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안되는 4등, 왜 하겠어”…이통사 또 만들겠다는 정부, 헛다리 짚었다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2024. 6. 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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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 제4이통 추진했지만
스테이지엑스 자본금 못모아 실패
내수 기댄 이통사 늘리는건 과잉투자
수출 가능한 통신장비 경쟁력 확보를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매각도 대안
한화가 인수해 통신·방산 시너지 유도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스테이지엑스의 제4이동통신사 후보자격 취소 예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스테이지엑스가 법령이 정한 필요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주파수 할당 대상 법인 선정 취소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청문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정부가 통신 3사 독과점 체제를 타파하겠다며 추진한 ‘제4이통 사업’이 공식 실패했습니다. 사업자로 선정된 스테이지엑스가 자본금 2050억원을 기한 내에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막상 사업을 시작하자니 5G 신사업이 수익성이 날 것 같지 않아서 자금이 덜 모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순히 ‘제4이통이 실패했다’를 넘어 우리는 더 큰 질문을 해야 할 때입니다. 통신산업 발전을 위해 어떤 것이 더 필요할까요?

韓 세계 최초 5G 했지만, 수출은 정작 안 돼
올해 1월 아시아경제는 <영업익 4조 넘는 통신 3사도 30년 후엔 모두 ‘적자>란 기사를 냈습니다. 인구 감소 여파로 내수기반 통신사의 매출액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2054년부터 통신사 사업실적이 적자로 전환된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물론 미래가 저렇게 될지는 실제 가봐야 압니다. 다만 내수기반 통신사업 미래가 얼마나 불투명한지를 보여주는 기사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내수기반 제4이통을 만드는 게 얼마나 타당한 일일까요? 시장에 경쟁 사업자가 1곳 더 늘어나니, 소비자 입장에선 일시적으로 요금 하락 등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정된 파이를 나눠 먹는 꼴입니다. 수익성이 나지 않는 곳에 투자를 더 많이 하는 것은 ‘과잉투자’에 해당합니다. 국가 자원배분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통신산업은 크게 보아 통신서비스(내수)와 통신장비(수출 가능)로 나뉩니다.

정부는 제4이통으로 대변되는 통신서비스보다는 미래를 위해 통신장비 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통신서비스는 수출이 불가능하지만, 통신장비는 수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전향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9년 세계 최초로 5G를 도입한 국가입니다. 하지만 5G 상용화 이후 통신 산업서 누가 가장 돈을 벌었을까요? 바로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입니다.

지난 2019년 6월 개최된 아시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19 상하이’의 화웨이 전시장. [사진 제공=연합뉴스]
화웨이는 미국 제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매출액 7041억7400만위안(약 130조7500억원) 영업이익 1044억0100만위안(약9조39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이 9.6% 상승했습니다.

2020년 매출액 160조원을 기록했던 화웨이는 미국이 5G칩 납품을 더 이상 해주지 않자 스마트폰 분야에서 매출이 곤두박질치면서 2021년 매출액이 114조원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도 화웨이를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통신장비 분야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화웨이 통신장비는 에릭슨 노키아 삼성전자 등 타사에 비해 값이 40%가 싸면서 성능이 1.5배가 더 좋다”고 말합니다. 유럽 현지 매체인 유로뉴스에 따르면 유럽연합(EU) 회원국 대부분이 화웨이나 ZTE 등을 배제하는 법안을 마련했지만 27개국 중 10개국만 제재를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제재에 동참한 10개국에서도 화웨이 장비 철거 작업이 지지부진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화웨이의 기술력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화웨이의 지난해 세계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 31.3%로 1위입니다. 에릭슨(24.3%) 노키아(19.5%) ZTE(13.9%) 삼성전자(6.1%)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삼성 통신장비 ‘후순위’ ··· 경쟁력 뒷걸음질
5G 상용화를 세계 최초로 했지만, 국내 통신장비 유일 선도업체인 삼성전자의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6.1%에 불과합니다. 2020년(5.7%)에 비해 소폭 늘었지만 거의 그대로인 상황입니다.

통신장비를 만드는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는 지난 5월 비상 경영을 선언했습니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의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9.7% 하락한 3조7800억원 매출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1분기도 국내와 북미 등 주요 해외 시장 매출이 전 분기보다 감소했습니다.

