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이 없는 목재 찾아 제주 삼만리…‘원목 돔베’ 탄생기

한겨레 2024. 6. 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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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송호균의 목업일기 원목 도마
제재소에서 편백통나무 발견
선풍기·제습기 돌려 건조만 1년
제주의 자연과 이야기 담아
제주 서귀포 금성제재소에서 제주산 편백나무를 제재했다. 옹이 없는 나무에 환호성을 질렀다. 송호균 제공

앞서 밝혀 둔다. 아래 설명할 도마는 이미 재료가 모두 소진되어 현재는 판매 중단된 상태다. 그러므로, 이는 광고가 아니다. 나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때 다시 생산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도마 이야기다. 공방 입장에서도 도마는 접근이 쉽다. 이미 도마용 목재가가공이 되어 있어 간단히 샌딩하고 마감하면 완성할 수 있는 반제품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공장식으로 생산되므로 가격도 싸다. 처음 출시할 도마를 반제품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목공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로망.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제주 서귀포에 자리를 잡은 나무공방 쉐돈이다. 공방 이름도 이곳 효돈동의 옛 제주식 지명(쉐돈)을 따르지 않았는가. ‘제주의 이야기’를 담은 도마를 만들 수는 없을까?

보호종 왕벚나무에 ‘군침’만

가까이는 서귀포 일대부터, 멀리는 제주시 권역까지 도내 곳곳의 제재소를 누비기 시작했다. 제주산 목재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큰 사이즈의 ‘대도마’까지 커버하려면 다듬어진 상태의 나무의 너비가 300㎜ 이상이어야 했다. 쳐내는 부분을 생각하면 적어도 폭 500㎜ 이상의 목재를 찾아야 했다. 게다가 도마에는 옹이가 없어야 한다. 가구에는 옹이가 조금 있어도 괜찮지만 원목 도마는 옹이를 피해서 쓴다. 옹이가 있으면 주변이 갈라져 음식물이 끼어 부패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했던 건 제주의 왕벚나무였다. 벚나무가 바로 ‘체리’다. 고급 수종 중에서도 대표적인 하드우드가 월넛(호두나무), 메이플(단풍나무), 그리고 바로 체리(벚나무)다. 아쉽게도 제주의 왕벚나무는 보호종이라 상업적으로 벌목·유통되지 않는다. 간혹 찾을 수 있는 제주산 왕벚나무는 토지 개간 과정에서 벌목되었거나, 고사한 나무들이다. 그나마도 옹이가 많거나 크기가 너무 작았다. “아이고, 그런 낭(나무)은 없수다!” 음료수 한 상자라도 들고 찾아간 제재소에서 숱하게 허탕을 쳤다. “나중에라도 들어오면 연락 좀 주십쇼.” 음료수는 늘 두고 왔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봄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꽃길을 걸으면서 아빠는 군침을 흘리고 있었단다. “아, 세 그루만 몰래 베어가고 싶다.” 목수의 나무 욕심에는 끝이 없고, 상상은 죄가 아니지 않은가. 왕벚나무는 아니더라도 대도마까지 제작이 가능한, 옹이 없는 제주산 목재를 찾는 여정은 정말 쉽지 않았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더라. 정말이었다. 집 근처 ‘금성제재소’에서 드디어 만났다. 폭 600㎜를 넘나드는 제주산 편백나무를. 로그(통나무) 상태로 몇 년 동안 제재소 한켠에서 익어가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사실 제재해 보지 않으면 나무의 내부 상태는 알기 어렵다. 두께는 4.5㎝ 이상으로 제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판재를 얇게 만들면 당연히 더 많은 도마를 제작할 수 있다. 그래도 두꺼워야 했다. 대도마가 얇으면 쉽게 휜다. 게다가 편백은 소프트우드이기 때문에 변형에 더 취약하다. 거대한 기계에서 한판, 한판씩 제재되어 나오는 나무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옹이가 없거나, 있어도 심재(목재의 중심부) 쪽에 약간씩 분포해 있는 판재가 쌓여나갔다. 그것만으로도 그 동안의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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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도마, 일광소독은 금물

완성된 제주산 편백도마. 송호균 제공

나무를 구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기나긴 건조 과정이 남았기 때문이다. 도마를 만들겠다고 제재부터 시작하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제재소에선 6개월만 말려도 충분할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1년 정도 지난 시점부터 도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건조 기간에는 출근과 동시에 나무를 향해 선풍기 여러 대를 틀어줬다. 여름에는 주위에 제습기를 돌렸다. 적절한 온·습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일은 제주산 동백기름을 썼다. 오직 제주의 땅·물·바람이 키운 제주산 편백나무와 재래식으로 생산된 동백오일을 적용한 원목도마. 이름하여 ‘탐라돔베’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식 표현이다. 삶은 돼지고기를 도마에서 직접 썰어주는 음식이 ‘돔베고기’인 것도 그 때문이다.

도마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꾸준히 판매됐다.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지인들의 격려성 주문을 시작으로 1차, 2차 물량까지 연이어 새 주인을 만났다. 나무를 더 구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다시 찾은 제재소에서 작업했는데 이번에는 옹이가 너무 많았다. 옹이가 그득한 편백나무는 도마로는 못쓰고, 다른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다.

어쨌든 자재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제주에서 개업을 준비 중인 일식집에서 문의가 왔다. 초밥을 고객에게 담아낼 서빙용 플레이트로 제주산 편백나무를 쓰고 싶다고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로써 도마로 쓸 수 있을 만한 편백은 모두 썼다. 아주 소량이 남았는데, 일단 본격적인 생산은 무리다. ‘탐라돔베 시즌 2’가 시작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친 김에 원목 도마 관리요령도 알아두고 가자. 도마는 중성세제로 가볍게 세척하고, 응달에 세워서 말려 쓴다. 주기적으로 햇볕에 말려 일광소독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절대 하면 안 된다. 원목의 특성상 장시간 태양광에 노출되면 금이 생기고 휘기도 한다. 당장은 일광소독이 될지 몰라도 더 커진 금 사이로 음식물이 끼어 부패한다. 그늘에 말려야 한다. 원목 도마에 칼자국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꾸준히 관리해주면 더 오래 쓸 수 있다. 6개월에 한 번 정도는 오일을 발라주면 된다. 처음에 바른 것과 같은 오일을 쓰는 것이 가장 좋다. 도마 제조사에 문의하거나, 설명서를 참조해 보시라. 제대로 된 업체가 생산한 원목 도마라면 오일에 대한 정보를 기재했을 것이다. 여의치 않다면 도마 전용 미네랄오일을 바르면 된다. 소포장 제품은 1만~2만원대로도 구매할 수 있다. 이때 설명서를 꼭 확인하고 안내된 대로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

포도씨유나 올리브유 등의 식용오일은 바르지 마시라. 산소와 결합해 기름이 산폐한다. 산폐되는 현상이 적은 게 식용오일 중에서는 들기름 혹은 동백기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또한 오일을 완벽하게 닦아낸 뒤 아주 오랫동안 건조해야 하므로 가정에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손상이 심해졌다고 생각될 때 도마를 제조사, 혹은 집과 가까운 목공방으로 보내 수리를 의뢰하는 것이다. 다시 샌딩하고 오일 마감하면, 새 물건이 된다. 원목 도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요리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도구가 도마다. 부디 꾸준한 관리로 건강한 식탁의 행복을 누리시길 바란다. 도마를 만드는 사람의 보람도, 바로 거기에 있다.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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