는 주체다. 기사의 언급만으로도 공신력을 획득하는 사이버렉카의 위상을 감안해서도 그렇다.

20년 전, 사건 발생 당시에도 언론은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다. 언론사들은 보호자 동의 없이 수사 장면을 촬영하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했어도 지인들은 알아 볼 법한 피해자의 얼굴 등을 그대로 내보냈다. 당시 피해자를 최초로 상담했던 김옥수 전 울산생명의전화 가정·성폭력상담소장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담자가 보호자를 대신해 각 언론사에 항의했으나 정정 보도를 올리고 사과한 곳은 CBS 한 곳 뿐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20년 뒤,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다시 목도하고 있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됐을지도 모른다. 20년 새 온라인 뉴스 시장은 비대하게 성장했고,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버렉카 등을 무분별하게 따라 쓰는 기사는 일상화됐다. 미확인 보도에 대한 죄책감과 일말의 위기감은 페이지뷰로 세탁됐다. 그러는 새 사이버렉카와 이에 공생한 언론들에 의해 심각한 정서적물질적 피해를 입거나, 때로는 생의 가장자리로 내몰리는 희생양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그간 언론사 내에 '돈을 이렇게 벌어도 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함께 치열한 숙의가 부재한 탓이다. 온라인 부서에서는 사이버렉카를 중계해 페이지뷰를 올리면서도, 지면 부서 등에서는 사적 제재를 비판하고, 칼럼사설 등을 통해서는 준엄하게 심판하는 것이 뉴스룸의 현실이다. 언론사 전체로 보면 이것은 유체이탈이지, 각자가 할 일에 충실하다는 말로 덮어둘 수 없는 부분이다.

가장 명료한 해결책은 '따르면 기사'의 보이콧이다. '돈벌이가 없다'는 현실론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가해가 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한 수익원이 될 수 없다. 각 언론사들이 '밀양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자사의 보도를 두고 구성원들끼리 머리를 맞대는 장을 마련하길 바란다. 이것은 저널리즘 윤리에 관한 것이기도 하면서, 언론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중차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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