화웨이는 직원당 매년 1억원씩 배당금을 지급하면서 통신장비·전기차·스마트폰 등에서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R&D(연구개발) 자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는 삼성전자 내에서는 반도체·스마트폰 등에 우선순위가 밀립니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연간 매출 258조원(2023년 기준) 중 1~2%밖에 차지하지 않는 네트워크사업부보다는 반도체·스마트폰이 훨씬 중요한 사업부이기 때문입니다.
서초동 삼성 사옥. [이충우 기자]
통신업계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5G 상용화 이전에 네트워크사업부를 매각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국내 1위 삼성그룹서 우선순위에 밀리느니, 차라리 다른 그룹사가 인수해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정부와 삼성 모두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지만, 5G 상용화 직전인 지난 2018년 삼성전자가 네트워크사업부를 매각하려 했으나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이를 불허했다는 뜬소문도 퍼졌습니다. 그만큼 네트워크사업부가 삼성 입장에선 애물단지인 셈입니다.

업계에선 통신장비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선 다른 그룹사가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를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통신장비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른 재벌그룹이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를 인수해 그룹 핵심 먹거리로 키우는 것이 국가적 관점에서 더 좋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사모펀드와 일하지 않기 때문에 삼성그룹이 네트워크사업부를 매각한다면 사모펀드가 아니라 다른 그룹사에게 넘겨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화가 삼성 네트워크사업부 인수해 키워야
그룹사 간 인수합병과 관련해 이미 우리는 좋은 선례가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난 2014년 한화그룹은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등 삼성그룹의 방위산업, 석유화학 부문을 2조원 가까운 자금을 들여 인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삼성테크윈은 이후 한화탈레스, 한화시스템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룹 내 사업 조정 및 분할 작업을 거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됐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8월 폴란드 군비청과 3조원대 K9자주포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해외에서 수주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기존의 우주·지상 방산에서 해양까지 아우르는 ‘육해공 통합 시스템’을 갖춰 글로벌 방산 기업으로의 성장 토대를 구축하고 있죠.

한 IB 업계 관계자는 “국내 재벌 오너 중에 최근 행보가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라며 “방산이라는 확실한 미래 먹거리를 설정하고 오너가 책임지는 경영을 하다 보니 미래 성장성이 밝은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례로 한화의 방산사업은 통신장비 시장과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약 1년 전인 2023년 7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방승찬 원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서 민군겸용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우리 통신산업이 살아갈 길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당시 방 원장은 “지상통신망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저궤도 위성통신이 들어가면서 군사작전 등이 벌어지는 유사시에 저궤도 위성이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줬다”라며 “200여 대 저궤도 위성을 발사해두면 향후 국내 방산업체가 우리 무기를 해외에 팔 때 6G 군 통신도 같이 판매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방 원장의 발언은 6G가 기본적으로 ‘하늘서 구현되는 통신’이란 전제로 나온 발언입니다. 미국이 위성통신, 중국이 지상통신서 강점을 보이는 시장에서 체급이 안되는 우리는 민군겸용을 통해 니치마켓(틈새시장)을 공략하자는 발언이었죠. 폴란드에 무기를 팔 때 통신장비도 같이 끼워서 팔자는 발상입니다.

비단 한화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사 중에서도 충분히 통신장비 산업을 ‘제1순위’로 놓고 적극 발전시킬 그룹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인수합병뿐만 아니라 삼성그룹 내에서 분사 혹은 여러 인센티브를 통해 네트워크사업부를 살리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통신장비 산업을 어느 정도 발전시켜놔야 우리가 향후 도래할 6G, 7G 시대 때는 진정하게 통신산업을 ‘미래 먹거리’로서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혹자는 오픈랜(개방형 무선접속망)이 활성화되면 장비업체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의 복수 관계자에게 확인해보면 여러 법적책임 이슈 등으로 오픈랜이 단기간에 대세가 되긴 힘들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통신장비 시장은 여전히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는 내수에 시각이 머물며 ‘제4이통’을 추진하기보다는, 6G·7G 시대에 맞춰 통신장비 산업경쟁력을 더욱 높일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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