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피소드] '페인버스터 병용 금지' 논란에 한발 물러선 정부‥"조만간 결론"

이해선 sun@mbc.co.kr 2024. 6. 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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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제왕절개 분만 시 무통 주사와 국소마취제 투여법인 '페인버스터'를 동시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보건당국이 "현장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며 입장을 사실상 뒤집었습니다.

분만 시 산모들의 시술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입니다.

■ 늘어나고 있는 '페인버스터' 사용, 무통 주사와 함께 병용 증가

그렇다면 페인버스터란 무엇일까요. 분만을 직접 해본 산모가 아니라면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왕절개 시 자주 사용되는 페인버스터는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법(continuous wound infusion, CWI)으로, 수술 부위 근막에 별도 기구를 삽입해 국소마취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해 통증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페인버스터는 '무통 주사'로 불리는 자가조절진통법(PCA)과 함께 사용됩니다. 산모들의 고통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도 있지만, 출산을 하면서 산모들이 느낄 부담감 내지는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함도 있습니다.

■ 별안간 7월에 '병용금지'? 산모들 "아이는 내가 낳는데 선택은 왜 국가가‥"

하지만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오는 7월, 당장 다음 달부터 무통 주사와 페인버스터를 함께 사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급여기준 개정안을 행정예고 했습니다.

예고안을 뜯어보면, 페인버스터를 무통 주사와 함께 투약할 수 없게 되고, 단독으로 사용할 경우 본인부담률이 80%에서 90%로 높아진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고안이 나온 배경에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지난해 11월에 내놓은 '병행 사용 비권고' 판정에 있습니다. 당시 연구원은 "무통 주사와 페인버스터를 같이 사용해도 무통 주사만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과 통증 완화 차이가 크지 않고, 페인버스터에 무통 주사보다 마취제가 6배 이상 들어가기 때문에 병용을 권고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해당 예고안이 시행되면 병원들은 권고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소식이 알려지자 맘카페에서는 "저출산 시대에 아이는 내가 낳는데 선택은 왜 국가가 하느냐", "돈을 지불하고 선택조차 할 수 없는거냐"라며 반발이 쏟아졌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이 중 일부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 일부를 싣습니다.

기사: [집중취재M] "당장 7월부터 적용? 애 낳기 겁나"‥만삭 임산부들 '부글부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14/0001353978?sid=102

[서 모 씨/7월 출산 예정 임산부] "제왕절개가 '후불제 고통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좀 겁을 많이 먹고 있었는데…첫째 때 병원에서 추천해 준 페인버스터랑 무통 주사가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일어나서 빨리 걸을 수 있다든지 고통이 조금 많이 덜 한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둘째를 낳을 때 여긴 지방이다 보니 페인버스터를 사용하는 병원이 없어서 일부러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까지 가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럼에도 국가에서 이런 정책을 강행한다고 하니 산모 입장에서는 원래 처음에 있었던 그 선택지들이 있었잖아요. 근데 그것들이 이제 줄어들게 되니까 굉장히 불합리하다고 생각을 많이 하죠, 아이는 내가 낳는 건데…"

[고 모 씨/8월 출산 예정 임산부] "사람마다 약의 효력이 다 다르잖아요. 근데 저 같은 경우에는 페인부스터 없이 무통만 맞았을 때 효력이 하나도 없어서 페인부스터가 가능한 병원으로까지 옮긴 거거든요. 첫째 낳으면서 이제 페인부스터 없이 무통으로는 효력이 없다는 게 제 몸으로 입증이 된 거고 제가 경험을 한 건데 왜 나라에서 제한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저출산 때문에 나라에서 신경을 써준다고 하는데 보건복지부 예고안은 직접적인 출산에 관여된 거잖아요. 이런 식이면 아기를 누가 마음 놓고 가지나요. 저 같은 경우에도 첫째 때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서 이런 상황을 미리 알았으면 둘째에 대한 고려를 했을 만큼 좀 너무 충격적인 상황이거든요."

이런 논란이 커지자 복지부는 11일 "선택권을 존중해달라는 산모와 의사 의견, 앞서 수렴한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조만간 개정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른 논란에 대해서도 해명했습니다. '무통 주사와 제왕절개도 비급여로 전환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목소리에 대해 복지부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번 행정예고안이 2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비중증 과잉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를 적용하며 추진된 건 아니냐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행정예고안‥복지부, "다음 주 중으로 결론 예정"

복지부가 예고안을 재검토하겠다고 한지도 약 10일이 지났습니다. 맘카페에는 '7월 출산 예정인데 여전히 고시 뜬 것이 없어 병원에서도 페인버스터와 무통 주사 병용 사용 못 한다고 한다' '아직 정확하게 결정된 것이 없으니 당장 다음 주 출산 예정인데 불안하다'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그제(20일) 복지부 주관으로 산부인과학회, 마취통증의학회, 등 5개 학회를 불러 간담회를 진행했고 다음 주 중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고 MBC에 밝혔습니다.

정부는 최대한 빨리 상황을 수습하겠다고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행정예고안의 번복이 출산 전까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임산부들에게 불안감을 더 증폭시키는 원인이 됐습니다.

정부의 정책 번복은 올 들어 세 번째입니다. 정부는 지난달 국내 안전 인증(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한 뒤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사흘 만에 철회했습니다. 이후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에 "고령자 운전 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라는 내용을 담은 뒤 비판이 쏟아지자 또 한 차례 번복을 했습니다. 고령자 전체를 '위험 분자'로 매도했다는 노인단체 등의 항의에 뒤늦게 고령 운전자를 고위험 운전자로 수정한 겁니다.

MBC의 보도 이후 정치권에서도 해당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전은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2일 최고위원회에서 "산모 두 명 중 한 명이 제왕절개를 받고 있는데, (복지부의) 갑작스러운 행정예고는 초저출생 시대에 어렵게 출산 결정을 하고,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물론 효과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발표한 자료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수년간 문제없이 잘 쓰이고 있던 시술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의견을 청취한 뒤 예고안을 발표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 임산부의 인터뷰로 마무리를 짓고 싶습니다. 당장 다음 주 출산을 앞둔 분입니다. 앞으로도 국민의 삶을 볼모로 하는 설익은 행정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실히 드러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왕절개를 원해서 선택하는 산모들도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산모들도 있어요. 배를 가르는 고통은 생각만 해도 무서워 최대한 마취제나 시술의 도움을 받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자연분만을 하지 못하는 것도 속상한데, 내 몸을 어떻게 지킬지도 국가가 선택을 하는거면 저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이해선 기자(su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610280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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